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남자들은 왜? ‘탑건: 매버릭’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 : <탑건2>에서도 반복되는 대사가 바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죠.
박 :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알파메일’이 있지. 힘이 가장 세서 모든 걸 차지하는. 매버릭도 그런 셈이야. 어쨌건 비행 실력과 그런 무모함 덕분에 가장 뛰어난 조종사잖아? 게다가 얼굴도 잘 생겼어. 잘 생겼다는 건 건강하다는 신호야.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는 그 사람이 건강할지 아닐지를 외모를 보고 판단하도록 적응되어 왔어. 얼굴이 비대칭이고, 피부에 뭐가 많이 나고, 눈코입이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그 반대면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의미고. 멋진 외모는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을 거라는 암시야. 물론 이건 수십 만년의 원시 사냥사회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지만.
윤 : 잘 생기고 몸도 잘 발달해있고 얼굴도 잘생긴 매버릭은 알파메일인 셈이네요.
박 : 여기서 또 중요한 건 평판이라는 심리기제야. 톰 크루즈라는 잘 생긴 배우가 있는데 우리는 왜 그를 좋아할까?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말이야. 알파메일은 나머지 개체들한테 경쟁자일텐데. 하지만 알파메일이랑 경쟁하는 대신에 그를 추앙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능력 있는 개체와 잘 지내는 것이 생존에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거든. 흡혈박쥐들은 서로 피를 나눠 먹어. 한 마리가 피를 빨아오면 옆자리 박쥐한테 빨아먹은 피를 게워내서 나눠주지. 받아먹은 박쥐가 사냥해왔을 땐 갚아주고. 이런 식으로 협력하는 행동을 하는 개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서 그런 행동 경향은 후대로 전달되거든. 사람도 비슷해.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굴 도와준다면 그의 평판은 올라가고, 좋은 평판을 받은 그 능력자도 지지자들 덕분에 이득을 보지.
윤 : 매버릭이 혼자 잘났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면 매력이 덜 했겠죠. 영화에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동료들을 도와주잖아요.
박 : 톰 크루즈, 다시 말해 젊은 매버릭이 무모한 행동을 하고, 그런 모습을 왜 사람들은 좋아할까 하는 이유는 우리 유전자 속에 전달되어온 원시 사냥사회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설명이야.
윤 : 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그리고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른 식으로 봐요. 젊음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아주 쉽게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상징계적으로 되어 있어요. 남자주인공은 남성적이고 용감해. 그냥 우리 상식에 부합하고 거슬리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매버릭이 제멋대로였던 이유도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고 봐요. 일단 아버지가 없어요. 유능한 조종사였는데 전투에서 죽었죠. 근데 아버지가 너무 잘나면 자식이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큰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기 어렵듯이요. 특히 아들의 기질이 아버지랑 다르게 느슨한 경우 아이는 위축되고 우울 불안해지곤 하죠. 안 맞는 거예요. 반대로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 너무 과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죠.
박 : 매버릭처럼 말이지.
윤 : 아버지와 동일시를 하는 거죠. 이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과정과도 연결이 되고, 경쟁자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깐 우상화하고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래서 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여자도 하필 자기보다 키가 크고 연상인 여자를 좋아하죠.
박 : 나는 좀 다른 측면으로, 매버릭이 여자와 사귀는 장면에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 어떤 경향 같은 게 드러난다고 봐. 1편에서 술집에서 찰리를 보는 순간 딱 첫눈에 마음에 드니까 매버릭이 먼저 접근을 하잖아? 플러팅한다고 하지. 그것도 친구 구스가 거들면서 춤추며 노래까지 부르고. 이런 상황에서 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먼저 접근을 할까? 이것도 진화심리학에서 성 선택, 성 전략으로 설명이 돼. 남자의 정자는 값싸다고 하지. 정자 수도 많고 여기저기 뿌리는 게 자손 번식에 유리하거든. 반대로 여자의 난자는 비싸. 개수가 제한되어 있지. 게다가 자궁은 더 귀해. 한번 임신하게 되면 10달 동안 잘 사용해야 하거든. 소중하지. 그래서 여자들은 짝짓기 전략에 있어서 신중해. 매버릭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찰리는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지. 남녀는 연애에서도 이렇게 기본적인 성향이 달라.
윤 : 하지만 그것도 요즘 세대는 여자들이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잖아요? 그러니깐 구애 행동에도 문화적인 영향이 있다고 봐요.
박 : 맞아. 그렇기 때문에 사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난받는 면이 있어. 남자가 적극적이라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고 했다가… 아까 아버지와의 관계 문제도 아버지가 훌륭하면 아들이 주눅이 든다고 했다가 동일시해서 더 강해진다고도 말하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아냥을 사곤 하지. 근데 이건 좀 억울해. 사람의 복잡한 심리기제가 어떻게 공식 하나에 맞아떨어지겠어?
윤 : 그건 심리를 표현하는 데 언어라는 것이 사용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수학이나 과학처럼, 1더하기 1은 2처럼, 공식으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죠. 언어라는 건 불완전해요. 언어학에서 기표와 기의, 이렇게 얘기하는데 언어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내가 원하는 뜻을 상대방한테 확실히 이해시켜줄 수 있지가 않거든요. 내가 사과라고 말해도 내가 먹어본 사과랑 상대가 먹어본 사과가 다를 수 있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난 달고 빨간 부사를 상상하면서 말하는데 상대는 시큼한 초록색 아오리를 떠올릴 수도 있는 거거든요.
박 : 그렇다고 정신의학이론이 논리적이지 않은 건 아니야. 여러 가설이 있지만 다들 논리성이 있지. 설사 다른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말이야. 실제로 환자를 보다 보면 어떤 사람은 프로이트 이론이 들어맞고 어떤 사람은 융 이론이 적합하거든. 중요한 건 대화하면서 어떤 쪽일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환자가 깨닫고 동의하는 지점이 나와. 그러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걸 우리 의사들은 직접 확인하곤 하잖아.
윤 : 그건 우리가 지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형과 제가 다른 설명을 붙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박 :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보자고. 1편이 아직 어린 사내아이 같은 특성을 보이는 20대 톰 크루즈라면, 2편은 조종사이던 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지. 인간은 어른이 되어서도 심리사회적으로 계속 발달을 해. 발달이라기보다는 난 변화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20대일 때의 심리와 50~60대일 때의 심리는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하지. 에릭슨에 따르면 청년기는 친밀감을 성취하는 시기라고 해. 뭔가에 익숙해지는 때라는 거야. 일에서도 그렇고 연애 같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이때 이룬 거를 바탕으로 30대에서 50대까지 열심히 살면서 뭔가를 이뤄내. 생산성의 시기라고 하지. 그런 다음 이제 60대가 되면 자신이 이룬 것을 마무리하는 자아통합의 과정을 거쳐야 해.
윤 : 그렇게 되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느끼게 되죠.
박 : 제독까지 오른 아이스맨은 아마 자아통합을 이뤘을 거야, 나 잘 살아왔다고. 하지만 매버릭은 생산성의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 같아. 그저 조종사이던 때의 성취감에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지. 그 나이가 돼서도 여전히 젊었을 적의 가죽 점퍼를 입고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타면서 아직도 자신이 전투비행사인 걸로 착각해. 그래서 아이스맨이 “It’s time to let go”라고 충고해. 그 시절을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고. 일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매버릭은 변화하지 못했어. 젊은 시절 사귀었던 페니와 2편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나오지. 가만 보면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페니랑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 것 같아. 페니랑 데이트한 날 페니 딸이 돌아오자 창문으로 도망쳐. 10대 아이 같지. 다크스타 프로젝트에서 무리하다가 추락해서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식당에 들어온 장면도 엄마 말 안 듣고 가출했다가 거지꼴로 돌아온 청소년 같아.
윤 : 그리고 매버릭은 정착을 못 해요. 남자가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엄마를 찾잖아요, 엄마의 이미지를 가진. 근데 기대했는데 나중에 가면 실망하는 거죠. 엄마처럼 모든 걸 해주질 않으니깐. 다른 더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또 실망을 하고. 바람둥이들이 대개 이러는데 매버릭도 이런 측면이 있어 보여요. 마침 아버지도 일찍 죽고 없으니까 더.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사람의 행동도 반복이 되고, 나이를 먹어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떠돌죠.
박 : 반복이 맞아. 매버릭도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루스터도 아버지 구스가 죽었어. 매버릭과 루스터는 같은 입장인 거야. 그래서인지, 자기가 살아온 삶에 후회가 있어서인지 매버릭은 루스터가 조종사가 되는 걸 방해해. 물론 루스터 엄마의 유언이라고 설명되긴 하지만. 2편이 진행되면서 결국 루스터는 매버릭처럼 돼. 도리어 매버릭한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요”라며 되받아치지.
윤 : 매버릭이 루스터한테 아빠 역할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왜냐면 매버릭 본인이 결혼해본 적도, 아이를 낳아 아빠 역할을 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나중에 화해하는 걸 보면 부자 관계라기 보단 동료 사이에 가까워요.
박 : 매버릭만 과거에서 못 벗어난 게 아니라 영화의 플롯 자체도 똑같아. 마지막에 매버릭의 낡은 격납고에 등장인물들이 다 모이잖아? 모두들 과거에, 추억에 젖는 거지. 하기야 나도 마찬가지였지 뭐. F14의 날개가 펼쳐지는 장면에서 아마 우리 또래 남자들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을 거야. 아무리 F16, F18이 나왔어도 남자아이들한테는 날개가 접히는 F14 전투기는 로망이거든.
윤 :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분석은 하고 있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볼 당시엔 그저 재밌게만 봤을 뿐이죠. 한마디로 <탑건2>는 향수에 젖는 영화에요. 그러니깐 톰 형이 짠하게 느껴지는 거고요.
프로이트가 아동기의 정신성적 발달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였다면, 에릭슨은 성인기 이후의 세 단계를 추가하면서 심리사회적인 발달의 이론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발달이란 게 아동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 동안에도 계속 된다고 본 거죠. 그렇게 해서 인생을 총 8단계로 나눴고, 각 단계마다 완수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이트 개념의 구강기에 해당하는 유아시절엔 기본적인 신뢰를 쌓느냐 아니면 불신감을 키우느냐가 중요합니다. 걸음마를 배우고 배변훈련을 하는 항문기 시기엔 자율성을 키워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수치심과 회의감이 많아지게 됩니다. 유치원 나이 때인 남근기에는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느냐, 금지된 것까지 하려다가 죄의식을 느끼게 되느냐가 결정이 됩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잠복기 아이들은 스스로가 근면한지, 아니면 열등한 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춘기인 생식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러지 못하면 역할에 혼란이 초래됩니다.
이후 성인기에 3단계가 추가되는데, 청년기에는 친밀감을 쌓느냐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느냐, 장년기에는 생산성을 발휘해 성취를 이루느냐 아니면 그대로 침체되어 버리느냐, 노년기에 이르러서는 자아를 통합하게 되느냐 절망감에 빠지게 되느냐가 결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