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 비로소 세계적 명성 얻은…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삶

세기의 비하인드

70세에 비로소 세계적 명성 얻은…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삶

댓글 공유하기
70대가 되어서야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쉽지 않았던 삶에 대해. @쿠사마 야요이 재단

70대가 되어서야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쉽지 않았던 삶에 대해. @쿠사마 야요이 재단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는 호박 안에 집요하게 찍힌 둥근 물방울무늬 그리고 무한 그물 무늬 표현으로 유명합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 그의 작품이나 설치미술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묘한 광기와 집착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한창 활동 중이던 젊은 시절에는 큰 주목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가 70대가 되고 정신적인 문제를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서야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조현병을 작품으로 승화한 쿠사마 야요이의 쉽지 않은 삶을 들여다봅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호박’ @쿠사마야요이재단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호박’ @쿠사마야요이재단

■평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환각을 보다’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에서 묘목 사업을 하는 부유한 가정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조현병 증세가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것이 질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치료는커녕 바보 같은 말을 한다며 매질을 일삼았습니다. 이때 쿠사마는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거기에 아버지는 가정에는 큰 관심이 없이 밖으로 나돌며 바람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화가 난 어머니는 어린 쿠사마에게 아버지를 염탐하도록 시켰고 그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국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불안한 가정사로 인해 쿠사마 야요이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성에 대한 강박과 혐오에 시달리게 됩니다.

병세가 심해진 쿠사마 야요이는 결국 환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집안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후 눈에 남은 잔상으로 빨간 물방울무늬가 온 집안을 덮이는 착각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은 그를 일생을 따라붙었고 그의 작품에 유일한 소재가 됩니다. 자신의 정신적 병력을 작품으로 풀어낸 것이죠.

쿠사마 야요이 어린 시절. @쿠사마야요이재단

쿠사마 야요이 어린 시절. @쿠사마야요이재단

쿠사마는 어머니에게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묵살당합니다. 어머니는 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일본 전통 회화를 배우라고 권했죠. 쿠사마 야요이에게는 맞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종전 후인 1948년 그는 일단 어머니의 말을 따라 일본 회화를 배우기 위해 교토 시립 미술 공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통제해온 어머니에게서 탈출한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환영을 꾸준히 그려온 그는 23세였던 1952년 마츠모토 시민회관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그의 작품을 유심히 보던 나가노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는 그의 그림에서 조현병을 포착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쿠사마는 비로소 자신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호 박사는 그에게 머릿속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반복적인 패턴을 만드는 것으로 ‘예술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의 독려에 따라 쿠사마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며 예술혼을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동양에서 온 아방가르드 여왕’이라고 불렸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동양에서 온 아방가르드 여왕’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그가 무작정 미국행을 결심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보고 강한 영감을 얻게된 겁니다.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오키프에 관한 자료를 찾던 그는 오키프의 주소를 알아내 편지와 함께 자신의 그림을 몇 점 보냈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이에 화답하며 답장을 보내게 됩니다.

흥분한 쿠사마 야요이는 당장 미국으로 갈 결심을 합니다. 오키프는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충고했지만 쿠사마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1957년 자신의 치마폭에 달러 뭉치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행 ‘아방가르드 여왕’…여전히 곤궁했다

그는 시애틀과 뉴욕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이력도 명성도 없는 일본에서 온 작은 여류 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전시회 개최에 돈을 다 써버린 쿠사마 앞에는 가난만이 남았습니다. 그는 낡은 문짝을 침대로 사용했고 쓰레기통 속에서 생선 머리와 썩은 채소를 구해 수프를 끓여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그러나 가난이 그의 창작욕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그는 이후 그의 명성을 쌓게 한 Infinity Net(무한 그물망) 시리즈를 창작합니다. 그중 하나는 높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캔버스에 계속 이어지는 그물망을 한가득 연결하는 대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물망은 무한한 절망이었고 검은 점은 침묵이었다고 말합니다. 전시회를 하든, 대작을 그리든 쿠사마 야요이가 뉴욕의 ‘흔한’ 무명 화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예술계에 알린 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1966년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 의사를 전했지만 비엔날레 측은 이를 거절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그는 무작정 베니스로 날아가 전시장 앞 잔디에 약 1500개의 물방울무늬 오브제를 깔아놓고 “개당 2달러!”라고 적어놓습니다. 관람객들은 그의 기발한 설치 미술에 주목했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장을 받게 됩니다.

미국 미술계에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전 운동과 성을 주제로 센트럴 파크, 브루클린 브릿지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벌거벗은 남녀의 몸에 물방울무늬를 그려넣는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뉴욕의 미술계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아방가르드의 여왕’이라는 별칭도 따라 붙습니다.

쿠사마의 파격 퍼포먼스는 일본에까지 전해집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그의 일탈 같은 예술활동을 부끄러워하며 ‘국가적 재앙’이라고 불렀습니다. 쿠사마의 문제 많은 어머니는 이를 두고 “딸이 어렸을 때 병으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애 유일한 남자친구였던 예술가 조셉 코넬.

그의 생애 유일한 남자친구였던 예술가 조셉 코넬.

명성은 얻었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았던 쿠사마 야요이는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생을 통틀어 유일한 남자 친구인 예술가 조셉 코넬이 세상을 떠나면서 낙심한 쿠사마는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십수 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조용하면서도 꾸준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재평가되며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1989년 뉴욕의 현대미술센터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내놓습니다.

대중은 쿠사마 야요이의 광기 어린 물방울과 무한 그물망에 사로잡힙니다. 열광적인 인기에 힘입어 1998년 화가들의 꿈의 무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쿠사마 야요이 대규모 전시회가 열립니다.

일본 정부는 2016년에 쿠사마 야요이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일본 정부는 2016년에 쿠사마 야요이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상징, 물방울무늬는 국제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루이뷔통, 페라가모 등 럭셔리 브랜드에서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내놓으며 작품의 가격은 나날이 높아져 수십억 원을 호가합니다. 꾸준히 그려온 작품은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를 부끄럽게 생각했던 일본 정부는 2016년에 문화훈장을 수여하고 2017년 도쿄에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을 개관합니다. 이곳은 세계 미술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됩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조현병을 작품으로 풀어내다 보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의 다작 덕분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는 조현병을 작품으로 풀어내다 보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의 다작 덕분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는 여전히 정신병원 입원 상태입니다. 이제 쇠약해서 걷지 못하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붓이라고 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않고 3층짜리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는 이를 ‘자기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의 소음을 몰아내는 끝없는 치료라는 것이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은 지금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지식 아닌 지식>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