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줘”에 지친 미국 여성들…‘음식 이혼’ 외쳤다

“밥줘”에 지친 미국 여성들…‘음식 이혼’ 외쳤다

미국 주부들이 “푸드 디보스!”를 외쳤다. 말 그대로 가족 식사 준비와 자신을 분리하는 현상이다. 픽셀즈 사진 크게보기

미국 주부들이 “푸드 디보스!”를 외쳤다. 말 그대로 가족 식사 준비와 자신을 분리하는 현상이다. 픽셀즈

미국 가정에서 저녁 식사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매일 가족 식사를 책임지던 이들이 더 이상 ‘집안의 주방 관리자’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푸드 디보스(Food Divorce·음식 이혼)’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가족 식사 준비와 자신을 분리하는 현상이다.

최근 미국 매체 야후 뉴스는 “요리를 그만두며 저녁 시간을 되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핵심은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다. 오랫동안 가족의 식사를 책임져온 이들이 누적된 피로감과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미국 시애틀에 사는 작가 캐슬린 도너호는 팬데믹 이후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원래도 평일 저녁 식사를 거의 전담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하루 다섯 끼 가까이를 챙겨야 했다. 그는 매주 식단을 계획하고, 레시피를 따라 만들고, 아이들 접시에 채소를 꼭 올려놓으려 애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녁 시간이 너무 괴로워졌다”고 느꼈다.

결국 그는 평일 요리를 중단했다. 대신 냉동식품이나 간단한 식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치즈 샌드위치나 퀘사디아 같은 간편식도 거리낌 없이 식탁에 올렸다. 주말에만 가볍게 요리하며 가족·이웃과 함께하는 느슨한 저녁 모임을 택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 분위기가 오히려 좋아졌다는 것이다. 도너호는 “저녁이 음식 자체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됐을 때 가족이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야후가 올해 성인 16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는 “가정 내 요리 분담 방식 때문에 자주 불만을 느낀다”고 답했다. 11%는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요리를 거부한 적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년 여성층에서 이런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녀가 성장한 뒤 “더 이상 가족 식사를 책임지는 역할에 묶이고 싶지 않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앤 웰시는 “아이들이 집을 떠나는 순간 많은 여성들이 ‘이 역할의 임기가 끝났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작가 에린 화이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요리를 즐겼고 요리 잡지와 요리책을 수집할 정도였지만,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열정이 사라졌다. 이후 가족 식사는 각자 필요할 때 먹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함께 식탁에 앉고, 누군가는 늦게 먹는다. 대신 그는 저녁 준비에 쓰던 시간을 운동이나 글쓰기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 현상을 단순한 ‘요리 포기’가 아니라 가사노동 재조정의 일부로 바라본다. 특히 맞벌이 증가와 배달 플랫폼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 연구에서는 음식 배달이나 장보기 대행처럼 가사노동을 외주화한 부부가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결과도 발표됐다.

전통적으로 가족 식사는 미국 문화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일 정성껏 차린 집밥”보다 가족 구성원의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냉동식품이나 간편식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성의 없는 식사’가 아니라 ‘삶의 부담을 줄이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미국식 가족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저녁 식사가 가족의 의무였다면 이제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유연한 공동생활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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