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3인의 ‘왕따’ 대담

학교폭력, 아이 지키기

학부모 3인의 ‘왕따’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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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대구 중학생의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정부도, 학교도, 가정도 그 어느 때보다 심란한 요즘이다. 아이가 학교에 있건, 학원에 있건, 집에 있건 간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 3인이 학교폭력과 따돌림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엄마들이 느끼는 학교폭력의 실태, 학교와 정부, 학부모들에게 바라는 점도 들어봤다.

유치원·저학년 때는 선생님이,
고학년이나 상급 학교는 학생들이 왕따 조장 경향


<STRONG>이민애(43)</STRONG> 중학교 2학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두고 있다.

이민애(43) 중학교 2학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두고 있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대구 중학생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떠들썩합니다. 학부모들 간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민애 사실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들이에요. 이슈화가 되고, 안 되고의 차이지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늘 있어왔던 문제거든요. 다만,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이슈화가 된 것만은 분명해요. 하지만 이슈화에 성공했다는 것뿐이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뤄지다가 끝나는 것은 여느 때와 같지 않을까 싶어요.

이지연 큰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해요. 겁도 나고 두려운 게 사실이에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공부를 잘할까 하는 성적 문제보다 아이가 왕따당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거든요. 왕따는 부모인 저나 학생인 제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양재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대구 학생의 일이 무척 안타까워요.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한 때도 많거든요. 어른들이 개입해서 일이 이상하게 틀어지고, 부풀려지고, 악화되기도 해요. 부모의 인성과 대처 방법에 영향을 많이 받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LADY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왕따가 시작된다고 들었어요. 그러나 어디까지가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불화이고, 어디부터가 왕따나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참 모호한 것 같아요.

양재연 유치원에서 시작되는 건 맞아요.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선생님의 반응에 의해 왕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대하는 차별적 반응을 아이들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알아내죠. 그리고 선생님을 모방해요. 우리 아이가 유치원 적응에 힘들어해 입학 초기에 좀 늦게 등원시켰어요. 선생님이 “지각쟁이야!”라고 부른 것을 시작으로 한동안 친구들에게 ‘지각쟁이’라는 놀림을 받았거든요.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남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놀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게 된 거예요. 왕따라는 문화의 시작은 이렇듯 작고 사소한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봐요.

이민애 기준이 없어요. 그러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해결이 판치고 있죠. 현장은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서로 성기를 툭툭 치며 반 장난, 반 몸싸움 같은 걸 많이 해요.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란 제 입장에서는 그 또래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장난이거든요. 그런데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오고 여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란 어떤 엄마는 심각한 성추행으로 받아들이고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이지연 어느 반에서 왕따까지는 아니더라도 외톨이처럼 지내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해요. 체육시간에 발야구를 하는데 이 여학생이 심하게 넘어졌어요.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래요. 그냥 보고만 있을 뿐. 그런데 잠시 뒤 인기 많은 아이가 똑같이 넘어지니 절반이 넘는 반 아이들이 우르르 그 아이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살폈대요. 외톨이 여학생을 때린 것도, 돈을 뺏은 것도 아니지만 그 학생에겐 큰 상처가 됐을 일 아닌가요? 결국 인성교육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문제 같아요.

“싫어! 그만해”라는 말을 했을 때
멈출 줄 알아야 장난이다
LADY
인성교육의 부재를 왕따의 원인으로 보고 계신가요?

이민애 요즘 학교가 어떤 줄 아세요? 입시에 적용되는 여덟 과목을 제외한 음악, 미술, 체육 같은 타 교과는 수업 시간을 아예 확 줄여버렸어요. 과거엔 1주일에 한 번이라도 3년 내내 배웠지만 요즘엔 한 학년에 몰아서 해치워버린다니까요. 성가시다는 식으로요. 서류상 수업 일수나 빨리 채우고 국영수 공부하자는 거죠. 분위기가 그런데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배운다? 참 한가한 소리로 들릴 거예요. 한심하게 볼 거고요. 그러니까 왕따 예방 교육이나 대처 방법을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말이에요. 국영수만 아는 사람들이랄까요?

<STRONG>이지연(39)</STRONG>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두고 있다.

이지연(39)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두고 있다.

양재연 하루 종일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을 해도 성적이 유지가 되면 ‘우리 아이가 뭐가 문제죠?’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정말 많아요. 되레 성적만 좋다면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며 두둔하기까지 해요. 과거엔 이른바 공부도 안 하고 좀 논다는 애들이 문제였다면 요즘은 겉보기엔 멀쩡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친구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아이들은 지능적이기까지 하죠. 뭔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이민애 중학교에 입학하면 초기에 많이 싸워요. 자기들끼리 새롭게 서열을 정하느라고요. 어른들이 멈추게 해야 하는데 맞고 오느니 때리는 게 낫다며 방관하기 일쑤죠. 옳고, 그름을 배우지 못하는 게 요즘 아이들이에요. 일정 수위까지는 몰라서 그런다고 보거든요.

LADY 가해자는 장난이라고 하고, 피해자는 폭력이라고 하잖아요.

이지연 언젠가 아이 팔에 잇자국이 선명하게 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그 주위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라고요. 너무 놀랐고 속상했죠. 가만있을 수 없어 학교에 찾아갔더니 우리 아이 팔을 깨문 가해 학생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부모는 아예 이 상황을 모르고요. 제 입장에선 폭력이었고 속상했지만 모두가 장난이라고 말하는 그 상황에서 일을 더 끌고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민애 이른바 ‘선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요. 무조건 먼저 때린 놈이 나쁜 놈이고 가해자가 되는 거죠. 왕따 문제는 문제가 일어난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결과만을 본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봐요. 학교도, 가정도, 심지어 경찰까지도 말이에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고, 문제예요.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기도 해요.

양재연 제가 그런 경험이 있어요. 가해 학생의 부모로 불려갔는데, 정황은 우리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다가 방어한다고 한 대 친 것이 상대 학생 볼에 상처를 낸 거였죠. 그 해결 과정 속에서 저는 철저히 가해자 학생의 부모였어요. 볼에 상처가 난 아이가 우리 아이를 놀리고, 괴롭힌 것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났지만 그 상처 앞에서 무조건 사과를 해야 했죠. 우리 아이가 무척 분해하면서 울더라고요.

이지연 “싫어!”, “그만해”라고 말했을 때 멈춘다면 그건 아이들 사이의 문제나 장난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괴롭힘이 계속된다면 그 지점부터는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민애 문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교육도, 또 그런 말을 들었으면 멈춰야 한다는 교육도 우리 아이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어요.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난 가해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말하는 것을 믿는 편이에요. 말이 논란의 소지가 좀 있긴 한데, 그만큼 가해 학생조차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거예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거죠.

왕따! 이유 없이 ‘그냥’ 시킨다는 요즘 아이들
LADY
가해자 입장의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더불어 어떤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약자인지도요.

이민애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에요. 남녀공학에 합반이었어요. 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은근히 외톨이가 된 여학생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들 녀석이 무심하게 “너 왕따라며?”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 됐어요. 그 여학생의 엄마에게 그날 저녁에 바로 전화가 왔어요. 크나큰 상처가 되었고, 왕따 사실을 몰랐는데 알게 됐다면서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를 했어요. 아들 보란 듯이요. 그리고 아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도록 했고요. 내심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 보니 속이 상하더라고요.

양재연 저는 피해, 가해 학생의 학부모 입장이 모두 돼봤어요. 어떤 입장이건 사과가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아이들 앞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교육적으로 매우 나쁜 것 같고요.

이지연 예전엔 왕따를 시키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예뻐서라든지, 공부를 잘해서라든지, 가난하거나 혹은 부자여서 잘난 척을 한다든지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그냥’이래요. 그래서 더 겁이 나요. 공부하는 기계로만 키우지,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키우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LADY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특정 브랜드의 점퍼로 나누는 계급화가 화제예요. 정말 그 점퍼가 아이들의 계급을 나누고 왕따의 빌미를 제공하나요?

<STRONG>양재연(43)</STRONG> 중학교 2학년 딸, 초등학교 4학년 아들, 유치원생 아들을 두고 있다.

양재연(43) 중학교 2학년 딸, 초등학교 4학년 아들, 유치원생 아들을 두고 있다.

양재연 딸아이가 이번 겨울을 겨울 점퍼나 코트 없이 교복 재킷 하나로 났어요. 그 점퍼를 사달라기에 안 된다고 했거든요. 멀쩡한 코트가 있는데 낭비할 수 없잖아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절대 동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다른 것을 입어 창피를 당하느니 아예 아무것도 입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지연 아무리 추운 날에도 얇은 교복 재킷 하나만 입던 아이가 그 점퍼를 사주니 그건 입고 다니더라는 다른 엄마의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또 작년에 입었던 점퍼보다 더 높은 등급의 점퍼를 사주지 않으면 그것도 소위 ‘쪽팔려서’ 입지 못한다는 말도 들어봤어요.

이민애 사회가 병든 것 같아요. 교복 업체들의 교복값 담합 횡포가 심한데도 당하고만 있어요. 교복 내피나 원단의 색깔을 교묘하게 차별화해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면서 아이들을 공략하거든요. 브랜드 교복이 아니면 부끄러워서 학교에 가서 재킷을 벗어놓지 못한대요. 브랜드 점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학교 외부 인사로 전문 상담교사 배치 시급해
LADY 제일 궁금한 것을 묻고 싶어요. 아이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느 지점에서 행동에 나서시겠어요? 무엇부터 하시고요?

이민애 다양한 학부모 활동을 하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내성이 좀 생긴 편이에요(웃음). 제 아이가 피해를 봤다고 할지라도 과정 속에서 한편으로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감정적인 대처가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며 아이와 먼저 이야기를 할 거예요. 아이 말만 믿고 행동만 앞서는 부모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아요. 피해자, 가해자 양쪽 모두가 해당되는 말이에요.

양재연 적어도 세 번 정도는 참으려고요. 다짜고짜 학교를 찾아가거나 교육청에 신고를 하는 방법은 좋지 못해요. 학교는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고, 가해자든 피해자든 달가워하지 않거든요. 또 상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해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 합석하에 만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어요.

LADY 누구도 학교나 선생님을 제일 먼저 찾는 분은 없으시네요. 신뢰 회복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바라는 점이나 건의 사항이 있다면요?

이민애 입시제도가 변해야 해요. 지금은 오로지 성적, 성적, 성적하든요. 또 학교 안에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상담교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상담사는 안 되고요. 아이들이 어차피 똑같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외부 인사로 배치되어 아이들이 학교의 사람이 아닌, 나를 도와줄 객관적인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분 말이에요.

이지연 학교 인권조례안에도 나오거든요.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만이 능사라는 태도를 바꿨으면 해요.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가해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강제성을 갖는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거든요.

양재연 문제가 있는 학급이나 학교에서 축구 프로그램 하나를 운영했을 뿐인데 문제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사진 찍기 좋은 전시 행정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표가 나지 않더라도 동아리 활동이나 예술 활동, 체육이나 스포츠 경험을 쌓게 해줘 학교의 선 기능을 살려 나갔으면 좋겠어요. 학교만큼이나 학부모들도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해 학생만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문제 아이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게 마련이거든요. 내 아이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다가가는 게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을 대하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해요.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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