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 헤어질 결심②

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 헤어질 결심②

박성근 윤병문 정신과 전문의
댓글 공유하기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서래와 해준, 어디가 닮았다는 거죠?’ 헤어질 결심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병문 : 여기서 서래가 왜 중국인인가에 의미가 있어요. “한국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잖아요. 라캉에서는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내용보다는 실수라던가 어떤 분위기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그런 데에서 무의식, 그러니까 본심이 드러나는 거죠. 언어 같은 의식적인 내용들은 이미 억압되고 검열돼서 나오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니까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본심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설정인 셈이죠.

박성근 : 그 얘기는 둘이 언어가 달라서 꼭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음성과 시선을 전달해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네.

윤 : 그렇죠. 그래서 저는 돌봐줄 부모가 필요한 아이와 부모 역할을 해주는 대상 사이의 관계 이야기라고 봤어요. 1부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딸의 이야기이고, 2부는 엄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에요. 여기서도 지금쯤은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서래에겐 아빠가 없어요. 언급되질 않아요. 어쨌든 아이는 자기를 지켜봐 주고 속삭여주는 부모를 원해요. 그런데 이렇게 원하는 것이 금지될 때엔 그 욕망이 더 커지거든요. 금지된 것이 더 욕망을 자극하죠. 규칙을 어길수록 쾌감은 커져요.

박 : 그냥 남녀 간의 사랑이면 별로 쾌감이 없지만, 살인자와 형사의 관계라면, 이게 현실적으로 금지된 것들이니까 더 애절한 거지.

윤 : 아버지가 필요한 여자인 서래 이야기에서 남근을 상징하는 게 나와요. 남편을 떨어뜨려 죽인 산 모양이 꼭 남근석처럼 생겼어요. 반대로 서래가 읽어주는 책 이름은 산해경이에요. 그렇게 보면 1부는 남성적 이미지인 산이고, 2부는 엄마의 이미지인 바다인 거죠.

박 : 그럼 해준은? 부모에 대한 내용은 안 나오지만 결핍은 별로 없어 보이잖아? 아내와의 관계도 안정적이고.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해준은 상징계적인 인물이죠. 규칙과 규범을 따르는. 근데 서래는 더 본능적이라서 무섭단 말이에요. 위험하죠. 그게 두려워서 서래를 떠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두 번째 거세인 셈이에요. 첫 번째는 나에게 편안함과 쾌락을 주는 대상인 엄마를 갖고 싶은데 그건 근친상간으로 금지된 거니까 포기했었죠. 그러고선 규범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는데 서래가 나타난 거야. 매력을 느끼니까 불안해지는 거죠. 금지된 사랑을 하니깐 붕괴가 돼요. 나중에 서래가 그러잖아요.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다.” 이 말의 의미는 이래요. 해준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난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말을 서래는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인 거예요. 어린 시절의 상상계, 아니면 무의식의 세계인 실재계의 사랑과 쾌락을 느끼면서, 주이상스라는 죽을 정도의 향락 충동까지 느끼면서, 해준은 질서와 규칙의 세계인 상징계가 붕괴되는 경험을 해요. 불안해진 해준은 다시 안정적인 상징계로 돌아가려고 아내 정안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가죠.

박 : 다시 한번 쾌락의 원천을 잃어버리는 거니깐 이게 두 번째 거세라는 거군. 그래서 해준은 우울증에 빠지는 거네.

윤 : 그러니까 이제 2부는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얘기인 거죠.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서래가 두 번째 남편의 시체를 물로 씻는 장면이에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해준이 피 냄새를 싫어해서라잖아요. 엄마가 애 힘들까 봐 해주는 거죠. 우리 애 이런 거 보면 안 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해준이 시선으로 지켜봐 줬던 것처럼 서래는 자기 목소리로 들려줘요.

박 : 그치. 해준이 잠을 못 자니깐 미 해군이 개발한 수면법이라면서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지.

윤 : 게다가 이번엔 서래가 해준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그게 상황이 직접 말해주지는 못하니깐 애플워치에다가 말을 해요. 잠을 못 잔 것 같네, 수염을 안 깎았네. 엄마 같은 행동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서래는 해준에게 바다 같은 엄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박 : 근데 난 여기서 반대로 본 게 윤 원장은 서래가 바다고 해준이 산이라고 했잖아? 난 거꾸로 보였어. 서래가 산이고 해준이 바다야. 왜냐하면 일단 해준 이름에 바다해(海)자가 들어가. 그리고 질곡동 사건, 왜 이 얘기를 집어넣었을까 궁금했는데, 범인 이름이 홍산오잖아. 여기엔 산(山)자가 들어가. 홍산오의 러브스토리가 바로 서래의 러브스토리야. 질곡동 사건 얘기를 듣고는 서래가 그러잖아?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멈춥니까?” 딱 자기 얘기거든. 유부남인 해준을 좋아하는…. 그래서인지 서래는 홍산오의 마음을 알아. 홍산오가 지금 어디 있는지 맞히지. 그리고 홍산오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잖아? 앞으로 서래도 해준때문에 살인한다는 복선이기도 해. 그러니까 서래는 산인 셈이지.

윤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박 : 그래서 서래는 남편을 산에서 죽이지만, 자신은 바다에 빠져서 죽어. 해준한테 빠져서 죽다는 상징처럼.

윤 : 이름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 영화에서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언어유희가 보여요. 아까 해준 아내의 이름이 정안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성도 안씨라서 안정안. 그리고 대사에서 “원전 완전 안전해요”라는 말장난도 나오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송서래와 장해준이라는 이름에서도 뭔가를 유추해볼 수 있어요. 둘의 성을 합치면 송장이에요, 죽음을 뜻하는. 서쪽에서 온 여자라는 의미의 서래, 거기다가 떠나는 걸 뜻하는 송, 그래서 송서래 아닐까 했고요. 장해준도 길게 바다에 머물다, 그러니깐 서래가 사라진 바다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게 된다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박 : 그런 거야 감독만이 알겠지.

윤 :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남녀가 왜 사랑에 빠지는가를 보면 라캉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궁정풍 사랑’이라고.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옛날에 기사들이 그냥 어떤 한 여성을 정해놓고 되게 신격화를 하는 거예요. 너무 예쁘고 높은 존재로 이상화하고는 그 사람을 위해서 막 목숨을 바치는 거죠. 그런데 그 여자를 실제로 가지게 되면 오히려 그게 환상이 깨지는 거예요. 그러면 죽음에 이르는 길인데 살려면 그냥 환상 속에서 머물러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둘이 사귀는 동안 자지도 않고 결국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죠.

박 : 현실의 연애에서도 그렇잖아. 서로 잘 모를 때 설레고 잘해주는 거지 막상 결혼하고 나면 지지고 볶고 싸운단 말이야. 영화에서도 만약에 베드신이라도 들어갔으면 감흥이 덜했을 거야.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왜 1, 2부가 다른 건가, 남녀의 그런 모습을 다 갖고 있는지 생각해봤더니 박찬욱 감독이 여성 작가랑 둘이서 계속 상의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사람의 입장을 참 미묘하게 잘 살린 이런 훌륭한 영화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박 : 나는 서래와 해준이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서로에게 끌렸다가 현실은 그게 아닌 걸 깨닫고는 헤어지게 되는 거라고 봤어. 그런데 윤 원장은 아빠나 엄마와의 관계가 상대에게 투영이 돼서 환상을 갖고 좋아하는 거라고 해석하는 거네. 그럼 둘이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도 나랑은 다르겠네.

윤 : 사랑은 눈으로 시작되었다가 귀로 지속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영화에서도 응시로 시작했다가 녹음된 소리로 지속되죠. 1부에서 서래는 아빠가 필요한 딸이었지만, 2부에서는 녹음된 해준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제 자신이 엄마로서, 해준을 돌봐주는 아들로 대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해준이 받아주질 않아요. 사랑이 영원하려면 해준이 자신을 계속 바라봐줘야 하는데 말이죠. 사랑이라는 거는 상징계가 아니라 비논리적인 거니까 이게 흐려 보이고 모호한 안개나 베일같은 것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서 궁정풍 사랑처럼 계속 끌리는 거고. 해준은 안개처럼 흐린, 모호한 사랑을 안약을 넣으면서까지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만 그게 잘 안 돼요.

박 :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제작사 이름이 모호필름이야. 그래서 이 영화의 첫 장면도 모호필름이라는 로고가 뜨면서 시작하지.

윤 : 해준의 시선이 계속 서래 자신에게 향하게 하려면 계속 모호해야 해요. 해준은 미결사건의 사진을 집에 붙여놨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내 사진을 붙여놓고 계속 나를 응시해주라는 거예요.

박 : 서래가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에 당신한테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윤 : 그런데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살까지 하잖아요? 서래는 돌아갈 상징계가 없는 인물이에요. 해준과도 헤어지지만, 상징계, 즉 세상과도 헤어질 결심을 한 거죠.

박 : 요즘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그냥 천재 같은 감독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창작해내는 것 같지 않아. 아까 얘기한 작가처럼, 여러 사람과 의논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넣거나 불필요한 건 빼거나 하면서 계속 다듬어 나가면서 만들지. 어쩌면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다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 지도 몰라. 근데 2시간 1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생각해봤을 때 그나마 많이 참았던 것 같아. 그나저나 다음에 얘기하기로 한 오펜하이머는 무려 3시간짜리인데 이건 또 어쩌나?(웃음)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Key Word :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사람들은 종종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뭔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 중 사람과의 관계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어떤 패턴은 종종 심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매 맞는 아내’ 같은 경우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여성이 나중에 아버지와 비슷하게 폭력을 일삼는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그런 상황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낯선 상황이 내게 더 좋은 것이더라도 이러다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 때문에 익숙한 상황으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두 번째로 폭력도 사랑의 일부라고 오해해서입니다. 인질범들이 범인을 옹호하는 스톡홀롬 신드롬 같은 심리죠. 세 번째로 아픈 과거를 씻어내기 위해 일부러 비슷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네 번째로 그런 폭력이 무관심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때리더라도 밥은 먹여주지만 그냥 방치해버리는 것은 나약한 아이에게는 생존에 더욱 치명적입니다. 어떤 기전에 의해서이건 공통적인 것은 어린 시절 어떤 대상에게 경험했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누군가에게로 전치되었기 때문이 이런 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