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성탄절, 그리고 기러기 단상
캐롤이 울려 퍼질 때면 나는 문득 문득 기러기를 떠올린다. 남편이 들려준 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 하늘엔 기러기 떼가 자주 ‘ㅅ’자 편대로 날아들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성탄절엔가 교회 가서 사탕이나 실컷 얻어들고 오는데 보리밭에 기러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고 한다. 포수의 총에 맞은 모양인데 손톱만한 줄 알았던 기러기가 가까이서 보니 코끼리처럼 컸다고 한다. 항상 배고프던 시절이니 동네로 가져가면 어른들한테 큰 환영을 받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가엾은 것을 땅에 묻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곱은 손으로 언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파지도 않아 멈춰야 했다. 포수들이 와서 가져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은 남편에게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연민을 크게 각인시켜준 모양이었다. 성탄절 무렵이면 남편은 아이에게 그 기러기의 모습과 언 땅의 촉감을 반복해 말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나도 곁에서 기러기를 상상해본다. 내 기러기는 보리밭에 엎어져 죽은 기러기가 아니라 겨울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다.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 크고 어쩌면 무거운 날개를 쉼 없이 펄럭대면서 차가운 겨울 밤하늘을 건너는 기러기 떼. 여리고 곱은 발목으로 보리밭에 잠깐씩 내려앉아 배를 채우고는 다시금 원하는 곳까지 수만 리를 야간 비행하는 기러기 떼다.
그런 기러기 떼는 늘 내게 묻는다. 올 한 해, 원하는 곳에 이르기 위해 어떤 고통스런 노력을 감수했었는지. 별로 한 것도 없이 송년 분위기에 잔뜩 들떠 있는 건 아닌지, 혼자 잘난 줄 알고 살지는 않았는지, 제 일상은 미적지근하고 시시하면서 타인의 일상에 대해선 차갑고 엄격했던 건 아닌지… 몇 년 전부터 내게 성탄절 동물은 그렇게 루돌프 사슴이 아닌 겨울 밤하늘을 나는 기러기떼가 되었다. 성탄절에 기러기를 생각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떤 지갑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
최근에 너무 따뜻한 얘기를 하나 들었다. 생생하고 감동적인 지갑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세 명의 여성이 길을 가다가 지갑 하나를 주웠다. 그들은 주인을 찾아주려고 지갑 안을 살폈다. 2천원쯤의 돈과 지갑 주인이 근처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여고생이란 걸 알려주는 학생증과 출입증이 나왔다. 메모지도 하나 나왔다.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딸한테 건넨 메모지였는데 거기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일하고…’

그런데 그냥이 아니었다. 지갑 안에다 자신들의 감동과 격려의 마음을 넣어서 전해주기로 했다. 그리곤 너무 큰 액수도 안 되고, 너무 적은 액수도 안 된다는 의논까지 해가면서 얼마씩을 넣어 경비실에다 갖다주었다.
돌아 나오면서 그들은 또 약속했다고 한다. 성탄절 무렵에 한 번 더 오자고. 와서 한 번 더 그 착하고 성실할 게 틀림없을 여고생을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가자고. 물론 그때도 이번처럼 익명으로 경비실에만 들렀다 가야 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20~30대의 나는 지갑 분실의 대가였다. 가방에서 지갑만 따로 꺼내들었다 하면 음식점이든 화장실이든 공중전화 부스 위든 어디든 놓고 오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으면 ‘쓰리꾼’의 차지일 때가 많았다. 명절이나 성탄 무렵이면 어김없이 가방 옆구리가 쭉 찢어져 있거나 지갑이 사라지고 없곤 했다.
한번은 두 달 사이에 연달아 그런 일을 겪고 너무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서 엉뚱한 짓을 하기도 했다. ‘나쁜 사람들!’ 운운이라고 써넣은 낡은 빈 지갑을 가방 안에 넣고 나선 것이다. 그저 분풀이 삼아 한 일이었는데, 그 지갑 역시 쓰리 맞았다. 고소하다 좋아해야 할지, 한심하다 해야할 지 판단이 서지 않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하튼 그러면서 내가 지갑 분실에 대해 키워온 것은 불신과 자책과 분노뿐이었다. 절대 돌려주지 않는, 슬쩍 빼가기나 하는 게 내가 아는 지갑 분실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일이 있는 것이다. 원이 든 지갑에 격려금까지 넣어 되찾아주는, 우연히 발견한 가난한 성실과 사랑에 반드시 등 두드려주고 넘어가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지갑관’을, 아니 인간관과 인생관까지 돌아보고 반성했다.
망설이다가 그들의 실명을 허락도 없이 밝혀버린다. 세 분 다 글을 쓰는 유명 인사들이니 그 얘길 직접 쓰실 수도 있고, 그러면 내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셈이 되겠지만, 감동적인 얘기와 이름은 많이 알려질수록 좋은 것 아닌가. 그 세 분은 김점선 화가, 박선이 모 일간지 문화부장, 조은 시인이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지갑이 얇아져서 고생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아예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수입이 전혀 없었던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갑이 얇아지면 마음도 함께 얇아져서 매사에 지레 위축되고 구차해진다. 불행감과 좌절감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갑이 두꺼워진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올 한 해 나는 두 개의 방송 프로그램과 사진 에세이 책 「바다, 내게로 오다」를 쓰면서 수입이 전보다 꽤 늘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행복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오히려 뜻 모를 지출이 수입을 훨씬 앞지르는 듯해 피로감이 더 컸다. 그 피로감으로 나는 지갑 안에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의 말을 써넣고 다녔다.
‘품위란 어려운 시기에도 퇴행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고통에 직면해서도 추락하지 않고 제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야겠다. 그리고 5년째 써온 그 커다란 녹색 트리에 오색 방울들과 꼬마전구 불빛을 밝혀놓고 기원해봐야겠다. 시간이여, 삶이여, 일곱을 일흔 번 곱한 숫자만큼 내가 나 자신과 타인의 허물과 실패와 미움을 용서케 해주고, 지갑 안에 넣고 다녀야 할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며, 어려움에도 뒷걸음치지 않는 품위와 기러기 같은 인내임을 잊지 않게 해주고, 무엇보다 그대들을 일곱 배쯤 더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다오.
진행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