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귀부인의 강아지는 벼룩과 이를 위한 미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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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귀부인의 강아지는 벼룩과 이를 위한 미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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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귀부인 초상화 속 ‘포켓 강아지’의 용도는?

굽이 다른 신발·하늘까지 치솟은 머리…이상한 패션 트렌드의 역사에 대해

중세 초상화에 등장하는 ‘포켓 강아지’의 용도는? 강아지는 자신에게 붙을 수 있는 벼룩이나 이 등 기타 기생충에 대신 물려줄 미끼였던 것.

중세 초상화에 등장하는 ‘포켓 강아지’의 용도는? 강아지는 자신에게 붙을 수 있는 벼룩이나 이 등 기타 기생충에 대신 물려줄 미끼였던 것.

쓰레기봉투를 연상케 하는 약 200만 원짜리 발렌시아가 가방인 트래시백을 보면 패션의 세계는 참으로 난해하다. 과거 중세와 근대시절 대중을 열광했던 몇 가지 이상한 패션 트렌드에 비하면 트래시백은 ‘선녀’였다는데? 지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거 패션 트렌드에 대해.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아내 덴마크 출신 알렉산드라 왕비의 걸음걸이를 모방하기 위해 생긴 굽 높이가 다른 신발.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아내 덴마크 출신 알렉산드라 왕비의 걸음걸이를 모방하기 위해 생긴 굽 높이가 다른 신발.

굽 높이가 다른 신발

패셔니스타는 날씨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영하의 날씨에 반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는 멋쟁이라도 20세기 전반 영국에서 유행한 트렌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패션을 추구하는 일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의 아내 덴마크 출신 알렉산드라 왕비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고 있어 한쪽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문제는 그가 워낙 국민에게 인기 많고 사랑을 받았던 왕비인 만큼 그의 장애는 일종의 패션 트렌드가 됐다는 것. 아름다운 왕비를 선망하는 많은 소녀들이 발뒤꿈치의 높이가 각기 다른 신발을 일부러 신어 그녀의 걸음걸이를 모방했다. 유행이 퍼지자 신발 판매장에서는 굽 높이가 다른 일명 “Alexandra’s Lameness(알렉산드리아의 절뚝거림)”라는 구두가 판매되기 시작됐다.

중세시대 유독 강아지와 함께한 초상화가 많은 이유는?

중세시대 유독 강아지와 함께한 초상화가 많은 이유는?

‘포켓 강아지’의 유래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턴이 강아지를 끼고 다니는 것을 동물 복지적인 행동이라기보다 하나의 패션 마케팅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패리스 힐턴보다 좀 더 실용적인 목적으로 먼저 ‘포켓 강아지’를 든 선구자(?)들이 있다. 중세시대에는 여성들이 강아지를 한 마리씩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는 미적 추구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이 더 크다. 강아지는 자신에게 붙을 수 있는 벼룩이나 이 등 기타 기생충을 대신 받아줄 미끼 역할을 했기 때문. 동물의 체온은 인간보다 살짝 높아서 벌레들은 사람보다 옆에 있는 강아지에게 더 잘 기생하기 때문에 인간을 대신한 제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끼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며 식사 후 종종 손을 닦는 수건이나 냅킨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18세기 유행이던 높고 거대한 헤어스타일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

18세기 유행이던 높고 거대한 헤어스타일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

벌레들의 안식처 거대한 헤어스타일

마치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거대한 헤어스타일이 유행인 적도 있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해당 유행이 잘 고증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점점 위로 위로 올라갔다. 형태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양했으며 너무 무거워서 목이 부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식으로 거대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만큼 귀족만이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유행이었다. 만드는 것 자체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완성이 되면 머리카락을 자주 감지 못했다. 필연적으로 머릿속은 벌레들의 안식처가 됐다. 가려움증은 옵션. 중세 여성들은 헤어스타일을 망가뜨리지 않고 머리를 긁을 수 있는 특수 막대기를 지참하고 다녔다.

거대한 레이어드 카라가 인상적인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거대한 레이어드 카라가 인상적인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숨통 조이는 레이어드 카라

영국 엘리자베스 1세 통치 시대 푹신하고 겹겹이 쌓인 레이어드 카라가 유행이었다. 이 모습이 마치 머리를 놓은 접시 모양이라 해서 ‘접시 위 머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카라는 지위를 상징하며 엘리트 사회의 세련된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시간이 갈수록 레이어드는 늘어나고 풍성해져 무거워졌다. 헤어를 위해 두피 건강을 포기하듯 권위적인 패션을 위해 목 건강은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빳빳한 카라를 유지하기 위해 전분 물을 먹이기도 했는데, 그렇다 보니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16세기에서 17세기 유럽에서는 매독이 만연했고 매독의 증상인 탈모로 인해 가발이 유행했다. 루이 14세 초상화.

16세기에서 17세기 유럽에서는 매독이 만연했고 매독의 증상인 탈모로 인해 가발이 유행했다. 루이 14세 초상화.

매독을 감추기 위한 남성용 가발

동서고금 길고 풍성한 머리는 아름다움과 건강함의 상징이다. 특히 16세기에서 17세기 유럽에서는 매독이 만연했고 매독의 증상인 탈모, 즉 대머리는 사람들에게 매독 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과 혐오감을 들게 했기에 이런 분위기는 가발의 유행을 불러왔다. 특히 남성용 가발은 대머리인 루이 14세가 애용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궁정 사람들은 그를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고 남성용 가발은 이후 3세기 동안 고급스러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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