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소울> 보도 스틸
▶영화로 융을 만나다, 소울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에서 이어집니다
박 : 그럼 이제부터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어가 보면 처음의 인트로 부분, 그러니까 디즈니 영화가 시작될 때 디즈니 성이 나오면서 로고송이 바바바밤 나오잖아? 근데 이 영화에선 재밌는 게 원래의 오케스트라 연주음이 아니라 재즈 밴드부 애들이 연주하는, 엉망진창인 음이 나오지. 근데 이것도 의미가 있는 거야. 왜냐면 재즈란 그런 거니깐. 재즈는 꼭 안 맞아도 돼. 각자 자기가 느끼는 대로 그 순간순간 하면 돼.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화음이 이뤄지지도 않지만 걔네들도 나름대로 재즈를 하고 있는 거야. 근데 그 안에 코니라는 여자아이가 혼자서 연주를 잘해. 심지어 연주가 끊겼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계속 자기만의 연주를 멋지게 하지. 얘는 연주에 몰입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뭔가에 몰입이 되어 있다는 건 하나의 불꽃을 찾은 거고 이런 게 하나하나 쌓이는 과정이 이제 개인화의 과정인 셈이지. 이런 몰입의 상황이 바로 한 단계 성숙해가는 과정이라는 거거든.
윤 : 그런 몰입은 조와 그 뉴욕 한복판에서 간판을 돌리는 사람, 문윈드, 두 사람도 보여주잖아요? 심지어 문윈드는 몸은 이승에서 간판을 돌리고 있지만 영혼은 저승세계에 가 있어. 너무 몰입이 돼 있으니까 무아지경에 빠진 거죠.
박 : 그런 무아지경 같은 상태를 융도 유사정신이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했어. 그러니까 초월적인 상황, 시공간을 뛰어넘는 정신작용 같은 게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뭔가에 영혼을 다 뺏길 정도로 열심히 사는 게 그게 인생이라는 얘기인 거지. 조도 그렇게 재즈에 몰입해서 드디어 처음으로 인정받은 날 돌아오는 길에 죽어버려. 허무하게 맨홀에 빠져서. 그 바로 직전에도 공사장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죽을 수도 있었어. 모두 우연한 사고들이지.
윤 : 완전히 죽은 건 아니죠. 죽기 직전에 저세상 문 앞에서 돌아온 거고, 육신은 병원에서 아직 살아있던 거니까.

<소울> 보도 스틸
박 : 암튼 저세상을 갈 뻔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인생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허무하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을 느끼고 살아가야 하는 거지. 인생이 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무슨 목적을 향해서 살아가겠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에,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즐겨야 하는 거야. 이런 철학적인 개념은 그레이트 비포에 대해 설명할 때도 나타나. 여기는 양자화된 공간이라고 제리가 설명하지. 양자역학이 나오네? 양자역학이란 게 뉴턴역학이랑은 달라. 뉴턴역학이 프로이트식의 결정론적인 개념이라면 양자역학은 융의 개념 같아서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보거든, 확실한 건 없다고.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제리의 모습도 되게 재밌어. 꼭 피카소 그림 같아.
윤 : 실제로 피카소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해요.
박 : 입체파 그림 같은 제리의 모습을 보면 피카소의 여인 그림들처럼 앞모습이면서 동시에 옆모습이 그려져 있잖아? 제리 역시 좌우 안팎의 구분이 없지.
윤 : 게다가 거기 있는 관리자들이 다 제리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융의 집단무의식이랑 비슷하다고 보이는데….
박 : 맞아. 융은 무의식을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구별했는데, 어떤 한 집단의 구성원, 넓게 보자면 모든 인간 누구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이 있다는 거거든. 제리들이 다 제리인 것처럼. 또 하나는 그레이트 비포에서 영혼들이 지구로 태어나기 전에 교육하는 기관 있잖아, 유세미나. 영어로 너인 You가 들어간 말인데, 그러니깐 이 세미나를 거쳐서 너라는 한 인격체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인 셈이지. 열정이 부족한 영혼한테는 흥분의 집에 좀 들어가라고 하고, 제어를 못 하는 영혼한테는 냉정의 집에 좀 들어가 있으라고 지시하지. 그렇게 되면 각 영혼마다 개성이 있긴 해도 여러 영혼들에 공통적인 어떤 성향이 존재하기 마련이거든.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유행하는 MBTI 있잖아? 심리유형테스트. 이게 융 이론에서부터 나온 거야. 융이 어떤 사람의 타고난 기질을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직관형이냐 감각형이냐 이런 식으로 나눠놓은 것을 응용해서 MBTI가 개발된 거거든.
윤 : 하지만 객관성이 부족하고 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임상적으로는 큰 의미를 두진 않죠.
박 : 이런 식으로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그 사람의 어떤 기질은 결정이 돼 있는 거야. 이건 또 융이 얘기한 원형이랑도 비슷한 거고. 그레이트 비포에서 각각의 영혼들에 어떤 타고난 캐릭터를 부여해주는데, 부족한 건 지구에 내려가 살면서 바꿔가라고 하지. 그 과정이 삶이고 살아가는 의미인 거야. 그런 식으로 22호는 트롬본 잘 부는 코니를 만나고, 이발소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침내 사소한 단풍나무 씨앗으로부터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는 거지. 맨 마지막에 지구통행증을 받은 22호가 지구로 뛰어내리잖아? 혹시 그게 어느 지역으로 떨어지는 건지 봤어?
윤 : 몰라요. 못 봤어요.
박 : 내 눈에는 티벳 근처로 보였어. 티벳이 이런 사상이랑 되게 어울리는 나라거든.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나 윤회 같은 개념 말이지. 그리고 또 융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고 얘기되는 그림이 있어. 고갱의 그림 중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 융 이론에 따르면 집단무의식이나 원형을 갖고 태어나 나 자신인 셀프를 찾아서 개인화의 길을 간다고 답할 수 있지. 이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그레이트 비포에서 와서 스파크를 찾기 위해 재즈 같은 순간순간의 삶을 살아간다고 답할 수 있고.

<소울> 보도 스틸
윤 :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는데, 하나는 here and now,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거니까. 과거나 미래 이런 게 아니라 지금 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자고, 떨어진 낙엽을 즐기고 바람을 느끼자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뭔가를 이루고 성과를 내서 성공하고 인기 끌고 돈을 벌고 이런 것들이 영화에서는 스파크라고, 그게 중요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지금 내가 여기에 살아가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게 정말로 중요한 거라는 말이죠. 행복학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인데, 한마디로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요.
박 : 주머니에 들어있던 사탕이랑 동전이랑 단풍나무씨앗 같은….
윤 : 그런데 그 순간을 만족하는 행복이 오래가지는 못해요. 못 가진 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불행한 삶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는 행복은 상상일 뿐이라고 말해요.
박 : 라캉이 이런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살아간다는 건, 이미 태어났으니 언젠가는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상태인 셈이니, 지루하니깐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일 뿐이라고.
윤 :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 건데, 행복하려면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갖고 있는 것들, 하고 있는 일들에 만족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한 연구들을 보면, 전에는 돈을 더 벌고 승진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20~30년을 더 살 거라는 생각으로 살았죠. 근데 막상 암이 발견된 뒤에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봤더니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사랑한다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그러면서 가족들하고의 관계가 좋아진대요. 지금 갖고 있는 것이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 시간이 있겠지 하면서 미뤄왔던 것들을 이제야 하게 된다는 거죠.
박 : Here and now가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거네.
윤 : 그래서 정신과에서도 예전엔 자신이 왜 아픈 건지 원인을 알면 낫게 된다는 논리로 정신분석을 했었죠. 그러다가 최근 20~30년 동안은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인지행동치료를 많이 했고요. 그런데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우리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는, 요즘은 명상이나 마음챙김수련 같은 걸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내 몸이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몸에 뭔가 부딪히는 것 같은. 현재의 상태에 집중하라는 게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박 : 이 영화를 보면서 윤 원장이 두 가지가 생각났다고 했는데 두 번째는 뭐야?
윤 : 아까 라캉 얘기가 잠시 나왔었는데 그거랑 연결되는 얘기에요. 라캉이 말한 상징계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규칙, 특히 언어로 구성된 세상이거든요. 우리는 규칙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건데 사실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그 규칙이 아니고 거기서 살짝 벗어나는 것을 바라거든요. 어떤 책 제목처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요.
박 : 그걸 뇌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건 즐겁고 좋아하는 걸 할 때가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을 때라는 거거든.

<소울> 보도 스틸
윤 : 맞아요. 그러니깐 어쩔 수 없는 규칙이 있고 그걸 벗어난 삶을 꿈꾸지만 막상 벗어난 것을 얻으면 과연 행복할까 하는 건 또 다른 얘기라는 거죠. 주인공인 조와 22호가 그랬어요. 저승세계에도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을 깨고 지구로 내려온 거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원하던 것을 얻어서 잠시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건 환상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자 이런 식으로, 좀 너무 교훈적인 영화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박 : 프로이트 이론이 병적인 심리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면, 사실 융 이론은 의학보다는 문학이나 예술 같은 분야에서 더 많이 차용되거든. 원인을 찾아서 해답을 딱 내야 직성이 풀리는 의사라는 직업에는 구미가 잘 맞진 않지. 영화 <소울>처럼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정신과 의사로서 보기엔 그냥 교과서적이고 교훈적인 영화처럼 느껴져. 병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냥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숙한 자아를 실현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 면에선 앞 시간에 얘기한 조커랑은 완전히 상반된 영화라고 볼 수 있어.
윤 : <조커>는 병리적이고 보는 사람들한테 거부감까지 줄 수 있죠. 하지만 <소울>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아요. 무언가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열혈고교만화 같다고 할까요?
박 : <조커>에서는 잔혹한 현실이 실사영화로 실감나게 표현되었지. 이에 반해 <소울>은 아름답고 선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게 딱 어울린다고 봐. <소울>의 주제를 실사영화로 만들었다면 아마 공감이 덜 됐을 거고, <조커>를 만약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면 그 음침하고 기이한 호아킨 피닉스의 멋진 연기를 보지 못했을 테지.
윤 : 오늘은 좀 밝고 아름다운 영화를 골라보자 해서 <소울>을 고르니깐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훈훈하게 나오네요.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 이드와 자아, 초자아 이런 식으로 몇 개로 나눠서 설명을 하였는데, 융은 좀 더 복잡하고 분석적으로 구분을 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는데, 무의식은 다시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구분했습니다. 개인무의식은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 중에 억압이 되어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는 심리복합체, 즉 콤플렉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머니콤플렉스, 아버지콤플렉스, 상처콤플렉스 등 그 수는 무한히 많습니다. 이런 콤플렉스들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기에 자아는 페르소나라는 겉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반대로 감춰진 모습은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집단무의식이란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무의식으로, 역사의 진화과정을 통해 물려받은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뱀을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뱀이 위험하다는 조상들의 경험을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뱀원형이 있듯이 집단무의식 또한 수많은 원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중 중요한 것으로 여성성을 뜻하는 아니마와 남성성을 뜻하는 아니무스가 있습니다. 이렇듯 복잡한 심리의 중심에는 진정한 나를 뜻하는 자기(self)가 존재하며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개인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