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유치원 원장님 앞에 선 나
그 골목이 이렇게 좁았던가.
한 장의 사진을 앞에 놓고 나는 잠시 망연해진다. 갈라진 시멘트 바닥의 좁은 골목길. 그 나지막한 오르막길은 다음 사진에서도 이어진다. 골목길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다음 사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낯익은 건물 하나.
“할머니 집에서도 이거 먹어봤어요. 그때는 딱딱했어요.”
“그땐 네가 아기였으니까 당연히 딱딱하게 느꼈겠지. 그런데 정말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일들이 기억나?”
내가 만들어준 누룽지를 씹어 먹으며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져서 자란 서너 살 무렵의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는 게 신기하다. 하긴,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아이에게 그때 일은 그리 먼 기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너 살 무렵의 일을 기억하는 건 어른들에게 흔한 일이 아니므로 아이도 차츰차츰 그 시절의 일들을 잊어가겠지. 그리하여 어른이 된 아이에게 생애 최초의 기억으로 되살아나게 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나처럼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입학 원서를 넣으러 갔던 기억이 없는 아이에게는….
일곱 살이 아닌 네 살에,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어느날 불쑥 맡겨진 아이. 예비소집이니 입학식이니 하는 절차도 없이, 이곳 저곳 보육시설을 비교해볼 겨를도 없이, 여러 사정 때문에 시골에서 데려와 무작정 가까운 어린이집에 맡겨야만 했던 아이. 느닷없는 환경의 변화에 매일 울면서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그때가 아이 인생에 최초의 기억으로 반추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그 작은 사회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접하고 배웠지.
그 다음 사진에서는 고동색 미닫이문이 좀더 확대되어 보인다. 나의 기억도 좀더 세밀해진다. 무지개의 색깔을 맞춰서 상으로 받은 딸기 스티커, 단체 견학을 갔던 콜라 공장이며 식물원, 김장 잔치를 할 때 아이들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던 엄마들….
친구가 보내온 사진들은 다시 골목길을 내려가는 풍경들로 이어진다. 내 생애 최초의 졸업식에서 우리들을 대표해 답사를 했던 그 친구는 어느덧 중년의 목사님이 되어 있다.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같은 반이 되기도 했던, 내가 전학한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가 고교 시절 등교 길의 버스 안에서 다시 마주쳤던, 대학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던 친구.
3년째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드디어 최고참이 된 아이는 여유 있게 학예 발표회 무대에 오른다. 3년 전 처음 저 무대에 올랐을 때에는 엄마를 찾으며 울던 아이였는데…. 그때 함께 울고 함께 어리둥절 무대에 서 있던 친구들도 이제는 늠름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강아지처럼 내 아이와 어울려 때로는 서로 물고 할퀴면서 함께 자란 친구들.
야무진 다희, 의젓한 병진, 귀여운 사라, 터프한 성호, 예쁜 윤서, 똘똘한 영재, 얌전한 륜선, 개구쟁이 재찬…. 저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언제까지 내 아이의 곁에 남아 있을까?
그때는 너무도 당연해서 지루했던 일들이 이제는 아련하게 그립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김에 예전 살던 동네를 둘러봤다는 친구의 설명을 읽기도 전에 나는 그곳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진 속의 동네는 마치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30여 년 저쪽으로 밀려갔던 세월이 다시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왔으니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겠으나…. 아, 어쩌자고 저 동네는 저토록 변한 게 없단 말인가.
이메일 속에 여러 장의 사진을 펼쳐놓은 뒤 친구는 마지막에 이런 글을 인용해놓았다.
“과거는 후회의 대상이 아니라 교훈의 대상일 뿐이며, 미래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준비의 대상일 뿐이다. 현재에 집중하라. 그 현재에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
베란다에 서면 어린이집의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의 지붕들도 한눈에 보인다. 심심찮게 드라마 촬영지가 되기도 하는 저 달동네도 이제 곧 재개발에 들어간다. 달동네는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어린이집은 그 안에 새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주거 환경이 나아지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아이의 추억이 깡그리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베란다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당겨본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셔터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진다.
유치원이 아닌 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맞다! 모자!”
나는 재빨리 하얀 털모자를 꺼내 들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인사를 안 했잖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그날의 기억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수업, 첫 시험, 첫 운동회, 첫 진급…. 그리고 다시 졸업, 입학, 졸업, 입학, 졸업…. 그때는 너무도 당연했고 그래서 지루하기도 했던 일들이 이제는 아련하게 그립다. 매일 똑같은 계단을 힘들게 밟아 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한 층 한 층 내가 높아져 있던 나날들.
이제는 계단을 오를 일이 없는 대신 내가 높아질 일도 없다. 지루해질 만하면 졸업과 입학이 다가와 하나의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열어주어 더 높은 곳으로 나를 이끌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가도 가도 끝없는 평지만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저 넓은 평야 어딘가에도 새로운 문은 있겠지? 그런데… 내가 이미 열어놓은 문은 어떻게 닫아야 할까?
“그런데요, 친구들도 아직까지 그 종이 안 받았대요.”
말 안 들으면 취학 통지서가 오지 않을 거라고 겁을 주었지만 아이는 영악하게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왔다. 어른들의 협박에 마음 졸이던 우리와는 세대가 달라도 한참 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는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한 듯 예전보다 훨씬 말을 잘 듣는다.
어쨌거나 곧, 봄기운을 타고 나비처럼 취학 통지서가 날아올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나비처럼 세상의 계단으로 날아가 차례로 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1974년의 내가 그랬듯, 2007년 이른 봄에.
■진행 / 김성욱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편집 후기 / 설렘과 두려움 사이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지금도 그때 나처럼 학사모를 쓰고 취업 게시판을 뚫어져라 보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호기로운 말 덕인지 조상님 묘가 바로 놓인 덕인지 지금 난 운 좋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새로운 문을 열고 첫발을 내딛을 때 느끼는 감정은 기대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사실 전과 다를 바 없는 같은 세상에 놓인 문인데 말이다.
많은 이들이 낯선 문 앞에 서게 되는 2월, ‘놈’도 ‘녀석’도 되지 못한 채 빈 잔에 술을 채우는 ‘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Profile 작가 고은주. 1967년 부산 출생 /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 1999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 장편소설 「아름다운 여름」 「여자의 계절」 「현기증」 「유리바다」 소설집 「칵테일 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