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와 해준, 어디가 닮았다는 거죠?’ 헤어질 결심①

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서래와 해준, 어디가 닮았다는 거죠?’ 헤어질 결심①

박성근 윤병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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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유능한 형사 해준은 그간 지지부진하던 질곡동 살인사건의 수사를 자기 팀에서 맡기로 한다. 그리고 구소산 등산객 추락사 사고의 현장조사를 한다. 사고 경위를 알아내기 위해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를 경찰서로 소환하는데 해준은 서래에게 관심을 보인다. 조사 과정에서 서래가 가정폭력에 시달렸음이 밝혀지자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잠복근무를 한다. 그러면서 점차 서래에게 호감을 갖고, 살인사건일 수도 있는 단서들이 나와도 서래를 감싼다. 서래가 한국에 오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마약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지만 해준은 기어이 사건을 종결시킨다. 그 후 둘은 밀회를 즐기고, 서래의 도움 덕에 질곡동 사건의 범인까지 검거한다. 우연한 계기로 서래가 돌보던 할머니의 핸드폰을 보던 해준은 서래가 구소산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찾아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아내가 일하는 이포로 내려온 해준은 우울해져서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한편 서래는 재혼을 했지만 두 번째 남편의 사기행각 때문에 이포로 도망 온다. 어느 날 해준 부부와 서래 부가 이포의 어시장에서 마주치고, 그 후 서래 남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준은 서래의 범행으로 의심하지만 서래는 결백을 주장한다. 서래의 부탁으로 함께 호미산에 올라 서래 어머니의 유골을 뿌린 뒤 서래는 바닷물에 빠져죽기로 결심하고, 뒤늦게 서래의 마음을 알게 된 해준은 서래를 찾아 바닷가를 헤맨다.




박성근 : 지금까지 우리는 등장인물이라든지 아니면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든지, 어떤 한 개인의 심리가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주로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좀 다를 것 같아. 한 사람의 심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거지.

윤병문 : 그래서 고른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죠. 사랑 얘기가 하고 싶었거든요.

박 : 맨 먼저 제목이 <헤어질 결심>이야. 어? 이게 무슨 의미지? 그래서 영어 제목을 찾아봤더니 ‘Decision to Leave’더라고. 떠나가기로 결정했다. 헤어지기 위해선 우선 만나야 하고, 떠나기 위해선 일단 좋아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깐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지.

윤 : 저는 결심인 이유를, 그게 헤어지지 못하니깐 결심이라고 봤어요. 헤어지기 어려우니까.

박 : 내가 만남에 주목했던 이유가 뭐냐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아니면 미워지기도 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까 하는 쪽으로 바라봤어.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특성부터 이해해야 한단 말이야. 주인공인 서래와 해준의 마음을,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했던 방식대로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 보자고. 먼저 서래는 나쁜 애야. 살인을 했어, 어쨌거나. 심지어 거기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 사철성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에서도 서래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냥 맞고만 있지 않아. “내가 10분만 참는댔지”라며 포크로 찔러. 이런 식으로 서래의 의식 세계는 아주 폭력적이고 공격적이야. 하지만 서래의 무의식 세계는 정반대로 여린 사람이지. 사람들을 돌봐줘.

윤 : 맞아요. 간호사잖아요?

박 : 엄마도 돌보고, 한국에 와서도 간병인 일을 해. 그리고 중요한 건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을 돌봐주지. 근데 사실 돌봐주는 이유는 자신이 돌봄을 받고 싶어서야. 사랑받고 싶은 거지. 해준이 내가 왜 좋냐고 물으니까 서래가 “당신의 잠 못 드는 그 눈으로 날 지켜봐 줄 것 같아서”라고 답하지. 본성은 착한 애야.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근데 어쩌다가 폭력적이 되었을까요?

박 : 성장 환경 때문일 거라고 의심돼. 외할아버지가 독립군이었는데 일본 장교의 목을 물어뜯어 죽였다고 나오지. 외할아버지는 어쨌거나 폭력적인 사람이었을 거야. 여기서부터 관계 얘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건데 ‘매 맞는 아내’의 심리 있잖아?

윤 : 맞고 나서 만날 헤어질 거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러지 못하고 계속 맞고 살죠.

박 : 그 이유로 드는 게 아버지가 때리는 사람이었다는 거지. 어렸을 때 난 커서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남편도 아버지랑 똑같은 거야. 술 먹고 막 때려. 이런 걸 반복강박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폭력에 익숙한 거지. 힘없는 아이 입장에선 부모가 없는 것보다는 때리더라도 있는 게 나아. 없으면 아예 굶어 죽어버릴 테니까.

윤 : 폭력적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거죠.

박 :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인데, 외할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면 서래의 엄마는 폭력적인 남편을 만났을 거고, 그럼 서래도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게 되겠지. 첫 남편인 기도수는 소유욕이 강하면서 서래를 학대해.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도 폭력을 쓰진 않지만 서래한테 다정하진 않아. 무시하고 땍땍거리지. 해준이 서래한테 묻잖아? 왜 그런 사람들이랑 결혼하냐고.

윤 : 내가 왜 좋냐고 물으니까 품위가 있어서라고 답하잖아요? 다른 식으로 설명하자면 서래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거는 자상하고 잘해주는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별로니까 괜찮은 사람은 뭔가 불편하죠. 대신 나한테 익숙한 거는 나를 무시하거나 학대하거나 하는 사람들이고.

박 : 일종의 자학성이지. 그래서 처음에 서래는 해준한테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않았던 거야. 반면에 해준은 서래랑 반대야. 의식 세계는 굉장히 반듯해. 꼿꼿하고 품위가 있지. 사건을 볼 때도 똑바로 보기 위해서 안약을 넣어. 근데 참 아이러니한 게 안개가 끼면 소용이 없거든. 상황이 계속 모호해. 그리고 아내도 반듯해. 이름이 정안이야. 안전이 제일인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해. 이 부부의 사이도 아주 안정적이야. 외견상 친해 보이지만 의무방어전을 보면 열정은 없어…. 의식은 이런데, 해준의 무의식세계는 반대로 폭력적이야. 첫 장면에서 “요즘 살인 사건이 뜸하네”라고 하지. 아내 정안도 그러잖아, 당신은 살인 사건이 있어야 힘이 난다고. 해준이 생선 손질하는 장면에서도 칼로 배를 가르고 손에 피를 잔뜩 묻히잖아?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그럼 서래는 의식세계가 폭력적인 거고, 해준은 무의식세계가 폭력적인 거네요?

박 : 폭력적인 무의식 때문인지 해준은 살인용의자인 서래를 보면서 처음부터 끌려. 그걸 눈치챘는지 서래는 조사받을 때 향수를 뿌리고 허벅지 상처를 보여주는 식으로 유혹적인 행동을 해. 그건 아마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을 거라고 봐. 처음엔 해준에게 큰마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래의 여린 무의식은 품위 있는 해준의 의식세계 모습을 좋아하게 되지. 이런 식으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있는 거야.

윤 : 저는 반대로 보는데, 좀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박 : 겉으로는 살인자와 형사 사이지만 서래와 해준은 사실 서로 코드가 맞는 거지. 서래를 왜 중국인으로 설정했을까? 이질적이라는 건데, 알고 보면 외할아버지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절반은 같은 민족인 셈이야. 그리고 서래의 부러진 갈비뼈 사진이 팔 쪽으로 쭉 이어지는 장면은 그게 해준의 팔로 연결돼. 같은 인물인 거고, 초반부터 둘은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대사를 따라 하지. 서로 닮았다는 거야.

윤 : 그리고 둘 다 담배를 피우죠. 극중엔 안 나오지만 해준은 늘 담배 피웠냐고 아내의 추궁을 받잖아요.

박 :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걸 1부, 서래가 해준을 따라 이포로 온 걸 2부로 나눠봤을 때, 1부 끝에서 해준은 왜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걸까? 무의식적으로는 끌리지만 현실에는 안 맞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자아가 붕괴되어 버리니까. 2부에서는 누군가를 돌봐주고 또 돌봄을 받고 싶은 서래의 무의식이 해준을 좋아하지만 살인자라는 의심만 받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해준이 그러잖아? “내가 만만합니까?” 난 꼿꼿하니까 당신 같은 살인자한테 안 넘어간다는 거지. 그 말에 서래는 대답을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되물어.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살인을 저질러 놓고도 말이지.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는 거야. 이번엔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거지.

윤 : 형은 각 개인의 측면에서 분석했다면 저는 보편적인 사랑 얘기로 봤거든요. 그럼 도대체 사랑이란 게 뭐냐? 태어난 뒤 얼마 동안은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엄마랑 탯줄로 연결되어있듯이 느끼거든요. 배고프면 엄마가 젖도 먹여주고, 변을 봐서 찝찝하면 그걸 다 치워주죠. 하지만 이런 본능적인 쾌감 말고도 중요한 게 있어요. 바라봐 주는 거랑 내게 속삭여 주는 거죠. 나를 응시한다는 거는 언제든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걸 제공해주겠다는 신호에요. 아이는 마치 엄마 뱃속처럼 그 시선을 바라볼 때 편안함을 느껴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박 : 엄마의 음성도 그런 셈이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게 들려준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인 거지.

윤 : 우선 이 영화의 시각을 보면 독특해요. 보통은 주인공의 시각이나 전지적 시점에서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데 여기서는 좀 다르게 누군가가 응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러니까 시선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는 시선이. 영화에서 둘이 왜 사랑에 빠졌을까? 처음에는 해준이 서래의 집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멀리서 보니까, 아까 안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확하게 안 보여요. 그러니까 더 매력적이죠. 우리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잖아요. 그리고 서래 입장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는데 그걸 해준이 해줘요.

박 : 서래도 해준이 용의자를 검거하는 모습을 차에서 바라보지.

윤 : 여기서 서래가 왜 중국인인가에 의미가 있어요. “한국말 익숙하지 않습니다.” ……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 헤어질 결심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계속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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