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사춘기 딸에게 보내는 접시 위 러브 레터’
엄마는 딸의 아침으로 모닝빵 햄버거를 준비했다. 육식을 즐기는 딸아이를 위해 어젯밤 돼지고기를 다져 패티도 만들어두었다. 양상추와 달걀프라이, 치즈와 채썬 양파도 곁들였다. 늦었다고 요란을 떨면서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감고 말리며 치장하던 딸이 겨우 식탁에 앉았다. 햄버거를 집는가 싶더니 도로 놓고는 한다는 말이 “햄버거가 두툼해서 한 입에 안 들어간다”라고 야단이다. 포크로 속을 헤집어 높이를 낮추더니 겨우 몇 입 먹고 다음부터 이렇게 높게 만들면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늦었다며 나가버린다. 요리연구가 최경진씨(45)가 딸에게 찾아온 사춘기와 처음 대면한 아침이었다. 언제나 엄마의 요리가 세계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던 딸이었기에 음식에 불평을 늘어놓는 딸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사춘기 딸과 사추기 엄마가 만드는 소통의 레시피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엄마라고 말해주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가장 혹독한 비평가가 되어버렸다.
“그냥 엄마가 밉고 마냥 서운하기만 하고요. 한번은 우리 집 애완견 사랑이와 산책을 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저보다 사랑이를 먼저 부르며 반기시는 거예요. 그때 저보다 사랑이를 더 좋아한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엄마에게 편지를 쓴 적도 있어요(웃음). 또 저는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거든요. 분명히 뜨거운 게 싫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도 바쁜 아침에 식탁에 놓인 뜨거운 만둣국을 보는 순간 화가 치미는 거예요. 엄마가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절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수현 양(18)은 사춘기가 찾아오자 엄마를 향한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화가 날 때마다 엄마의 음식에 불평을 했는데 그 방법이 엄마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 같았다고.
“언제부턴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쓰더군요. 어느 날은 귀를 뚫고 왔어요. 귀고리를 하고 싶다고 하는 소릴 몇 번 듣긴 했지만 그렇게 덜컥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던 거죠. 한번은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염색을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더군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어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죠.”
친구 몇 명과 함께 온 딸은 아주 기세등등했다. 우리 집은, 우리 엄마는 염색하는 것도 허락해주고, 이해도 해준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최경진씨는 그 모습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언젠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여중생 몇몇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어요. 저희 집에서 염색을 한다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떠는 녀석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에게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면 내 아이도 어느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내 품으로 품는 거죠. 그랬더니 보이더라고요. 또 들리더라고요. 아이의 마음이….”
두툼하다던 햄버거는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크기를 줄였고, 두꺼운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얇게 구워주었다. 뜨거운 만둣국은 작은 그릇에 만두를 몇 개 미리 덜어내 식혀주고, 한식 상차림은 비빔밥으로 간소화시켜주었다. 예민하고 날카롭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저도 제 요리에 얼마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때였어요. 요리의 사춘기는 한참 전에 지났고…. 지금은 사추(秋)기 쯤 되겠네요(웃음). 그런데 그때 사춘기 딸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 거죠. 요리 자체보단 먹을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도리어 제가 요리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었어요.”
최경진씨의 딸 수현이는 엄마의 요리를 러브 레터에 비유했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보면 엄마가 제 생각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가끔 투정 아닌 투정을 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조용히 들어주시거든요. 제 앞에서 진지한 엄마를 보면 속된 말로 ‘이젠 헛소리도 그만 해야겠군’ 싶다니까요(웃음)! 이젠 두근거려요. 오늘 아침 접시엔 어떤 러브 레터가 만들어져 있을까… 하고요.”
빨리 찾아오고, 기간은 길어졌다는 요즘 사춘기. 고등학생인 있는 수현이는 여전히 사춘기라는 큰 바다를 지나고 있다. 가끔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서로에게 닿는 길을 찾았기에 두려운 마음은 없다. 그 길은 달콤 쌉싸래한 부엌을 향해 나 있었다.
최경진 모녀가 추천하는 엄마와 딸이 함께 만들면 좋은 ‘Tea 샌드위치’![]() 사춘기 딸과 사추기 엄마가 만드는 소통의 레시피 1 필러로 오이를 얇게 깎는다. 2 식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준비한 오이를 대각선으로 올린다. 3 식빵의 사이드를 썰어내 정리한다. 4 소금과 후춧가루를 적당히 뿌린다. |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민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