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왜? ‘탑건: 매버릭’①

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남자들은 왜? ‘탑건: 매버릭’①

박성근 윤병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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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 탑건
미해군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은 초계비행 도중 적국의 미그기와 마주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과 과감함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최고의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건 스쿨에 입학하게 된다. 술집에서 마주친 찰리에게 호감을 느껴 접근해보는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자신의 교관이었다. 몇 주간의 훈련과정에서 정석적인 비행을 하는 아이스맨과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해 파트너 구스가 죽게 된다. 방황하는 매버릭은 찰리와 가까워지면서 위로를 받는데, 인도양에서 적국과의 교전이 발생해 뒤늦게 합류되어 멋진 비행술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 탑건: 매버릭
3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버릭은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이다. 다크스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만 그는 여전히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다. 사령부로부터 핵개발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임무를 수행할 조종사들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자신은 조종사이지 교관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오랜 동료 아이스맨 제독의 설득 때문에 임무를 맡는다. 각지에서 모인 쟁쟁한 조종사들을 훈련하기 시작하는데 그 안에는 죽은 구스의 아들 루스터도 포함되어 있다. 루스터는 감정이 좋지 않았고, 매버릭은 이런 과정에서 옛 애인 페니와 재회한다. 훈련은 힘들었고 임무 완수는 어려워 보였지만 매버릭이 직접 비행해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작전은 개시된다. 핵시설을 파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매버릭과 루스터는 함께 낙오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면서 둘은 화해한다.


윤병문 : 이번에는 <탑건: 매버릭>, 앞으로 설명하기 쉽게 <탑건2>라고 하죠. <탑건2>를 얘기해볼 건데 그러려면 꼭 <탑건1>하고 같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진짜 36년 만에 나온,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가 나는 영화인데….

박성근 : 윤 원장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이 <탑건> 영화가 특히 각별한 세대라고 할까? 87년 작으로 되어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88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거든. 난 그때 재수생이라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그러는 거야, <탑건>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엄청나게 멋지다고.

윤 : 여자들한테도 잘 생겼다고 난리가 났었죠, 이 배우 누구냐고. 톰 크루즈가 대중의 인기를 끈 첫 작품이었죠.

박 : 내 또래한테 각별하다는 얘기가 뭐냐면,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거야. 근데 얼마 후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

윤 : 그렇죠. 사실 스토리는 뻔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주인공이 잘 생겼다, 아니 그보단 뭐라고 할까 너무 탱글탱글하다, 젊음이 확 느껴지는 영화다…

박 :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야. 스토리는 뻔한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광할까? 젊다는 얘기처럼 그때 <탑건>에서 보여준 톰 크루즈의 모습은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모습이고 여자들도 매력을 느끼는 모습인 거야. 용감하고 동료애 뛰어나고, 정말 테스토스테론 ‘뿜뿜’이지.

윤 : 근데 <탑건2>를 보면 좀 느낌이 달라요. 물론 여전히 톰 크루즈가 멋있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아주 관리를 잘 했죠. 톰 형 안 죽었네, 살아있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짠해요. 형 애쓴다, 형도 늙으니깐 좀 어쩔 수 없구나 싶은 거예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그 점이 이 영화가 우리 세대한텐 각별하다는 거야. 우리도 그렇게 늙었으니깐. 톰 형한테 열광하던 고등학생, 대학생이 이제는 그 또래 아이들을 둔 부모가 되어 있잖아.

윤 : 젊음은 좋은 거면서도 사실 무서운 거예요. 이건 톰 크루즈라는 배우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영화 자체가 그래요. 스토리 배경에서도, 뭐라 할까 미국도 이제 늙었다 싶더라고요. <탑건1>이 만들어지던 당시만 해도 정말로 미국이 세계 최고였잖아요? 유일한 라이벌이던 소련도 무너질 무렵이고. 국력만이 아니라 당시에 물건도 ‘미제가 최고야’ 그랬었죠. 일제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특성상 미국은 마치 힘센 아버지상과 같은 나라였어요.

박 : 특히 그때까지 우리는 지금처럼 잘 살고 국력이 세지는 못했었으니까.

윤 : 우두머리고 대장이라는 거죠. 그렇게 보면 미국은 상징계의 규칙을 만드는 나라였어요. 국가로 보자면 세계에 대해서. 흔히 경찰국가라는 표현처럼. 그러니까 이 나라 나쁜 나라야 그러면 쳐들어가서 때려 부수고.

박 : 적을 딱 규정할 수 있었지. 미그기와 싸우는 내용이 나오잖아? 미그기라고 하면 소련, 적어도 공산권 국가였던 거지.

윤 : 나치놈들, 소련놈들, 중공군들 그러면서 영화에서 상대 나라 이름을 막 댔어요, 눈치 안 보고. 자기네가 세계의 규칙을 만들었으니깐 마음대로였던 거죠. 근데 그러던 미국이 이번에 <탑건2>를 보고 있자니 미국도 이제 늙었구나, 톰 형만 늙은 게 아니구나 생각되더라고요. 일단 적국의 이름을 옛날처럼 대놓고 말하지 못해요. 그냥 핵무기 개발하는 조직이라고만 하죠. 심지어 무기도 적의 것이 더 좋다고 말해요. 옛날엔 미국 기술이 최고라고 자부했었는데, 상대가 5세대 전투기라서 우리 F18로는 못 이긴다고. 그러니깐 매버릭은 조종사가 더 중요하다며 정신승리 같은 얘기를 해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미국과 할리우드의 그런 분위기가 영화 설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거 같아.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톰 형이 늙은 것뿐 아니라 영화주인공 매버릭도 같은 처지지. 36년이 지난 지금 동기는 제독이 되어있는데 매버릭은 대령에 머물러있으니까.

윤 : 문화도 그런 거 같아요. 미국 물건만 최고라고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뇌된 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미국적인 생각을 하도록요. 예쁜 것도 바비인형처럼 서양적인 걸 기준으로 삼고요. 근데 세상이 바뀌어서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같은 경우 경제적으로 위상이 올라가면서 케이팝을 미국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되었죠.

박 : 난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그렇다고 케이컬처가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잖아? 걸그룹 외모를 봐도 얼굴 작고 다리 길고 다 서구화된 모습이거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말이지. 좋든 싫든 현대 사회는 특성상 서구적인 외모가 더 적합한 건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해.

윤 : 그건 문화사대주의나 우생학적인 시각이라고 공격받기 쉽겠는데요?

박 : 그렇긴 해.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그게 톰 크루즈든 차은우이든, 아니면 블랙핑크 제니이든 간에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야. 사람의 보편적인 성향을 설명하려면 진화심리학 이론이 적당해. 처음에 얘기한 대로 사람들은 왜 톰 크루즈를 보며 열광했을까, 그리고 <탑건2>에서의 톰 크루즈 모습은 <탑건1> 때 준 느낌과 왜 다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인 셈이지.

윤 :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적합한 특성이 더 많이 살아남아서 후대에 그 유전자가 전달된다는 게 진화론이죠. 목이 긴 기린이 높은 나뭇잎을 따먹기 유리해서 더 많이 살아남으니까 그 새끼들, 그러니깐 부모 닮아서 목이 긴 기린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결국엔 목이 긴 기린들만 남는다, 이런 생존경쟁, 자연선택을 말하는 거네요?

박 : 그게 신체 특징만이 아니라 특정 행동도 자연선택된다고 보는 게 진화심리학이야. 그럼 진화되어 내려온 행동이 뭐냐, 사람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행동패턴이 뭐냐를 생각해보자고. 산업화된 건 고작 200년 정도이고, 문명이란 게 만들어진 것도 대개 1~2만 년 정도이지. 근데 호모사피엔스가 세상에 나타난 건 60만 년 전쯤이란 말이야. 이 얘긴 현대인들의 행동 특성의 상당 부분이 사냥으로 먹고살던 때의 습성이란 거야.

윤 : 사냥 문화에 적합한 행동과 심리가 후대로 전달됐다는 거죠.

박 : 사냥해서 잘 살아남기 위한 형질이란 게 뭐냐면 힘이 세고, 달리기가 빠르고, 높은 곳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안 아프고 건강한 거거든. 수십 만 년 동안 인류는 전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진화되어왔지.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게끔 선망하도록 심리도 형성이 된 거야. 이런 건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확인이 돼.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냥 놀아. 놀고 싶어하는 심리는 본능에 가까워, 마치 본능적으로 위험한, 날카로운 것 같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애들은 왜 놀까? 어른이 되었을 때 사냥을 잘하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거야. 애들이 놀 때 보면 막 뛰어, 적당히 높은 데로 기어 올라가 점프하고. 특히 남자아이들은 막대기 같은 거만 잡히면 칼처럼 휘둘러 봐. 아빠만 보면 씨름하자고 달려들지.

윤 : 하지만 그건 남자아이들 얘기고 여자아이들은 다르게 놀잖아요? 인형놀이를 한다던가 소꿉장난을 하죠.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그렇지. 근데 지금 톰 크루즈라는 남자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거니까 남자아이들 특성만 얘기하게 되는 건데, 여자아이들의 놀이도 원시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어. 암튼 남자아이들은 장난감을 사도 너프 총, 파워레인저 칼, 장난감 자동차, 리모콘 비행기 같은 걸 골라. 친구들이랑 놀 때도 총싸움을 하고 축구 같은 경쟁적인 운동을 좋아해. 그런 놀이에선 늘 승패가 있고 영웅이 나와.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연습한 개체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사냥에 유리한 법이지. 그래서 이런 행동들을 하도록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어.

윤 : 정신분석학에서는 다르게 보거든요. 라캉식으로 말하면, 그렇게 되는 거는 문화라는 상징계의 규칙을 무의식적으로 아이들한테 주입시켰기 때문이라는 거죠. 넌 남자아이니깐 이렇게 행동해야 해, 칼싸움을 해야지 소꿉장난하면 고추 떨어져,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잖아요? 여자형제가 많은 집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자기가 여자인 줄 알고 행동하면서 여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박 : 늘 얘기되는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논쟁이지. 물론 지금은 둘 다 중요하다고 받아들이고 있고. 근데 난 그 본성을 위주로 설명하려는 거고. 앞서 말한 남자아이의 본능을 톰 크루즈가 잘 보여준다는 거야. 일단 콜사인이 매버릭이야. 매버릭은 우리말로 망아지 같은 어감이거든.

윤 : 그 이름을 듣고 찰리가 ‘엄마가 싫어했냐’며 농담을 하죠. 말 안 듣고 날뛰는 개구쟁이 아들.

박 : <탑건1>에서 전투비행 때 “생각하다간 죽어요”라며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교전 때 적기의 표적이 될 때까지 일부러 속도를 늦출 정도로 무모하기도 하지. 아이스맨이 “넌 아직도 위험해”라고 경고하고, 상관도 “아버지랑 닮아서 영웅심리가 있다”고 말하지.

윤 : <탑건2>에서도 반복되는 대사가 바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죠.

▶톰 형이 짠하게 느껴진다면? ‘탑건:매버릭’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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