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스티스에서 인도네시아 ‘퍼스트레이디’까지…데비 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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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스티스에서 인도네시아 ‘퍼스트레이디’까지…데비 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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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세 번째 부인인 일본인 데비 수카르노. SNS 캡처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세 번째 부인인 일본인 데비 수카르노. SNS 캡처

데비 수카르노 일명 ‘데비 부인’이라고 불리는 일본 방송인이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네모토 나오코. 순수 일본인인 그녀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세 번째 부인입니다. 일본을 방문한 58세 수카르노 대통령이 19세였던 나오코에 한눈에 반해 그녀를 인도네시아로 데려갑니다.

가난을 이기지 못해 일본 환락가 호스티스가 된 여성이 어떻게 한 나라 수장의 아내가 되고 또 프랑스 사교계를 뒤흔들었으며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방송인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걸까요?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데비 부인의 어린 시절 사진. 일본 방송 캡처.

데비 부인의 어린 시절 사진. 일본 방송 캡처.

네모토 나오코는 가난한 목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순수 100% 일본인이지만 매우 이국적인 용모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탓에 야간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가족을 부양하고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화류계로 발길을 돌립니다. 도쿄로 상경한 나오코는 긴자의 고급 클럽 ‘코파카바나’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물 한 잔 가격이 대학 졸업생 초봉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무나 접대를 받을 수 없는 고급 클럽이었습니다.

나오코는 그중에서도 아름답고 영리한 접대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정계와 재계의 초 거물급을 상대하는 상위 1% 호스티스로 자리잡습니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과 데비 부인.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과 데비 부인.

당시 인도네시아와 큰 사업 관계를 맺고 있던 한 일본 무역회사가 수카르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고급 접대부를 수소문하다가 나오코를 고용하게 됩니다. 하룻밤 상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오코는 이것이 자신의 일생일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자신보다 거의 40년 연상인 데다, 이미 자국에 두 명의 아내를 두고 있는 수카르노 대통령이지만 그녀는 모험을 결정합니다. 그를 따라 인도네시아행을 택한 겁니다. 명목상 무역회사의 비서 자격이었지만, 그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과 데비 부인.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과 데비 부인.

그의 정부가 된 지 2년 만에 나오코는 세 번째 부인 자리에 앉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율법에 따라 한 남성이 4명의 아내를 합법적으로 둘 수 있었습니다.

나오코는 일본인 요리사 2명을 포함해 총 30명이 시중을 드는 궁정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본명을 버리고 인도네시아 이름인 라트나 사리 데비 수카르노(Ratna Sari Dewi Sukarno)로 개명까지 합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까지 ‘데비 부인’이라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데비는 인도네시아어로 여신을 뜻합니다.

젊고 아름다운 데비 수카르노는 다른 부인을 제치고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귀한 영부인 생활은 8년이 지나지 않아 끝이 납니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이룬 국부로 추앙받지만 국가 경제를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60세가 된 그는 젊은 군인 수하르토의 군사쿠데타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대통령 가족은 1965년 가택 연금 상태가 됐습니다.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이 가택 연금 되자 데비 부인은 딸 카리나와 함께 망명을 시도 합니다.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이 가택 연금 되자 데비 부인은 딸 카리나와 함께 망명을 시도 합니다.

데비와 대통령 사이에서 딸 카리나가 태어난 것도 가택 연금 시절입니다. 데비 부인은 딸이 태어나자 목숨이 위태로운 인도네시아에서 이대로 살 수는 없는 판단이 이릅니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망명 신청을 했으나 일본과 인도네시아 사이에 외교적 사정으로 인해 거절당하자 프랑스로 노선을 바꿨습니다.

다행히 데비 부인은 셋째 부인인 덕분(?)에 새 정권의 수장인 수하르토의 시야에서 벗어나 쉽게 망명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수하르토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애초부터 데비 부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데비 부인은 수카르노의 막대한 유산을 받지는 못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대통령 부인에게 주는 연금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동안 쌓아온 국제적 인맥으로 메이저 석유 회사에서 로비스트로 일하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갑니다.

대통령 부인으로 호화로운 생활에 취해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거죠. 그간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습득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주도면밀함도 있었던 겁니다. 그저 예쁘고 운이 좋은 여자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프랑스 거주 시절 데비 부인과 친분을 나누던 알랭 드롱.

프랑스 거주 시절 데비 부인과 친분을 나누던 알랭 드롱.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타이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며 사교계에서 ‘동방의 진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남성과 염문을 뿌리죠.

법적으로 아직 수카르노의 부인임에도 화가 살바도르 달리, 비틀스의 링고 스타, 배우 알랭 들롱까지 많은 남성과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염문을 뿌리다 보니 좋지 않은 평판도 따라왔습니다.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지나치게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좋지 못한 평판을 뒤로하고 데비는 1991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거기서도 사교계에 입성하려다가 한 여성과 소동을 빚기도 했습니다.

데비 부인은 VIP 파티장에서 만난 제4대 필리핀 대통령의 손녀 미니 오스메냐가 자신의 출신을 두고 비아냥거리자 샴페인잔으로 폭행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상해죄로 구속이 되기도 한다. AI 생성 이미지

데비 부인은 VIP 파티장에서 만난 제4대 필리핀 대통령의 손녀 미니 오스메냐가 자신의 출신을 두고 비아냥거리자 샴페인잔으로 폭행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상해죄로 구속이 되기도 한다. AI 생성 이미지

데비 부인은 한 VIP 파티장에서는 제4대 필리핀 대통령의 손녀 미니 오스메냐와 맞닥뜨립니다. 그 자리에서 오스메냐가 자신의 과거를 들추며 비아냥대고 모욕을 주자 데비 부인은 샴페인 잔을 깨고 그 파편으로 그녀의 얼굴을 그어버립니다. 대통령의 손녀는 서른일곱 바늘이나 꿰매는 큰 수술을 받았고 데비 부인은 상해죄로 한 달간 구속되기도 합니다. 데비 부인은 출소하자마자 “감옥생활이 기숙사 생활 같아서 즐거웠다”며 남다른 멘탈리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노년이 되어 고향 일본으로 돌아온 데비 부인은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캡처

노년이 되어 고향 일본으로 돌아온 데비 부인은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캡처

노년이 된 데비는 비로소 자신의 고향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80세가 넘은 그녀는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중은 ‘데비 부인’이라며 영부인의 호칭을 써주고 있지만 그녀는 “불임의 99%는 낙태가 원인”이라는 둥 비상식적인 발언과 처신으로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몸개그도 마다않는 그녀는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먹방’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캐릭터였던 겁니다.

가난한 10대 소녀에서 상위 1% 호스티스로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부인으로 또 프랑스 사교계 명사로, 말년에는 예측불가능 방송인으로 웃음을 주는 데비 부인, 마치 여러 사람의 인생을 한꺼번에 살아온 것 같은 버라이어티한 삶의 독보성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하네요.

■자료제공: 유튜브 채널 <지식 아닌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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