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아이 지키기]학부모 진진연씨의 내 딸아이 왕따 극복기](http://img.khan.co.kr/lady/201202/20120208190516_1_kids_keep5.jpg)
[학교폭력, 아이 지키기]학부모 진진연씨의 내 딸아이 왕따 극복기
자기사랑 운동가 진진연씨(41)는 정말 잘 웃었다. 목청을 드러내며 박장대소를 하지는 않지만 얼굴에서 싱글벙글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조울증으로 고통받으며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던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는 밝고 긍정적으로 보여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에요. 절 바라보고 있을 많은 왕따 피해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절 때리고 괴롭히는 친구에게 ‘하지 마!’라는 말 한마디를 뱉어내지 못한 스스로를 경멸하며 살았어요. 부모님이 아시면 ‘따돌림이나 당하는 애’라며 절 부끄럽게 생각하실 것 같았고요. 왕따는 피해자에게서 살아야 할 이유를 서서히 지워버리는 무서운 학교폭력입니다.”
진진연씨에게 끔찍한 상처를 남긴 학교폭력은 친구의 사소한 시기에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원하는 학교 연극의 주인공으로 그녀가 발탁되자 이를 질투한 친구가 갑자기 왕따 가해자로 돌변해버린 것. 더구나 평소 친한 친구였다.
“처음에는 담당 선생님에게 ‘주인공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시키더군요. 전 시키는 대로 했고요.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지독한 괴롭힘과 따돌림, 신체적인 폭력까지 시작됐어요. 선생님에게 ‘주인공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안 했으니 계속 주인공인 것 아니냐며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예요. 거짓말을 했으니 좀 맞아야 한대요. 그러면서 하루는 한 대, 그 다음날은 두 대 이런 식으로 절 때렸어요.”
패거리를 만들어 때렸다고 한다. 하루에 한 대라고 가해 주동자 학생만 때린 것이 아니라 패거리 전체 학생들이 모두 한 대씩 때린 것이다. 패거리가 다섯 명이면 다섯 대, 패거리가 일곱 명이면 일곱 대가 되는 셈이다. 마음이 약하거나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때리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때리지 못하면 그 친구도 그녀처럼 맞게 되고, 왕따가 됐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웃을 참이면 ‘웃지 말라’는 음악 시간에 다 함께 노래를 부를 참이면 ‘조용히 입 닥치라’는 쪽지가 전달됐다. 그 무렵 그녀는 첫 자살 시도를 했다.
내 딸도 당하다니
“처음 딸아이가 왕따 사실을 털어놓는데 정말… 눈앞이 하얘지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학교폭력으로 고통받아온 아이에게 부모의 첫 반응은 정말 중요하답니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여기거든요. 저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딸 아이를 꼭 안아주었어요.”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던 딸이 할 말이 있다며 엄마 진진연씨를 불렀다. 딸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친한 무리였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방학은 방학답게 다른 경험도 해보는 것이 좋다며 방학 보충수업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되었다. 개학 후 가해자 아이들은 똘똘 뭉쳐 딸을 괴롭힌 것이다.
“딸아이를 충분히 안심시킨 후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털어놓도록 했어요. 자신의 미니홈피를 보여주더군요. 온갖 욕설을 지속적으로 써놓았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딸아이의 칫솔을 더러운 바닥에 문질러놓고는 딸아이가 양치하도록 했고, 냄새가 난다며 책상을 밀어버리기도 했다는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파서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꼬박 사흘을 못 잤어요. 나중엔 입 안이 다 헐더라고요.”
왕따 사실을 털어놓은 진진연씨의 딸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진진연 씨가 왕따라는 학교폭력을 처음 당한 것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또다시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신이 당했을 때보다 딸이 당한 것이 훨씬 아팠다. 운명의 장난 같았다. 중학생 진진연은 그저 당하고 있었지만 엄마 진진연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부모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따라는 학교폭력을 당하면 학생도, 학부모도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요. 학교가, 국가가 그 역할을 전혀 못하고요. 현실이 그래요. 무작정 학교를 찾아가거나, 가해 학생 부모를 만나지 않았어요. 섣불리 나섰다간 아이만 더 곤경에 처하거든요. 우선 증거 자료를 모았어요. 아이에게 편하게 일기 쓰듯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쓰게 했고, 미니홈피에 써놓은 욕설이나 협박 등을 일일이, 하나하나 캡처했어요.”
모든 준비가 끝나고서야 가해 학생의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해가길 청했다.
왕따는 학교 폭력, 엄연한 범죄이다
‘별일 아닌 것 가지고 소란을 피운다’, ‘애 좀 똑바로 키워라’, ‘애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가해 부모들의 반응은 이랬다. 심지어 어떤 가해 학생의 엄마는 진진연씨의 딸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에 징징 운다며, 좀 강해지라”는 훈수까지 두었다고 한다. 이런 가해자 학부모들의 반응은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시금 상처가 된다.
“손이 바르르 떨리더라고요. 가해 학생도 어찌 보면 내 아들, 딸 같은 아이들인데, 가해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내심 걱정도 있었어요. 증거 자료를 내놓자… 그제야 비로소 태도가 바뀌더군요. 어떤 부모는 증거 자료를 보고나서야 ‘커피라도 드시겠냐’며 차를 내오더군요.”
진진연씨는 학교 담임선생님의 도움까지 받아 딸을 학교폭력으로부터 지켜냈으며, 문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평소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바뀔 정도로 담임선생님은 중재자로서 역할을 잘해주었다고.
“직접 현장에서 보면 가해 학생 부모들의 강짜와 협박은 상상 이상이랍니다. 힘없고, 여린 부모님들은 견뎌내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학교와 선생님은 신뢰를 잃었고요. 아이의 왕따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를 안정시키고, 증거 자료를 모으세요. 선생님 앞이든, 경찰 앞이든 그저 말로는 해서는 되레 당하기 십상입니다.”
진진연씨는 인식의 변화를 무엇보다 강조했다. 집단 따돌림은 아이들의 사소한 불화가 아니고 학교 폭력이라고. 그것은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의 변화만이 아이들을 멈추게 하고, 부모들이 바뀌며, 학교와 정부, 사회 전체를 달라지게 만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세요. 왕따는 더 이상 숨기면서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고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라고요. 아이들이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신뢰만이라도 우리 어른들이 줄 수 있다면 많은 불행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여운이 짙은 마지막 말이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박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