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가장 잔인한 달입니까?”

프런트 에세이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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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수필을 떠올려본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입니까?”

한 남자가 묻고 있었다. 어스름이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4월 5일 식목일 저녁이었고,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나는 그 남자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방금 전에 나는 그에게 이별을 선언했고, 우리는 어색하게 또는 참담한 심정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날의 버스는 왠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우리의 기분과는 달리 봄바람은 상큼했다.

드디어 나를 태울 버스가 왔고, 나는 어색하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악수를 하고 뭐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버스에 올라서는 일부러 시선을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수필을 떠올려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첫 만남은, 스무 살이 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

그와 나는 인생에서 세 번 만났다. 첫 만남은 내가 대학생이 되던 갓 스무 살의 봄날이었다. 그날 우린 처음 만나 그의 대학 축제에 함께 갔다. 그는 나의 이름을 모르고 나 또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채. 그날 나는 그의 학교 앞을 지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고 있었고, 그도 그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그는 학교 앞에서 내리지 않았다. 내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와 박혀버린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데 한 남자가 수줍게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양복을 차려입은 큰 키에 인상이 좋은 남자가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어디서 참 많이 본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는 버스에서부터 줄곧 망설였다면서, 자신의 축제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힘겹게 말하는 거였다. 어린 숙녀의 자존심으로 몇 번인가 거절을 하다가 결국 그의 학교 축제에 갔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복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첫 만남임에도 그의 신중하고 젠틀한 분위기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을 함께 먹고 우린 헤어졌다. 그는 나를 간절하게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이상한 치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간청에 못 이겨 겨우 이름 석 자만 가르쳐주고 끝내 연락처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은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였다. 지금 생각하니 끔찍하게 애늙은이 같은 말이었다. 헤어질 때 그는 그의 연락처를 적은 메모지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마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후 오랫동안 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세번째 만남은 거의 5년 만이었다

‘이 만남을 기다린 건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두번째 만남은 그 이듬해 여름이었다. 우연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우리가 헤어진 지(또는 만난 지) 오늘이 451일째’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달력을 보고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단 말인가…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공연히 매정하게 굴었다. 그날도 우린 차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그리고 세번째 만남은, 내가 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겨울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연말이었다. 거의 5년 만이었다. 나를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냈는데 연락하려고 마음먹은 데만 두 달이 걸렸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이 만남을 기다린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내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세번째 만남은 좀더 길었다. 석 달간 우린 일곱 번을 만났다. 우린 만나면 늘 정처 없이 걸으며 이야길 했고 그는 늘 깍듯했다.

다만 내가 폭설이 온 다음날 눈 얼음 위를 걷다가 넘어질 뻔했을 때, 그가 내 손을 단 한 번 꼭 잡아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갓 서른을 넘긴 그는, 아버지가 이제는 손주를 안아보고 싶어하신다고 말하며 나를 그윽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5년 전 축제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말했던 것처럼 힘겹게 말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 달을 내내 망설이다 나는 4월 5일 식목일에 그가 내게 내리려한 희망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창밖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카페에 앉아 그에게 세번째 이별을 고한 것이다.

4월은 재생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재생을 요구함으로써 또한 잔인하다

‘공허한 추억이 재생되는 이 4월마저 없다면 얼마나 인생이 쓸쓸할 것인가’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스무 번의 봄이 내 인생에서 그후로 흘렀다. 4월도 스무 번을 맞은 셈이다. 4월이 오면 ‘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입니까?’ 하고 뜬금 없이 묻던 마지막날의 그가 간혹 생각난다.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되고 있는데, 거기에 관해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4월은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4월은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함으로써 또한 잔인하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원래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시라고 한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했다고 한다.

시인의 원래 의도는 어떻든간에, 나는 ‘공허한 추억’이 재생되는 이 4월마저 없다면 얼마나 인생이 쓸쓸할 것인가를 생각하곤 한다. 그때 스물다섯 살 무렵엔 봄이 그렇게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런데 요즘엔 왜 이렇게나 봄이 애틋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봄을 좋아하면 늙어가는 징조라는데….

인생이 일회성이라는 인식이 나이가 들면서 더 절실해지기 때문일까? 겨우내 땅속에 죽은 자처럼 매장되어 있던 생명들이 새봄이 오면 재생한다는 것. 그 사실은 해마다 겪게 되는 진리이며 자연의 아름다운 섭리다. 겨울을 이긴 꽃들이 저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인생과 늙어가는 몸을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잔인한’일이다. 그러나 그 잔인한 슬픔이야말로 한 번뿐인 인생에 아름다움을 주는 꼭 필요한 독인지도 모른다. 다만 해마다 피어나는 꽃처럼, 세월이 갈수록 해마다 추억이 더욱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 그것 또한 자연이 유한한 인간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무 살, 그 해 4월의 싱그럽던 ‘잔인함’을 추억하며…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몇 년 전 개봉했던 일본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린다. 비 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 포스터 속에서 여주인공은 빨간 우산을 받쳐 들고 촉촉한 눈빛을 맑게 빛내며 봄비 속에 서 있다.

벚꽃이 눈처럼 흩뿌리는 봄날의 도쿄. 대학 신입생 우즈키의 4월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고향인 홋카이도를 떠나 도쿄로 유학 온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한 서점에 들른다. 그 서점에는 그녀가 고교시절부터 동경하던 선배가 일하고 있다. 우즈키가 그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선배 때문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서점에 들른 우즈키는 첫사랑 선배와 처음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그가 빌려준 망가진 우산을 들고서 빗속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얼굴엔 풋풋한 미소가 번진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랑 얘기가 시작되려나 싶은 순간에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예고하는 첫사랑의 허무함을 은유라도 하듯이.

2002년, 작품집 하나 낸 적 없는 늦깎이 신인이 쟁쟁한 기성 작가들을 제치고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가 권지예. 그녀의 작품 ‘뱀장어 스튜’는 심사위원 7명이 전원 수상작으로 합의했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깊이 있는 주제를 간결한 문장으로 요약해내는 그녀의 속도감 있는 문체는 읽는 이를 단숨에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4월 이야기’라는 다소 막연한 주제로 그녀에게 청탁 전화를 넣었다. 잠시 망설이며 생각해보마 하던 그녀가 몇 시간 뒤 써보겠다는 답을 해왔을 때, 실은 은근히 영화 ‘4월 이야기’류의 풋풋한 추억담을 기대했다. “왜 4월이 가장 잔인합니까?” 묻던 ‘그’와의 세 번의 만남과 세 번의 헤어짐. 그녀의 추억이 담긴 글 에서 향긋하지만 치명적인 4월의 향기를 맡았다. ‘처음’이라는 단어의 싱그러운 떨림으로 기억되는 스무 살, 대학 신입생 시절의 향수와 함께….

누군가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또 어떤 이에게 4월은 행복한 계절이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잔인했던 4월의 기억마저 행복한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4월이 갖는 잔인함의 미학일지도 모르겠다.

Profile

권지예 /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 프랑스 파리7대학 동양어문학부 비교문학 박사. / 1997년 문예지 ‘라쁠륨’을 통해 등단. / 2002년 단편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 수상. / 작품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진행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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