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적 거세’는 법률의 명칭상, 용어에 대한 거부감으로 ‘성충동 약물치료’로 채택됐으나 여기서는 편의상 통용되는 ‘화학적 거세’로 표기합니다.
1 화학적 거세(Chemical Castration)란?
화학적 거세의 오해
화학적 거세는 단순히 성범죄자의 성기능을 불구로 만들어 범죄율을 줄이자는 제도가 아니다. 모든 성범죄에 화학적 거세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화학적 거세를 해도 발기에 영향을 줄 뿐 완전히 발기불능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당한 예가 있다. 10년 간 발기부전이었던 서울 양천구의 60대 신 모 노인이 어린이들을 상습 성폭행한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추행의 도구가 비단 ‘성기’만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삐뚤어진 성욕을 잠재우는 것이다. 성도착증 환자들은 정상적인 성행위로 쾌감을 얻지 못하고 소아 기호증, 성적 피학증, 성적 가학증, 관음증 등 변태적 행동으로 성적 쾌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해 성욕을 줄여 범죄를 막는 것이다.
내친김에 물리적 거세도!
일각에서는 좀 더 강도 높은 ‘물리적 거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약물 투입을 중단하면 다시 남성호르몬이 분비되며, 치료제의 비용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물리적 거세의 가장 간단한 방법은 관련 장기를 떼어내는 것, 즉 남성호르몬을 생성하는 고환 양쪽을 제거하는 것이다.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인권 따윈 없다’고 주장하며 강한 처벌을 원하는 의견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물리적 거세는 신체 훼손의 문제에다 정자 생성의 기능도 영원히 상실하게 되므로 인권 침해의 논란이 있다.
2 화학적 거세 법안과 시행 절차
2008년 9월 박민식 의원이 대표로 발인된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에 ‘화학적 거세’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08년에는 성폭력범에 대한 전자발찌와 치료감호제가 새로 시행되는 단계라 수면 아래에 있었다. 2009년 9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화학적 거세가 하나의 대안으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6월 29일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로 법안이 국회 통과되고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② 화학적 거세의 청구와 판결
검사는 성도착증 환자에 해당되는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감정을 거쳐 법원에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한다. 법원은 15년 범위 내에서 기간을 정해 약물치료 명령을 선고한다. 당사자의 동의는 요건이 아니다.
③ 화학적 거세 명령의 집행
약물치료 명령은 징역형 및 치료감호의 선고와 동시에 이뤄지게 된다. 형벌, 치료감호와 약물치료 명령이 같이 선고된 경우 형벌이나 치료감호를 먼저 집행하고 출소 2개월 전부터 약물치료를 하게 된다.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성충동이 원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에 출소가 임박한 시점부터 실시한다.
한편, 법원이 선고한 치료기간 이후에도 계속 치료할 필요가 있거나 대상자가 치료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검사가 치료기간 연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의무적으로 보호관찰도 함께 받는다. 다만 치료 개시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치료 경과나 생활 태도에 비춰 치료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보호관찰소장이나 본인의 신청에 의해 잠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대상자:16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서 성폭력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만 19세 이상의 사람.
▶약물치료는 법원이 명령으로 선고하고 치료기간은 15년 이내에서 정함.
▶법원은 치료기간을 정해 판결로 치료명령을 선고하되, 선고를 받지 아니한 성폭력 수형자의 경우에는 결정으로 치료명령을 함.
▶이 법 시행 전에 저지를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약물치료 명령 적용.
3 화학적 거세 관련 외국의 사례
화학적 거세는 미국, 캐나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및 동중부 유럽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특히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종래 40%에 달하던 성범죄 재범률이 화학적 거세 대상자에게서는 5%만 나타나는 등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됐지만 호주에서는 도입을 검토하다 과학적·객관적인 검증 방법으로 그 효과가 입증된 예가 없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국
미국에서 최초로 화학적 거세를 시행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를 보면 성폭행범에게 출소 1주 전에 화학적 거세를 시행한다. 아동 성폭행 등 법으로 정한 ‘강력한 성범죄’를 두 번째 저지르면, 화학적 거세 혹은 물리적 거세를 하도록 한다. 화학적 거세를 성폭행범이 거부하거나 건강 상태가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면 물리적 거세를 차선책으로 시행한다. 물론 물리적 거세도 거부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종신형 판결을 내린다.
폴란드
2009년 9월, 15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범 혹은 친족 간의 성폭행범에 대해 강제적 화학적 거세를 규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8년 45세의 남자가 자신의 21세 된 딸을 6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 두 아이를 출산하게 하는 등 일련의 성폭력 범죄에 충격을 받은 국민들과 정부가 추진해 성사시킨 것이다. 2010년 6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15세 미만의 아동이나 친족에 대한 성폭력 범죄자 등은 본인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법원의 명령이 있으면 석방 6개월 전부터 성충동을 감소시키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당사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폴란드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강제로 화학적 거세가 가능한 나라다.
체코
1966년에 처음으로 거세법이 제정되고 1991년에 개정됐다. 오직 자발적인 요청에 의한 거세만이 시행될 수 있다. 본인의 요청이 있어도 전문가위원회(법률가, 불임전문의)의 동의가 있어야 최종 허용된다.
핀란드
1970년에 제정됐으며 성적 본능으로 인해 자신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기타 해로운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행위들이 거세에 의해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 대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본인 신청에 의해 허용된다. 강제적 거세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덴마크
1929년 거세법이 제정되고 물리적 거세를 합법화한 최초의 나라다. 그러나 거세가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폐지되기도 했다. 1973년부터 행동치료가 실패한 경우에 한해 화학적 거세를 적용했다. 거세는 대상자의 신청으로 이뤄진다. 신청자가 ‘성적 본능으로 인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본인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 내지는 사회적 애로를 겪을 정도’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독일
나치시대인 1933년에 거세법이 제정돼 성범죄자에 대해 강제적인 거세를 실시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45년 폐지됐다. 1970년부터는 ‘남성호르몬으로 인해 정신 장애가 있거나 살인, 상해, 성범죄 등의 범죄가 예상되는 사람’에 대해 거세의 요건과 절차를 규정해 거세법을 시행했다. 본인의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과 관련된 심각한 질병, 정신적 장애 혹은 고통 등을 치료 및 완화하기 위한 경우에 허용됐다. 본인의 동의와 의사 진단을 받아야 한다.
4 화학적 거세 법안의 특징과 문제점
이호중 서강대 법학과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화학적 거세법의 특징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화학적 거세가 징역형이나 치료감호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형사제재(징벌)로 정립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제적인 처분이 가능한 점이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본인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① 화학적 거세, 너무나 제한적인 범위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은 모든 아동 성폭력 범죄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조사 결과를 보면 화학적 거세 약물은 ‘정상적인 성행위에서 만족할 수 없는 특유의 성적인 환상과 성취로 성적 욕구를 만족하려는 성도착 범죄자’에게만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화학적 거세 법안에 나와 있듯이 대상자를 성도착증 환자로 제한한 것이다. 그것도 범죄자의 의지, 그리고 다른 심리치료 등의 프로그램과 긴밀히 작용해야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범죄를 부인하는 경우나, 범죄의 원인을 약물, 알코올, 직업적 스트레스 등 다른 원인으로 돌리는 범죄자나, 폭력성, 지배욕 등 비성적인 이유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의 범죄자에게는 재범 위험성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② 화학적 거세, 인권 침해 논란
이번에 통과된 화학적 거세 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점은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점이다. 일부 국가에게 사용하는 화학적 거세는 성도착증 환자가 받는 심리치료나 인지행동치료를 도와주기 위한 보조적인 주사치료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화학적 거세가 처벌의 중심이 됐다.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로 행해지는 것은 100% 치료가 될 수 없다. 즉 일정 기간 동안 성적 활동을 못하게 하는 무력화 제도라 할 수 있다. 현재 법안이 통과된 화학적 거세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징벌제도인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강은호 ■도움말 / 국가인권위원회, 이호중(서강대 법학과 교수), 표창원(경찰대 행정학 교수), 두진경(어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