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활동 안 해. 일본으로 돌아가. 일주일 안에 숙소 비워줘.”
일본인 출신으로 K팝 아이돌 그룹을 했던 루이(본명 와타나베 루이). 꿈에 그리던 데뷔를 했고 걸그룹으로 무대에도 섰다. 원대한 시작과 달리 그의 걸그룹 인생은 소속사의 한 마디로 간단하게 끝이 났다. 6년을 활동했지만 흥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산도 없었다. 그는 빈털터리 상태로 야반도주하듯 짐을 싸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루이는 한국인 그 자체다. 항공권 사이트에서 값싼 한국행 비행기만 보면 타고 올 정도로 한국에 대한 정이 깊다. 그도 그럴 것이 K팝 아이돌의 꿈을 안고 사춘기 시절을 포함한 6년을 한국에서 보내다 보니 일본보다는 이곳이 편하고 한국 친구들이 더 많다. 걸그룹 활동이 끝이 나도 자신은 한국에서 활동하리라고 굳건히 믿었다.
2019년 그룹 활동을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차 일본에 간 루이는 별안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3년간 한국을 오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홀로 애태우기에도 기나긴 시간이었다.
“걸그룹을 끝내고 비자가 만료되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도 받아서 한국에 있고 싶었어요. 내가 살면서 꿈을 펼치던 곳은 한국인데 들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친구들도 한국에 있으니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뿐이었어요.”
일본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 그는 K팝 아이돌이 됐다. 비록 ‘중소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작은 회사에서 데뷔했지만, 무대를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 같았다.
루이는 3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다. 소위 ‘탈출각’을 세워야 할 때도 있었다. 데뷔 일주일 전에 남자 연습생이 모두 나가버리는가 하면, 덩달아 여자 연습생도 나가버려 루이 혼자 숙소를 지키는 상황도 있었다. 외국인 신분이라 소속사 사정을 알기 어렵고 그렇다고 다른 소속사를 찾아 나서거나 섣불리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막내로 들어온 루이가 맏언니가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데뷔할 수 있었다. 팀이 결정될 때까지 이렇다 할 레슨도 없어서 혼자 연습실에 나가 나름대로 트레이닝하곤 했다.
“아마 그때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면 지금쯤 일본에서 K팝 아카데미 선생님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루이가 K팝 걸그룹을 꿈꾼 것은 2008년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면서다. 2013년 루이가 고등학생 시절, 엄마나 주위 친구들이 모두 동방신기의 팬이었다. 여러 K팝 공연을 보러 다니던 루이는 우연히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한국 회사에 놀러 오라는 말에 가볍게 여행을 갔고 ‘내일부터 여기서 연습생 해’라는 말에 어영부영 연습생이 된 거예요. 지금은 좋은 시절이라 일본에서 열심히 해도 한국 그룹 오디션을 볼 수 있고 그렇게 데뷔해 잘 된 친구들이 많이 있잖아요. 당시는 오디션 정보도 없고 한국 소속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어요.”
루이는 한국 고시원에 살며 오전에는 학교와 어학당을 가고 오후에는 데뷔를 준비하며 지냈다. 회사에 일본어하는 사람이 없어 독하게 혼자 한국어 공부를 했다(그의 한국어 실력은 여전히 완벽하다).
“서울에 살면서 연습생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그들은 가족이 있고 또 다른 선택권도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냥 혼자서 묵묵히 한국어 공부와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루이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국 생활을 하지만 섣불리 용돈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는 연습생 활동을 하며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제가 뒤늦게 알았는데요. 연예인 비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어요. 친한 언니의 카페에서 일했거든요. 학교 다녀와서 밤 9시까지 연습하고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알바를 했죠. 매일 2시간 남짓 잤을까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일찍 철이 들기도 했고요.”
데뷔 이후에도 생활비가 필요했던 루이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활동을 소홀히 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은 멤버들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냥 동생들에게는 제가 ‘밤에 자주 나가는 언니’가 되어 있었던 거죠. 나가긴 하는데 어디 가는지 모르겠고(웃음) 방송을 끝내고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알바하러 뛰어간 날도 여럿이에요. 부모님에게 용돈 받으며 생활하는 한국 친구들이 부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