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이 영화가 정신과 의사에게 재미없는 이유? ‘웡카’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병문 : 오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얘기일 것 같네요.
박성근 : 아까 난 3편이 재미없었다고 했잖아? 1, 2편과 달리 3편은 왜 재미가 없었을까 생각해봤지. 내 딸이 그러더라고. ‘이렇게 영화를 만들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어른들이 만든 영화 같다고. 그러니까 어린이의 시각에서 본 게 아니라는 말이지. 동화든 영화든 모든 예술작품은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자극해야 한다고 생각해.
윤 : 우리의 무의식을 살살 건드려줘야 재미와 감동이 느껴지는 거죠.
박 : 맞아. 무의식이란 게 뭐냐 하면 두 가지로 이뤄졌어. 하나는 인간이 태어날 때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야. 성욕과 공격성으로 대표되는 건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드지. 또 하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이야. 엄마와의 이자 관계이든 아빠까지 등장하게 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든, 대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정도 나이까지 있었던 경험의 기억이지. 이런 기억들은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동안 시냅스의 가지치기가 일어나면서 기억에서 잊혀.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는 거지.
윤 : 하지만 그 무의식은 현실의 의식세계에 끊임없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되죠.
박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울림을 줘야 좋은 영화라는 거야. 아까 마블 시리즈나 범죄도시 얘기한 것처럼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해. 여기서 어린이들의 놀이에 대해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아이들이 노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야. 가르치거나 배워서 노는 게 아니지. 그럼 애들은 왜 노느냐? 앞으로 생존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을 탐색하고 연습하는 거지. 물웅덩이를 발로 첨벙 해보고,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보고, 이 물건을 저 물건에다가 갖다 붙여보고… 그러면서 애들은 까르르르 즐거워해.
윤 : 즐거워야, 재미가 있어야 세상도 더 열심히 탐색할 거고요.
박 : 무의식 속에 감춰진 그런 아이 같은 마음을 자극해주는 게 재밌는 영화의 조건인 셈이야. 그럼 아이 같은 마음이 뭐냐? 첫 번째로 아이들 코드에 맞는, 그러니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스토리텔링이야. 어린아이들은 1차 과정의 사고를 하지. 뇌가 아직 미숙해서 신경들끼리 연결이 잘 안되어 있어. 세상을 배우면서 시냅스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 세상 것들을 서로 상관없는 것들끼리도 이리저리 막 연결해봐. 그래서 비논리적이야. 애들이 떠들고 노는 걸 보면 어른들은 좀처럼 이해가 잘 안 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게 왜 웃긴 지… 1차 과정 사고 중 대표적인 게 마술적인 생각이야. 1편에서 보면 거품 음료를 먹은 찰리와 할아버지가 하늘로 둥둥 떠오르잖아? 과학적으론 말이 안 되지만 아이들은 그런 장면에서 너무 재밌어하지.
윤 : 3편에서도 초파리가 날개 짓 하면 사람들이 몸이 떠오르는 걸로 나오죠.
박 : 그렇지. 어른들도 똑같아.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스파이더맨은 손바닥에서 거미줄을 발사하지. 다 마술적인 생각들이야. 아이 같은 마음의 두 번째 속성은 쾌락원칙이라고 할 수 있어. 아이들은 즐거운 걸 좋아해. 춥거나 배고프거나 지루한 건 싫어하지. 원작의 기본 설정은 춥고 배고픈 현실이야. 그런데 초콜릿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즐거워져.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외투부터 벗으라고 하잖아? 춥지 않다는 거지. 그리고 공장 안에는 강물도 잔디도 꽃잎도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 한마디로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판타지로 가득 찬 공간인 셈이지.
윤 : 저도 왜 하필 초콜릿일까 생각했어요. 달콤하고 금방 기분을 좋게 해주고 웃게 만드는 초콜릿을 먹고 싶지만 현실에서 어린 웡카는 신문 돌리는 일을 해야 하죠. 착한 아이예요. 콤플렉스의 전형인 거죠. 자기 욕망을 그대로 못하고 할아버지 담배 사 피우시라고 하고, 그 좋아하는 초콜릿마저도 식구들과 나눠 먹지요.
박 : 그런 아이들의 판타지가 잘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패밀리 로망이라는 게 있지. 오이디푸스 기를 지난 아이들은 사실 진짜 자신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원래는 왕족이거나 부자라는 환상을 갖곤 해. 어쩌다 보니 지금의 부모 밑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왕자나 공주라는 원래 신분으로 돌아갈 거라고 꿈꾸지. 원작의 결말에서도 보면 공장을 물려받아서 갑부가 되잖아?
윤 : 현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2편에서 보면 팀 버튼 특유의 위트처럼 말 그대로 다 쓰러져가는 모습의 집에서 살고 있죠.
박 :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제 아이들이 바라는 세 번째 특징인 적당한 교훈이 가미되어야 해. 마술적인 생각만 하고 쾌락만 좇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지. 적당할 때 그건 아니라고, 참을 줄도 알아야 훌륭한 어른이 된다고 가르쳐주는 부모, 적당히 달래주는 초자아가 있어야 해. 그래서 동화나 영화의 결말들은 대개 권선징악이라든가 상을 받는 것으로 끝나. 천하무적 마동석이 마침내 악당들을 때려눕혔을 때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지지.
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편에서 타노스에 의해 세상의 절반이 죽어버리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많이들 당황했어요. 이거 다음 편에 어떻게 마무리할 거냐고. 영화는 재미있게 봤는데 끝이 찝찝해.
박 : 그래서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적당히 섞인 영화들을 관객들은 편안하게 즐기는 거지. 오락영화로서 말이야. 난 그런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동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생각해. 시계를 보면서 늦었다고 뛰어가는 토끼를 따라 토끼굴에 들어갔다가,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자기 눈물에 빠져 헤엄치고, 동물들이랑 토론하고, 미친 모자 장수랑 티타임을 즐기다가 하트여왕의 재판에 끌려가 트럼프 병사한테 쫓기다가 꿈에서 깨어나지. 이야기 전개가 뒤죽박죽이야. 1차 과정 사고이고 쾌락원칙을 따르고 안도하면서 해소되지. 사실 이 동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흥미로워. 저자인 루이스 캐롤이 자기 학교 학장의 딸인 앨리스랑 놀아주면서 그날그날 지어서 들려준 이야기를 한데 엮은 책이라고 해. 캐롤은 원래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하려고 토끼나 모자 장수 등을 등장시켜서 빗댄 거다 보니, 그 상징과 은유를 눈치챈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은 거야.
윤 : 꿈도 똑같아요. 무슨 스토리가 있긴 한데 가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죠. 말이 안 되니깐 사실 그게 자기 진심인 거예요. 무의식이 드러나는 거니까. 영화도 꿈과 비슷하게 감독이나 작가의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박 : 그 무의식은 등장인물에게로 투영이 되거나, 아니면 영화의 기본 설정 자체로 보여지지.
윤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는 말이 있어요. 라캉이 한 얘기로, 여러 가지로 해석되곤 하는데 이건 제 해석이긴 한데요… 무의식을 설명할 때 흔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잖아요? 물 위에 드러나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거대한 무의식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다고요. 그런데 그 무의식은 너무 커서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죠. 그래서 언어로 구조화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우리는 전의식이라고도 표현하죠.
박 : 그렇다면 진정한 무의식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네.
윤 : 그럴 수 있죠. 다르게 표현하자면 실재는 상징화되지 않아요. 물 밑에 남아있는 부분이 항상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바로 실재계라고 표현하는 거고요. 실재계는 아무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언뜻언뜻 드러나겠죠. 그렇게 되면, 그 부분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전의식이 생겨나고 하는 거니까.
박 :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영화에서 드러나는 무의식 부분은 전의식에 더 가까울 거야.
윤 : 영화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감상하는 것까지도 그런 무의식 세계를 느끼게 되는 거니까 흥미를 끌고 재미가 느껴지죠.
박 : 그렇지. 내가 이 영화가 왜 재미있을까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갈등이나 기억, 특성 같은 것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윤 : 하지만 예술적인 은유나 상징을 통하지 않고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그건 오히려 불편해져요. 약간 가려져서 나오면 흥미가 생기지만, 대놓고 포르노면 불쾌감이 드는 것과 같은 원리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예로 들자면 <파벨만스>는 대놓고 표현을 해서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잖아요? 하지만 팀 버튼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덜 거부감이 들게 숨겨서 표현하니깐 관객들이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던 거죠.
박 : 자, 이렇게 해서 총 10편이 마무리가 됐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지. <스즈메의 문단속>부터 시작해서 오늘 얘기한 <웡카>까지. 남근의 상징, 애도반응, 열등감 이론, 융의 원형, 나르시시즘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다양한 설명을 해봤어. 이렇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한 것은 사람의 심리라는 게, 특히 무의식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물밑의 빙산이고 그래서 그걸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파벨만스>에서 엄마가 말했듯이 “영화는 꿈”이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인 꿈. 그동안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윤 :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로 한 사람의 심리 구조를 분석적으로 설명한 프로이트 이론은 이후로도 계속 발전합니다. 특히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인물들이 아이의 심리발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아이가 대하게 되는 사람들을 통틀어 ‘대상’이라고 일컫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대상과의 관계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본틀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엄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커서도 대인관계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부족하죠. 대표적인 경우가 경계선 성격장애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늘 느끼는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테스트합니다. 꿈에 그리던 사람이라고 이상화하다가 작은 실망에도 순식간에 그를 비난해버립니다. 변함없이 자신을 좋아해줄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 변덕을 부리면서 상대를 긁습니다.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죠. 하지만 그 결과 그는 더 외로워지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