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품 세계가 오롯하게 반영된 개인전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의 작업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번 주말 산책처럼 다녀와 보면 좋을 두 개인전을 소개한다. 단순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자 추상 회화의 대표주자인 김태호 작가의 개인전 ‘질서의 흔적’이 오는 10월 14일까지 서울 표갤러리에서 진행된다.
‘단색화’ 하면 단일 색조가 떠오르지만 한국의 단색화는 반복적 행위와 동양 사상의 정신성에 초점을 둔다. 특히 김 작가의 작업은 인내와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치밀한 내재율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수없이 쌓아 올린 붓질로 스무 겹 이상 덧칠해진 안료가 어느 정도 굳으면 칼로 긁어낸다. 이때 표면의 단일 색면 밑으로 중첩된 다색의 색층이 은은하게 드러난다. 깎아내는 역설적 행위를 통해 숨겨져 있던 ‘질서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이다.
김 작가는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 수행과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그의 작품 안에서 질서를 확립했다. 우연성에 온전히 기대지 않고 그 질서를 기반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 단색화의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한 시대의 미의식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더 면밀하고 생동감 있는 내재율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를 무대 삼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희경의 개인전 ‘생명의 파동, 그 울림의 변주’가 30일까지 서울 오페라 갤러리에서 펼쳐진다.
201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전시 이후 약 4년만에 열리는 개인전은 ‘Bloom’과 ‘Contemplation’ 연작 등 약 30여 점을 통해 작가 특유의 추상 언어로 표현된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그 너머 초월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간 작가는 한지, 즉 종이를 다루는 작가로, 기본 골격이 되는 밑 작업으로 조각을 한 다음 그 위에 드로잉을 하듯 선으로 낱장의 한지를 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한지의 사이 사이에 풀을 붙여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조각적으로 형태화 되며 최종적으로 부드럽고 약한 종이의 특성에서 벗어나 나무와 같은 견고함을 갖게 된다. 이처럼 기나긴 수작업을 통해 쌓인 인고의 시간들은 회화적 특징이 강했던 한지를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회화적 조각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두 연작 ‘Bloom’과 ‘Contemplation’은 활짝 핀 꽃을 모티프로 힘찬 생명의 에너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출렁이는 물결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뛰어넘는 안식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에너지를 전함과 동시에 은은한 빛깔을 담은 무수한 이야기를 담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