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음료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펩시가 1990년대 필리핀에서 개최한 이벤트는 마케팅 프로모션 업계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해당 이벤트는 현지 음료 시장 점유율 25% 이상 끌어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다 공장에 화염병과 수류탄을 던져 인부 5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불매 운동으로 끝났습니다. 일명 ‘넘버 피버’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병뚜껑 당첨 이벤트로 시작됩니다.
1992년 펩시는 필리핀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 파격적인 이벤트를 엽니다. 바로 음료 뚜껑 뒷면에 표시된 세 자리 숫자 코드에 따라 100페소(약 2천300원)에서 1백만 페소(약 2천 3백만 원)까지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였죠. 과거 우리나라의 병뚜껑 이벤트라곤 ‘한 병 더!’ 정도였는데 여러모로 통 큰 이벤트였죠.
당시 100만 페소는 필리핀 화폐 가치로 치면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의 수십 년 치 수입에 해당했죠. 한번 당첨으로 인생이 바뀌어버릴 수 있는 복권 당첨 1등과 같은 액수와 같았습니다. 어차피 음료를 사 먹는 거 복권까지 얻을 수 있으니 필리핀에서 콜라를 비롯해 마운틴듀, 세븐업 등 펩시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첨 확률은 높지 않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에게는 펩시의 병뚜껑은 나의 운명을 바꿔줄 구세주 같은 존재였죠.
펩시는 필리핀에서 시장 점유율 25%까지 확장하면서 늘어나는 주문 생산량에 맞추기 위해 공장 인력을 긴급하게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일을 마치면 더 많은 펩시를 사러 경쟁적으로 상점으로 뛰어가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펩시 측은 당첨금으로 총 5000만 페소, 약 11억 원을 배포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정도 흥행이라면 현금을 뿌려대도 ‘남는 장사’였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마지막 당첨자 발표날인 1992년 5월 25일이 옵니다.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복권 당첨처럼 당첨 번호를 TV 생중계했죠. 당시 필리핀의 온 국민은 이 방송을 주목했습니다.
당첨 번호는 349번이었습니다. 전국이 환호의 열기로 들끓었습니다. 백만 페소에 당첨 뚜껑은 총 50만 개였고 일부 필리핀 사람은 여러 개의 당첨 뚜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0만 개라니…생각보다 좀 많아 보이지 않나요?
사실은 이것은 제조업체의 인쇄 실수로 349번이라는 한 번호로 찍힌 병이 대량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숫자가 발표된 다음 날 5월 26일 필리핀 펩시 사무실에는 자신의 당첨금을 달라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회사는 약 5조 원에 해당하는 거액의 돈을 지불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펩시의 최고 경영진은 필리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언론을 통해 이 어이없는 실수를 공표했습니다. 그리고 상금을 줄여서 주겠다는 타협을 제안합니다. 인생이 걸린 문제에 사람들이 이해했을까요?
수천 명의 사람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첨금을 내놓으라고 집단행동으로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펩시가 응답하지 않자 화가 난 군중들은 사무실 창문에 돌을 던지고 제품이 담긴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행동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사태는 소송으로 번지고 일부 당첨자들은 마지못해 단돈 500페소, 약 1만 원을 받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당첨 병뚜껑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린 회사는 당초 예정한 총상금 11억 원 대신 240억 원이라는 큰 비용을 쓰게 됩니다.
게다가 합의되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송은 10년이나 길게 이어졌고 펩시가 승소했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만회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는 필리핀에서 철수하진 않았으나 그 이후로 어떤 프로모션도 진행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서는 ‘349가 되다’라는 신조어가 생깁니다. 이는 ‘거만함으로 남을 속이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지식 아닌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