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세요?
서울에 사는 주부 이정희씨(가명, 43)는 요즘 중학교 2학년 딸아이의 외모 가꾸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제 머리 기르기와 염색 정도는 애교로 느껴질 지경이다. 지나가는 말로 귀고리를 하고 싶다고 하더니 바로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덜컥 귀를 뚫고 왔다. 한번은 친구의 신발을 잠시 맡아주기로 했다며 여성용 하이힐을 가져오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엄마인 이정희씨 화장대를 기웃거리며 화장품들을 만지작거리고 사용하더니 자신의 화장품을 직접 구입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정희씨와 딸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어느 날은 아들 녀석이 여동생을 혼쭐내주겠다며 숨겨둔 화장품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딸아이가 죽어버리겠다고 악을 쓰며 울어대는 통에 온 가족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누군가 정희씨에게 외모에만 신경 쓰는 사춘기가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것이라 말해주었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외모 가꾸기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딸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티격태격 싸우며 신경전을 벌이다 보면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춘기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표면적으로 사춘기의 1차적인 증상은 신체적 변화로부터 감지된다. 여자아이들은 가슴이 봉긋 솟아나고, 월경을 경험한다. 남자아이들은 변성기를 맞이하며 거뭇한 수염도 자라난다. 얼굴엔 호르몬 과다 분비로 여드름이 자리 잡아 가뜩이나 외모에 신경 쓰는 아이들을 괴롭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성에 대해 눈 뜨면서 활발하게 이성 교제를 하기도 하고 성(性), 정확하게는 섹스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진다.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포르노 사이트에 가입한 뒤 음란물을 보기도 하고, 컴퓨터 게임에 미쳐 학교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니 학교생활과 학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그럴수록 부모와 갈등의 골은 깊어지기만 한다. 이런 문제 속에서 나타나는 정신적인 감정 변화는 더 큰 갈등을 초래한다. 매사에 짜증을 부리고, 불만을 가지며 부모에게 심하게 반항을 한다. 또래 집단을 중시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밖으로 돌면서 가족과 겉도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시기 아이들의 전형이다. 저녁 뉴스를 통해 가끔 접하게 되는 10대 미혼모나 청소년 폭력 사건 소식은 부모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언제부턴가 내 아이가 내 아이 같지 않고 낯설다. 방문은 걸어 잠그지 않으면 부서져라 쾅 닫아버리기 일쑤다. 비밀과 거짓말이 부쩍 늘고, 외계어 같은 인터넷 용어와 듣기 민망한 욕지거리를 달고 산다.
과하다 싶은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을 제재할 참이면 무섭게 반항하며 달려드는 통에 한 발 물러서기 여러 번이다. 강하고 엄하게 통제하자니 혹여 삐뚤어 나갈까 걱정이고, 그렇다고 저러다 말겠거니 하고 놔두자니 입시 경쟁에 도태될까 싶어 조바심이 난다. 부모 세대가 알던 사춘기는 그저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짓고, 거뭇한 수염과 봉긋한 가슴으로 나타난 2차 성징에 낯을 붉히는 게 전부였던 것만 같으니 내 아이의 사춘기는 유난스럽고 요란스럽기까지 하다. 소리소리 지르며 반항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낳아 키우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은 게 “당신은 누구세요?” 하고 되묻고 싶어진다.
2차 성징과 함께 2차 뇌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
과거에는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사춘기의 문제 원인을 호르몬에서 찾았다. 몸 내부에 호르몬 수치가 변화하고, 성장 호르몬의 영향으로 몸이 성장하면서 체온 등 다양한 신체 현상이 바뀌기 때문에 대담해지거나 반항적이 되거나 성적 호기심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 쉬이 피곤해지고 짜증이 나듯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 시절의 몸의 변화는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춘기의 신체적, 정신적 이상 행위 원인을 더 이상 호르몬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학자들은 사춘기를 이해하는 단서로 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뇌 과학으로 사춘기 행태 원인을 찾고, 행동을 분석하고, 그 증상에 대해 이해를 하며 대처할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춘기 시절 청소년들의 충동적인 행동은 뇌의 전두엽 부분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 자리 잡은 뇌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으니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뇌관 부위, 포유류의 뇌라는 별명처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 영장류에서 특히 발달한 대뇌피질로 이루어졌다.
판단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미처 다 성장하지 못하다 보니 정서적인 반응을 하는 뇌관만 반응을 하는 것이다. 특히 상대가 불쾌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뇌관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증상은 전두엽이 성숙하는 20대까지 지속된다. 충동적이며 반항적인 태도를 이해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사춘기 시절의 문제를 뇌로부터 해답을 구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국립보건원의 제이 기드 박사의 연구부터다. 그는 뇌의 가장 바깥쪽 회백질이 유년기에 증가하지만 정점까지 간 뒤 청소년기부터 감소한다는 것을 청소년의 뇌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회백질이란 인간의 뇌에서 학습 기능과 사고력을 담당하는 뇌의 한 기관이다. 회백질을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와 뉴런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정도가 늘어날수록 넝쿨처럼 가지를 뻗어 다른 신경세포들과 활발하게 정보를 주고받는다. 회백질의 증가는 이 신경세포의 연결이 무성해진다는 것이며 뇌의 학습과 실행 기능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이전에 완성된다고 믿었던 신경세포의 왕성한 활동을 10대의 뇌에서 발견한 것이다. 핵심은 두뇌가 환경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일찍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유연성은 우리에게 많은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사춘기의 뇌가 유아기에 버금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땐 다 그렇지…’ 사춘기 증상으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들
사례 1 고등학교 1학년인 선주는 모범생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시험 문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생겼다. 답을 쓰고도 글씨가 똑바르지 않게 보여 지우고 다시 쓰길 여러 번. 지나친 꼼꼼함과 반복 행동은 신중하다는 칭찬을 종종 듣게 만들었지만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해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선주의 신중함은 일상생활에 장애가 될 정도였고, 결국 강박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례 2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중학생 영훈이는 일명 학교 짱이다. 툭하면 학교를 빼먹었고, 허구한 날 주먹다짐을 했다. 초등학교 때 ADHD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아 초등학생에게나 일어나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단순한 사춘기 반항으로 생각한 부모의 무지로 병이 방치된 셈이다. 영훈이는 요즘 ADHD 치료를 받고 있다.
위의 사례만 보아도 병은 자칫 성격이나 성향, 습관으로 오인하기 쉬운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이 시기 청소년들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생각보다 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환들로부터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땐 으레 다 그렇겠거니 하고 무신경하게 넘겨버렸다가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십상이니 보다 세심하고 면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춘기 증상으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크게 성조숙증과 사춘기 우울증, 학습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틱장애, 강박증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비행청소년, 게임중독증, 시험불안이나 반항장애, 조울병 등이 있다.
요즘 크게 대두되는 성조숙증은 과도한 성호르몬 분비로 인한 증상이 대부분이고 영양 과다로 인한 비만, 스트레스, 환경 변화 등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우울증으로 시작한다. 이 시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적으로 대부분 인정받기 때문에 생각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많이 우울해진다. 더구나 부모가 경제적으로 무리해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있다면 기대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아이는 자신이 부모의 기대만큼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가지고 죄책감마저 느낀다. 외향적인 아이는 밖에서 친구들과 의존하며 어울리다 보면 우울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수도 있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별거, 이혼이나 불화는 성인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시기여서 더욱 위험하다. 정서적인 안정이 필수인 이 시기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되고 여기에 폭력이나 학대까지 더해진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사춘기 우울증 의심 체크리스트 - 거의 매일 혹은 하루 종일 우울해하며 슬퍼하고, 희망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 대부분의 활동이나 놀이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든다. -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나 체중 증가(식욕 감소 혹은 증가)가 두드러진다. - 거의 매일 잠을 못 자거나 너무 많이 잔다. -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지 못하거나 반대로 몸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 늘 피곤하고 짜증이나 신경질을 내며 의기소침해한다. -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지나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 집중을 잘 못하며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늘 망설인다. - 두통이나 복통 같은 신체적 증상을 자주 호소한다. - 반복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자살 구상이나 계획을 세운다. (10가지 증상 가운데 2가지 이상이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
빨리 찾아오고, 기간은 길어진 요즘 사춘기
과거에는 사춘기가 접어들 무렵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적 욕구를 해결했고, 성인으로 대접받으면서 수월하게 어른이 된 면도 있다. 물론 옛날 옛적의 일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 옛날과 비교했을 때 대학과 대학원 등으로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만혼이 보편화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져 사춘기 또한 같이 길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춘기는 앞으로 더 길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이렇게 길어진 사춘기와는 달리 사춘기가 오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신체적으로 여아의 경우는 ‘초경’, 남아의 경우는 ‘몽정’을 사춘기의 시작으로 보는데 요즘은 여아의 경우 10세, 남아의 경우 11세 정도면 사춘기가 찾아오는 게 보통이다.
1900년대 초만 해도 대략 15세, 20년 전만 해도 13세 즈음에 사춘기가 시작됐던 것에 비하면 무려 5년이나 앞당겨진 수치다. 이와 함께 맥을 같이하는 문제가 성조숙증이다. 이렇듯 나이도 먹고, 몸도 다 컸지만 정신적으로 어린 혼돈의 상태로 성인이 되는 게 요즘의 아이들이다. 강남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원하던 최고 대학에 입학하고도 자살한 학생의 뉴스나 최근 벌어진 카이스트 사태는 길어진 요즘 사춘기에 대한 하나의 방증이기도 하다. 빨리 찾아오고, 기간은 길어진 요즘 사춘기가 한마디로 불안정한 ‘어른 아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감성으로 소통하고, 전문가 찾는 것 꺼리지 말아야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처럼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감정이 증폭되고 예민해져 있다. 아이들에게 이성적으로 다가가 원칙을 강조하고 나무라는 것은 더 큰 반항만 부를 뿐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과는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옳고 바른 일이라도 지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는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잘못된 것 알지?” 하고 너그럽게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좋다. 자아 발달의 시기라서 스스로 이해되지 않으면 옆에서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칙을 내세워 무조건 화를 내지 말고 아이의 판단 기준을 인정하자. 매번 반복되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며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 편이 좋다.
부모가 또래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좋다.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듣고, 어려운 게임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공감하며 함께 즐길 적극적인 자세가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 시기엔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 남자아이에게는 아빠라는 존재가 자신이 따라야 할 롤모델이다. 타인과 소통할 때 아빠를 모방하기도 한다. 여자아이는 아빠의 모습을 통해 남자의 성 역할을 이해하게 된다. 아빠와 친밀한 아이들이 매사에 적극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이성에 눈 뜨게 되는 이때 성에 대해서도 밝고 개방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드러내 말하길 꺼리는 부모의 자세는 아이들에게 결코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
성에 대해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 먼저 솔선수범해 보일 필요가 있다. 여자아이의 경우 초경을 축하하며 생리용품을 함께 구입하고 사용 방법이나 생리 주기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다. “엄마가 될 수 있겠네”라는 식의 말은 아이에게 막연한 두려움만 가중시킬 수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수위 높은 포르노를 접하기도 하는데 무조건 나무라기보다 성에 대해 잘못된 가치관이 생기지 않도록 조언을 해주는 편이 좋다.
인간의 방황을 속되게 ‘지랄’이라고 표현해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인간에겐 일생 동안 소비해야 하는 지랄, 즉 사춘기 시절과 같은 혼돈과 방황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총량은 사춘기 시절에 쓰지 않았더라도 일생 동안 언젠가는 꼭 쓰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한때는 다 그런 반항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니 조금은 ‘당연한 듯’ 바라봐주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역설인 셈이다. 하지만 부모 차원에서 해결이 힘든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꺼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옳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