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이 지난 1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월간지 ‘우먼센스’는 16일 지난 7월 고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공개했다. 고인은 “기억이 예전 같지 않지만 생각은 끝없이 이어져 그런대로 괜찮다. 아직도 시를 구걸하고 시에 목마르다”며 “나는 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는데도 시대가 스승이었고, 역사적 사건들이 시를 쓰도록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모윤숙, 노천명을 이어 해방 후 ‘여류시인’의 계보를 구축했던 시인은 구순에 이르러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시는 어휘로 쓰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사유하는 힘으로 쓰는 일이며, 문학적인 책임이 뒤따른다. 시를 쓴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는 돌을 쪼듯이 작품들을 끊임없이 고친다”며 “나 역시 지금도 고치는 중이다. 창작의 원동력은 절실함에서 오고, 그 절실함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아흔이 넘은 삶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그는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다른 이들의 다양한 삶을 보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것 같다. 지금은 넘치거나 부족해도 순간순간이 다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또한 고인은 “삶은 날마다 ‘새로운 학교’라는 말이 있다. 쉽고도 바른말”이라며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은 조급하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서두르곤 한다. 밤의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새벽이 오는 걸 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인생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1927년 10월 대구에서 태어난 김남조 시인은 전쟁 중인 1951년 서울대 사범대(국문학)를 졸업했고 이후 마산고와 이화여고, 숙명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수>, <잔상>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출판하며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70년 넘게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