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전 후 일본에서 조산사 이시카와 미유키라는 여성이 갓 태어난 아기들을 죄의식 없이 살해합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요? 잡지 LIFE 캡처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에서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이 벌어집니다. 조산사 이시카와 미유키라는 여성이 무려 1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아기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시카와 미유키는 경찰에 의해 수십 구의 아기 유해가 발견된 직후 체포됐습니다. 이시카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여성 연쇄 살인범입니다. 조산사였던 그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직업을 새 생명을 꺼뜨리는 일에 쓰고 말았습니다.
이시카와는 1897년 일본 미야자키현 구니토미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역사가들은 그가 도쿄 소재 대학에서 교육을 마친 사실을 두고 당시 여성이 대학까지 나왔다면 집안은 꽤 부유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고토부키 산부인과 병원에 조산사로 취직했습니다. 그녀는 조산사로 실력이 뛰어났고 많은 산모가 그녀를 칭송했습니다. 그리고 조산원장으로 초고속 승진했죠.

체포되고 있는 이시카와 미유키. 일본 주간 문춘 홈페이지 캡처.
새생명을 받는 이시카와의 신성한 손을 악마의 손으로 변모시킨 것은 당시 일본의 사회적 상황이었는지 모릅니다. 패전 후 일본은 식량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연합군의 열차 노선 폭격은 물자 공급망을 끊어놓았고 이는 전국적인 기근을 초래했습니다. 사람들은 국 한 그릇을 얻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야 했습니다.
결국 새 생명을 키울 수 없는 사회였던 겁니다. 이미 많은 여성이 그들의 아기를 산부인과 병원에 버리거나 그냥 숨이 끊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시카와 미유키 같은 악마가 생겨난 것이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시카와는 죄의식 없이 아기를 희생시키고 맙니다.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적어도 103명의 어린 목숨을 끊었다고 추측합니다. 일부 아기의 부모에게 이시카와의 행동은 범죄가 아닌 자비에 가까웠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아기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부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겁니다. 아기를 키우는 것보다 적은 비용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녀는 나카야마 시로라는 의사와 함께 아기들의 사망 진단서를 위조하면서 돈벌이로 이 끔직한 일을 자행합니다.

이시카와 미유키 영아 살인 사건 재판을 전하는 외신 기사.
수상한 소문을 듣고 순찰 중이던 경찰이 귤상자에서 아기의 유해 다섯 구를 발견하면서 그의 악행은 비로소 끝이 납니다. 부검 결과 아기들의 사인은 자연사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면서 이시카와와 그 일당은 체포됩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검사들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시카와는 죽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들”이라며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상황도 상황인지라 결국 이시카와는 징역 8년을 선고받습니다. 그녀의 일을 도운 남편과 나카야마 의사에게는 각각 징역 4년이 선고됐습니다. 이시카와의 범행은 고등법원에서 당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누락죄’를 인정받으며 형량이 더욱 가벼워졌습니다.
이 이시카와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낙태 합법화가 공론화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전범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라 어쩌면 인과응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태어나서 우렁차게 한 번 울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죄 없는 아기의 비극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채널 <지식 아닌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