그 해 여름, 소녀들은 이상은에게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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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소녀들은 이상은에게 반했다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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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파격적인 모습으로 ‘강변가요제’에 등장한 가수 이상은은 ‘여덕(여성 팬덤)몰이’ 스타의 효시였다. 경향신문 사진자료.

1980년대 파격적인 모습으로 ‘강변가요제’에 등장한 가수 이상은은 ‘여덕(여성 팬덤)몰이’ 스타의 효시였다. 경향신문 사진자료.

88올림픽을 한 달쯤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해 강변가요제는 더 뜨거웠다. 요즘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키우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시키는 걸그룹이나 보이그룹들이 많은 시절이지만 당시엔 MBC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가 공식적인 가수의 등용문이었다. 주현미, 이선희, 유미리, 박미경이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했고, 노사연, 배철수, 신해철, 유열, 조하문 등이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다.

1988년 8월 6일에 남이섬에서 열린 제9회 MBC 강변가요제 결선, 사회는 지금은 아이돌 프로듀서로 전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와 정혜정 아나운서가 맡았고 총 12팀이 출연했다. 그 해에는 특별히 인기 연예인들이 12팀의 응원단장으로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드라마 ‘인간시장’에서 ‘장총찬’을 연기해 급인기를 모은 박상원, 여고생 가수로 스타덤에 오른 이지연, 개그맨 김정렬과 박미선도 출연했다.

당시 강변가요제 수상곡을 수록한 음반.

당시 강변가요제 수상곡을 수록한 음반.

치열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오른 참가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자랑했다. 6번 참가자였던 박성신은 ‘비오는 오후’로 감미로운 목소리를 뽐내며 장려상과 가창상을 받았다. 원로가수 박재란의 딸인 박성신은 이후 ‘한번만 더’라는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7번 참가자 박광현은 ‘추억을 잊으면’을 불렀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이듬해 ‘한송이 저 들국화처럼’이 수록된 앨범을 내며 싱어송라이터 및 프로듀서로 조명을 받는다.

그 해 금상은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을 부른 3번 참가자 이상우가 차지했다. 그는 90년대 초반 변진섭, 신승훈, 박학기, 이승환 등과 함께 발라드 가수로 전성기를 누렸다. 은상은 ‘떠나간 후에’를 부른 마지막 12번 참가자 이정아, 동상은 징을 들고 나와 한국적인 음악에 완벽한 하모니로 ‘소낙비’를 부른 그룹 소나기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쟁쟁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그해 대상을 차지한 이는, 바로 그 가수 이상은이었다.

‘강변가요제’ 무대에 선 이상은은 당시 TV 속 여성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거침없고 당당한 애티튜드로 소녀팬들을 사로잡았다. 경향신문 사진자료

‘강변가요제’ 무대에 선 이상은은 당시 TV 속 여성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거침없고 당당한 애티튜드로 소녀팬들을 사로잡았다. 경향신문 사진자료

세일러 칼라를 비롯해 칼라가 큰 블라우스가 유행했던 1988년, 강변가요제에 출전한 여자 대학생들의 패션도 빅 칼라 블라우스가 대세였다. 박성신은 세일러복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이런 패셔니스타들 속에서 흰색 배기팬츠에 헐렁한 셔츠를 걸치고 나온 참가번호 11번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1학년 이상은은 패션 센스도 남달랐지만 노래 제목도 독특했다. 이상은의 응원단장 김정렬도, 사회를 본 이수만도 ‘담다디’를 ‘반바지’로 발음해 웃음을 자아냈다.

시종일관 진지한 무대 분위기는 이상은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방 뛰어다니며 자신의 젊음을, 자신의 당당함을 자랑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묘한 매력과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는 그 거침없음과 긴장을 일절 하지 않은 듯한 흥이 넘치는 무대 매너에 TV를 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가수 이상은. 경향신문 사진자료

가수 이상은. 경향신문 사진자료

당시 서울의 어느 마을에서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TV를 보고 있던 나는 이상은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느 여성 가수가 저렇게 자유롭게 제멋대로 신나서 뛰어다니며 노래를 했을까. 대체 누가 율동도 무용도 아닌 막춤을 흥이 나서 출 수 있었을까.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날 TV 앞에서 눈 한번 깜빡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나는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짧은 머리야 당시에도 유행했지만 고분고분함이나 순종이란 단어보다 능청스러움과 자유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젊은 여성을 말이다. 물론 여성도 털털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그래도 되는 걸까? 그래, 그래도 되는 거였다. 이상은이 그런 자유를 보여주었다. 껄렁껄렁한 태도로 시종일관 누구보다도 신이 난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 176㎝가 넘는 훤칠한 키에 거리낌이 없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당당한 이상은, 그는 당장에 나의 우상이 되었다.

탬버린을 들고 나타난 이상은의 개성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세대의 자유로움을 대변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방송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여성 가수가 분명히 한 세대를 풍미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담다디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아무 의미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누구나 한 번쯤 지어보이는 억지 웃음이나 억지스러운 부끄러운 표정 같은 것을 그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담다디에는 의미가 없으며, 신나게 부르고 신나게 호응하면 그만이라는 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모습도 너무나 멋있어서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노래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담다디는 마치 후크송처럼 머릿속에 콕콕 박혔다. 게다가 이상은은 대상을 받은 후,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라는 이수만의 질문에 부모님이나 친구 대신 “마이클 잭슨”을 외쳤다. 이렇게 황당하고 당당한 가수가 지금껏 있었던가!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열고 있는 가수 이상은. 경향신문 사진자료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열고 있는 가수 이상은. 경향신문 사진자료

한겨레신문은 이상은을 ‘가요계 휩쓴 싱그러운 선머슴애’(1988년 12월 24일)라고 칭했고, 그 해 FM 청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은 곡이 ‘담다디’였으며, 응원가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후 ‘담다디’는 그해 라디오에서 500번 이상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이상은은 이듬해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대학생 역으로 이규형 감독의 영화 ‘굿모닝 대통령’에 출연해 배낭 여행의 묘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음악 프로 ‘젊음의 행진’의 사회자로도 상큼 발랄한 매력을 발산했다.

‘담다디’를 불렀던 싱그러운 가수가 이제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이상은은 자유롭다. “삶은 여행이고 언젠가는 끝이 나니까” 더 강하게 더 열심히 걸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역시 이상은답지 않는가.

[너와나의 소녀시대]그 해 여름, 소녀들은 이상은에게 반했다

·김민정 작가는…

재일작가.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졸업, 도쿄외대 종합국제학 석박사 수료. 도쿄에 거주하며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에세이를 발표하고 있다. 관심사는 ‘한일 여성사’와 ‘80, 90년대 한일 사회.’ 저서로는 ‘엄마의 도쿄’ ‘떡볶이가 뭐라고’, 공저 ‘소설도쿄’ ‘SF김승옥’, 한국어 번역서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시부야 구석의 채식식당’ ‘애매한 사이’ ‘가나에 아줌마’ ‘바다를 안고 달에 잠들다’, 일본어 번역서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있다.

육아하는 여성이 글을 쓸 곳이 마땅하지 않아 메일 매거진 발행을 시작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편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격일 메일 매거진 ‘김민정은 김민정이다’(월 구독료 8800원)에서는 소설 ‘남편을 버렸습니다’, 만화 ‘달링은 넷우익’, 80-90년대 한일현대사, 일상다반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 ‘김민정은 김민정이다’ 구독 문의 writeforhapp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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