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와 함께 글쓰기…실력도 공감대도 쑥쑥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일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장 대입 논술 시험을 앞두고 있다거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일 글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좀 더 효과적으로, 좀 더 매력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은 꾸준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규격화된 원칙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곡차곡 글쓰기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좋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볼 때 마감에 대한 약간의 강제성만 주어진다면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답을 학습하는 논술학원이나 글짓기교실에 비해 가족들과 함께라면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엉뚱한’ 생각을 마음껏 전개할 수 있고, 자기 검열 없는 ‘날것’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방학 동안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지난 9개월간 꾸준히 글쓰기 훈련을 진행해온 이 가족의 노하우를 참고하길 바란다. 바로 「한겨레21」, 「씨네21」, 「ESC」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한겨레신문」 문화·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고경태 기자네 가족이다. 20년 가까이 기자 겸 편집자로 글과 함께 살아온 고경태 기자는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창의적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이들에게 ‘매혹적인 글쓰기’를 지도해온 그가 실제로 자신의 자녀와 함께 글쓰기 활동을 하면서 또래 아이들의 가감 없는 모습과 특성을 생생하게 글로 남겼다.
자유롭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담은 글
이들 가족이 펴낸 「글쓰기 홈스쿨」은 지난해 4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총 35주 동안 진행한 글쓰기 연습의 결과물이다. 아빠가 매주 주제를 던져주면 아이들은 각자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빠는 두 아이가 쓴 글을 읽어보며 좋은 부분은 칭찬하고 문제점은 냉정하게 분석해 함께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말이 안 되는 글을 썼을 때는 말이 될 때까지 다시, 또다시 써야 했다. 글쓰기 연습이 진행되는 35주 동안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전부 글감이 됐다. 길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세뱃돈을 받았을 때 등을 모두 글쓰기와 연결시켰다. 아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날도, 온갖 핑계를 갖다대며 글을 쓰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한결같이 아이들의 글을 읽고, 돌려보내고, 또 읽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와 함께 글쓰기…실력도 공감대도 쑥쑥
또 기억에 남는 영화 장면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글을 써오라고 해놓고 막상 써 오면 ‘절반으로 잘라 써오라’고 하고, 또 가져오면 ‘다시 절반으로 만들어오라’고 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시키거든요. 눈여겨 봐뒀던 장면인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용감하게 시작하게 된 거죠.”
무관심했던 아빠, 아이들에게 ‘글’로 말 걸다
물론 100% 글쓰기 실력 향상에 대한 기대에서만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정서적 교류는커녕 마주앉아 제대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나날들이 계속되는 데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또한 작용했다. 고경태 기자는 맨 처음 책 제목을 ‘나쁜 아빠의 글쓰기 홈스쿨’로 제안했을 정도로 스스로 “나쁜 아빠였다”라고 고백한다. 회식에, 야근에 저녁 내내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에야 귀가하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지속하는 아빠였다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보니 어느새 두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 것. 지금까지는 자신이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이제 아이들이 아빠를 외면하는 시기가 닥칠 것이고, 무관심했던 아빠와의 관계는 영영 이대로 삭막해질 거란 위기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아빠를 완전히 제쳐놓기 전에 얼른 아이들을 위한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중 찾아낸 해답이 바로 이 ‘글쓰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글쓰기는 제가 잘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니까요. 영어나 수학 같은 교과목은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을 수 있고 또 엄마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는 편이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빠가 준석·은서에게 꼭 해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9개월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대단했구나 싶기도 해요. 말이 쉽지 일주일에 글을 한 편이라도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그걸 매주 최소 서너 편씩 받고, 또 제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써오라고 하고,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그랬죠. 아이들이 비교적 순순히 따라와준 게 고맙네요.”
“사실 아빠가 계속 잘 쓸 때까지 다시 써오라고 하면 짜증도 나고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한번은 자고 있는데 밤 12시에 깨워 새벽 2시까지 마감을 마치도록 하신 적도 있어요. 계속 쓰다보니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니까요. 아빠가 책을 내신 적이 있어서그런지 눈이 높은 것 같아요.” (은서)
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답이 없어 더욱 힘들었을 글쓰기 연습을 충실히 따라와준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기도 하다. 주말마다 교과목 공부보다 글쓰기에 매달려 있는데도 한 번도 날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지켜봐준 아내 또한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조력자였다.
글쓰기 연습을 통해 한발 더 다가간 가족
TV도 마음껏 보지 못하고, 글쓰는 게 어려워서 머리도 쥐어뜯고, 가혹한 아빠의 잔소리도 견뎌야 했지만, 그래도 9개월간의 글쓰기 연습이 아이들에게 마냥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쓴 글을 보고 누군가 “잘 썼다”라고 칭찬했을 때는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럽고 으쓱했으며 글쓰기 덕분인지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를 모두 맞히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은서). 행여나 책 때문에 유명해지는 건 원치 않지만 그래도 15세 청소년으로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도 뿌듯하다(준석).
긍정적인 변화는 원고지 위에서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내에서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글쓰기 연습을 진행하면서 예전에 비해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아빠와 아이들 모두 만족스럽다. 아빠의 ‘불시 검문’과 계속되는 ‘빠꾸’에 눈물 흘린 적도, 급기야는 다툼을 벌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아빠도 두 사람 글을 보느라 오히려 귀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고맙다는 마음도 든다(준석).

아빠와 함께 글쓰기…실력도 공감대도 쑥쑥
평소 얼굴을 맞대고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던 아이들이 글 안에서는 누구보다 재미나고 수다스러운 화자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또 아빠는 그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됐다는 점에서 글쓰기 훈련이 이 가족에게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글쓰기 연습의 결과물들이 블로그와 사이트, 책을 통해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터라 책임감을 갖고 다소 엄격하게 진행한 면도 없지 않지만 글 속에 흘러넘치는 아이들의 즐거운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 맞춤법이나 논리 전개의 완성도 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빠랑 예전보다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글 잘 못 썼다고 혼날 때도 많아서 오히려 조금 멀어진 것 같을 때도 있어요(웃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면서 실력이 좋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재밌게 쓰는 방법이 조금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음, 글쓰기 연습한 것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2점 정도? 8점은 자다가 일어나서 쓸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뺐어요.” (은서)
“좋은 글이 갖춰야 할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이 잘 들어 있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만의 언어로 분명한 시각을 담아내야죠. 아이들에게 지도를 하면서 그 점을 가장 많이 강조했어요. 두 녀석 모두 눈에 띄게 글을 잘 쓰게 됐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인 것 같아 기쁘고 대견한 마음이 드네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우리의 추억
9개월간의 글쓰기 연습을 통해 두 아이는 각자 글쓸 때 자신의 특성과 장단점도 파악하게 됐다. 논리적이고 신중하게 글을 전개하는 준석과, 창의적이고 재치 넘치는 표현이 살아 있는 글을 쓰는 은서. 규칙적으로 진행하던 연습은 끝났지만 앞으로 지금까지 다져온 실력을 살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린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볼 생각이다. 일단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한동안은 좀 쉬고 말이다.
고경태 기자는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 함께 글쓰기 연습을 진행해볼 것을 권한다. 글쓰기 실력의 개선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평소에 몰랐던 아이들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글쓰기를 가족 간에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가는 하나의 놀이 방법으로 여기고 시도해봐도 좋을 듯하다. 거창하게 고민할 것 없다. 생활 속에서 일어난 소소한 소재들을 갖고 과감하고 멋대로 써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영광의 결과물들은 소중히 간직해두길 바란다. 예쁘게 제본을 해서 나만의 특별한 책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 책을 들춰보며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부모와 함께 나누었던 공감의 순간들을 꺼내 삶의 활력으로 삼을 수 있게 말이다. 아마도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조 / 구로구립 글마루 한옥어린이도서관(02-2611-1543) ■참고 서적 /「글쓰기 홈스쿨」(고경태,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