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는 높은데 EQ가 별로?’ 아카데미 휩쓴 오펜하이머①

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IQ는 높은데 EQ가 별로?’ 아카데미 휩쓴 오펜하이머①

박성근 윤병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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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 맨해튼 프로젝트
자신을 무시하는 교수를 독살하려 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던 오펜하이머는 닐스 보어의 강의를 들은 뒤 마음을 잡고 이론물리학 연구에 매진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과학자와 인연을 맺고,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유부녀이던 키티와 결혼을 한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독일이 개발 중이던 핵폭탄을 먼저 만들어줄 것을 요구받는다. 학계 인맥 등을 통해 유수의 과학자들을 한데 모아 기적적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핵폭탄은 일본에 투하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된 것에 죄책감을 느낀 오펜하이머는 더 강력한 무기인 수소폭탄의 개발은 반대한다.
#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
원자력위원회 보안 승인에 대한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검사의 집요한 추궁에 시달린다.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던 경력이 문제가 됐는데, 특히 옛 애인인 진과의 계속된 불륜관계는 오펜하이머를 곤혹하게 만든다. 불공정한 청문회 진행과 동료 과학자들의 배신으로 결국 위원회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 1959년 스트로스 청문회
장관 임명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거라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스트로스는 긴장을 한다. 특히 공산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는 오펜하이머를 고등연구원 소장으로 앉힌 경력이 역풍을 맞는다. 급기야 오펜하이머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그의 청문회를 불공정하게 사주했음이 드러나면서 장관으로 임명되지 못한다.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박성근 : 이번에는 최신의 따끈따끈한 영화지. <오펜하이머>. 가장 주목받은 영화이기도 하고. 어떻게 봤어?

윤병문 : 너무 길어요. 3시간. 한 번으로는 다 파악이 안 돼서 이번에 재상영하길래 영화관 가서 다시 봤어요.

박 : 나도 와이프랑 함께 영화관 가서 봤었어. 미리 유튜브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도 좀 보고 갔지. 원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머리를 많이 써야 이해가 되잖아? <메멘토>부터 <테넷>까지. 그래서 처음엔 마음 단단히 먹고 갔는데 첫 소감은 그냥 ‘오펜하이머’에 대한 전기영화인 거야. 복잡한 거 없이.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고 나니까 사람 심리에 대해서 굉장히 분석적으로 머리를 쓰면서 만든 영화 같더라고.

윤 : 근데 그러기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이 너무 부족했어요. 그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해보려고 해도 주어진 단서가 많지 않아요. 심지어 핵폭탄 개발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핵심에 집중이 안 되고 좀 흐트러진 느낌을 받았어요.

박 : 나도 그랬어. 오펜하이머에 대해 검색해 봐도 유년 시절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어. 그냥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공부 잘했다는 내용 밖에….

윤 : 물론 이게 영화니까 실제랑은 다르게 감독이 각본에 맞춰 바꾼 부분도 있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 그러니깐 현 상황만 보고 이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특징적인 거는 오펜하이머는 성격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는 거죠.

박 : 주변 인물들도 그렇게 얘기를 하지. ‘그 자만심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윤 : 정신과에서 다루는 영역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죠. 먼저 신경증적인 분야, 그러니깐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불안이나 우울, 강박 같은 것들이요. 이게 너무 커져서 본인이 괴로울 정도가 되면 노이로제가 되죠. 그다음은 정신병인데 보통 사람들한테는 없는 거, 예를 들어 환청이나 막상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세 번째는 성격적인 문제인데 이건 신경증이나 정신병과 달리 자기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더 괴로울 수 있죠. 이런 성격 문제는 또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오펜하이머는 그중에 B형 성격에 해당하는 자기애성 성격일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박 : 그건 나도 동의하고 그런 식으로 해석되더라고.

윤 : 아니면 다른 식으로 보면 머리가 좋은 천재들에서 종종 보이는 문제인데, IQ는 높은데 EQ가 별로인 경우일 수도 있어요. 심하면 약간의 자폐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요. 아스퍼거성이라고 할까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잘 못 하는거죠. 거기다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해요. 애인인 진 테트록한테 매번 꽃을 들고 가는 것처럼요.

박 : 그렇다고 오펜하이머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환자라는 얘기는 아니지.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정도.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그렇죠. 그냥 그런 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는 거죠.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늘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하죠. 찬사와 인정을 받아야 하고요. 속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됐을 때 잘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을 조종하려 들곤 하죠.

박 : 스트로스도 오펜하이머가 자신과 과학자들 사이를 이간질한다, 아인슈타인한테 내 흉을 봤을 거라고 말하지.

윤 :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도 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중요한 인물을 4명으로 봤어요. 오펜하이머와 그의 부인인 키티, 애인인 진, 그리고 스트로스 제독이요. 먼저 스트로스 제독은 피해망상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망상장애 환자라는 얘기까지는 아니고 편집증적이라는 거죠. 망상이라는 거는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잘 설득이 되질 않아요. 자기 심리 속에서는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게 의처증이나 의부증 같은 질투망상인데, 스트로스는 일종의 피해망상을 가진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경우의 망상은 조현병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괴하거나 아주 비현실적인 건 아니죠.

박 : 그래서 사람들이 언뜻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

윤 : 편집증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소송을 한다든가, 영화에서처럼 청문회 같은 걸로 엮어서 괴롭히죠. 그래서 악역처럼 보이기도 해요.

박 : 그러니까 오펜하이머는 실제로 스트로스를 이간질했을 수 있고, 편집증적인 스트로스는 그걸 민감하게 눈치채고는 오펜하이머를 벌주려고 했다는 거군.

윤 : 자기애성 성격이랑 편집증적인 성격이라고 파악한 것처럼 키티를 분류하자면 히스테리 성향이 있는 걸로 보여요. 주변의 관심을 끌려는 연극적인 성격인데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 매력적이기도 해요. 영화에서도 관심을 끄는 행동도 하고 감정적으로 잘 안정되지 못하고 충동적이기까지 해요.

박 : 오펜하이머 청문회 때에도 남편한테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며 공격하라고 자꾸 주문하지. 뒤끝도 있어서 배신자 텔로한테는 끝까지 악수도 안 하잖아? 하기야 결혼 과정도 그래. 여러 남자와의 결혼이 있었고, 유부녀인 상태에서 오펜하이머와 사귀고는 덜컥 임신까지 해버리지.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더군다나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만족이 되기 때문에 히스테리성인 사람들은 육아 같은 걸 매우 힘들어해요. 자신을 희생해서 자기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죠. 키티도 사실 그 시대 배경이라든가 전업주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론 육아가 쉬운 건 절대 아니지만, 지나치게 힘들어해요. 우는 아이를 방치하고 술만 마시다가 심지어 입양 보내려고 하기까지 하죠.

박 : 그럼 진 테트록은 어떤 성격에 해당할까? 문득 드는 생각이 우울성격 아닐까 싶어. 물론 성격장애 유형 10가지 내에 포함되는 분류는 아니긴 하지만….

윤 : 맞아요. 저도 그렇게 봤어요. 오펜하이머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질 않아요. 매번 꽃을 받아도 쓰레기통에 버리죠. 마치 자신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처럼요. 일종의 마조히즘이죠. 결국 잔인하게 이별을 통보받고는 자살해버리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오펜하이머와 진과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애인 사이이다가 나중엔 불륜 관계가 되잖아요? 진은 오펜하이머에게 약간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도 싶어요.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대상이요. 거기다가 진은 공산주의자예요. 공산주의라는 게 사실은 금기잖아요? 금기를 어겨야 쾌락이 오는 거죠.

박 : 또 다른 식으로 보면 오펜하이머는 자기애성이고 키티는 히스테리성이란 말이야? 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어. 같은 B유형의 성격이라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지. 송곳 대 송곳처럼. 하지만 진과는 달라. 진은 우울이야. 그러면 오펜하이머랑 합이 맞거든. 하나는 튀어나와 있는데 다른 하나는 들어가 있어. 자존심에 센 오펜하이머는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진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진은 오펜하이머한테 돌봐주고 싶은 대상이 되지.

윤 : 그런 식으로 성격 유형에 따라 찰떡궁합이거나 상극인 패턴들이 있죠.

박 : 오펜하이머가 자기애성 성격인 건 맞다고 봐. 대신 나는 다른 인물, 특히 스트로스도 자기애의 관점에서 바라봤어.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나르시시즘에 관한 영화라고 할까? … …

‘오펜하이머’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니 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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