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수천 명이 죽었다”…19세기 뉴욕 ‘독 우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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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수천 명이 죽었다”…19세기 뉴욕 ‘독 우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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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우유 때문에 미국에서 수천 명의 아기가 생을 마감한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이미지.

19세기 중반 우유 때문에 미국에서 수천 명의 아기가 생을 마감한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이미지.

우유는 모유를 대신해 갓난아기에게 꼭 필요한 생존 식품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우유 때문에 미국에서 수천 명의 아기가 생을 마감한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 우유’ 사건입니다.

1850년대 뉴욕에서 이상한 전염병이 돕니다. 매년 8천 명의 아기가 뉴욕과 뉴욕 인근 도시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기들은 모두 어떤 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설사 증상을 앓다가 결국 눈을 감았습니다. 의사도 파악할 수 없는 원인 미상의 병이었습니다.

콜레라일까? 식수가 오염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바이러스일까? 의사도, 과학자도 병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신문사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레슬리가 아이가 아프거나 사망한 집을 다니며 조사를 한 결과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망한 모든 아이가 모유 대신 뉴욕 인근에서 생산된 우유를 먹었다는 것. 그는 지나칠 수 있는 이 평범한 사실에 주목합니다.

19세기 중반에 아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 우유’ 사건.

19세기 중반에 아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 우유’ 사건.

문제는 농장 주인들이 사룟값을 아끼기 위해 맨해튼과 브루클린 등지에서 나오는 식품 산업 폐기물을 젖소에게 먹인 것입니다. 젖소들은 사료 대신 독한 알코올음료를 만들고 남은 걸쭉한 술지게미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의 알코올 성분이 갓난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이죠.

19세기 중반에는 모유 수유를 하지 않고 우유를 먹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왜일까요? 산업혁명이 일어나 일손이 부족한 시기, 하층민 여성들은 출산한 직후에도 사회에 나와 일을 하도록 압력받았습니다. 아가들은 자연스럽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었죠. 일할 필요가 없는 중산층 여성들은 몸매가 망가진다는 이유로 모유 대신 우유를 먹였습니다. 잘살 건 못 살 건 당시 뉴욕의 아기들은 독 우유를 먹어야 했던 것이죠.

우유 유통이 어려워지자 낙농업자들은 술공장 외벽에 헛간을 짓고 어차피 버려질 술지게미로 소를 키우겠다는 아주 위험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우유 유통이 어려워지자 낙농업자들은 술공장 외벽에 헛간을 짓고 어차피 버려질 술지게미로 소를 키우겠다는 아주 위험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독 우유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19세기 원활하지 못했던 유통 문제도 한몫했습니다. 도시는 우유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낙농 농장이 있는 지역은 뉴욕에서 떨어진 오렌지 카운티나 웨스트체스터 같은 곳에 있습니다. 우유를 생산해도 긴 시간 철도를 통해 도시로 운송하다 보면 부패해버리곤 했습니다.

도시 근처에 농장을 만들려 했지만 뉴욕에는 소들을 위한 목초지를 만들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땅값도 비쌌고 말이죠. 대신 낙농업자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술 공장 외벽에 헛간을 짓고 어차피 버려질 술지게미로 소를 키우겠다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었죠. 목초에서 키우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절감되고 도시로 이동도 빠르게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죠. 다만 그렇게 키운 젖소가 아기들에게 치명적인 독 우유를 생산하리라는 것은 까맣게 몰랐겠지요.

게다가 예상치 못한 이익도 있었습니다. 알코올 성분이 든 술지게미를 먹은 소는 풀을 먹였을 때보다 5배 이상 더 많은 우유를 생산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치명적인 우유를 생산할 정도이니 만큼 소들의 건강 상태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병든 소를 통해 우유를 생산한 당시 상황을 그린 칼럼.

병든 소를 통해 우유를 생산한 당시 상황을 그린 칼럼.

소들의 장기는 궤양으로 뒤덮였고 일부 소는 꼬리가 썩어 문드러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픈 소들은 파란색을 띠는 이상한 우유를 생산했습니다.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도시 농민들은 완전히 선을 넘어버립니다. 우유를 하얗게 보이기 위해 밀가루, 계란, 심지어 석고까지 넣어 색과 농도를 우유로 위장합니다.

오늘날 역사학자 리처드 A.멘켈은 1830년대에 미국 북동부 지역의 젖소가 생산한 우유의 80%가 이런 종류였다고 추정합니다. 프랭크 레슬리 기자는 독 우유의 실체를 확인했으나 당시 부유한 도시 농장 소유주와 정치인의 커넥션에 가로막혀 그 사실을 밝혀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시대라 기자는 신문 삽화가들을 데리고 독 우유 생산 농장으로 숨어 들어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케치하게 합니다. 삽화가는 농장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함께 우유 배달원이 우유 대신 독한 칵테일을 파는 풍자가 담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프랭크 레슬리의 폭로 기사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곧 성난 군중들은 술 공장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더는 정치인도 손쓸 방법이 없자 조사팀을 현장에 보냅니다. 이 사건은 미국에 우유 생산 기준을 도입하는 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우유의 저온 살균 기술과 냉동 장비의 발명 그리고 엄격한 식품 관련 법률로 독 우유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채널 <지식 아닌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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