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Diaper, Nappy)
[명사] 어린아이의 똥오줌을 받아내기 위해 다리 사이에 채우는 물건으로 주로 천이나 종이로 만든다.
![[고민정 아나운서의 감성 육아 에세이] (2)기저귀](http://img.khan.co.kr/lady/201302/20130130165110_1_kominj1.jpg)
[고민정 아나운서의 감성 육아 에세이] (2)기저귀
엄마, 나 무서워
아이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가득 메웠다. 너무 울어 눈두덩은 퉁퉁 부어올랐고 그 사이로 보이는 가느다란 눈은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지가 붙들린 몸은 이미 녹초가 됐음이 분명한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그런 아이 곁에 있는 내 마음 역시 이미 눈물로 가득 찼지만 눈물샘을 여는 순간 와이퍼가 고장나버린 자동차 앞 유리를 보는 것처럼 아이의 얼굴을 뚜렷이 볼 수 없을 것 같아 참고 또 참았다. 아이가 의지할 곳이라곤 엄마인 나의 두 눈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차단시킬 수는 없었다.
‘엄마, 너무 겁나. 무서워. 나 안 아프게 해줘. 저 사람들이 내 팔다리 붙들지 못하게 해줘. 나 좀 구해줘, 엄마.’
‘엄마’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태어난 지 7개월밖에 안 된 아이는 그렇게 눈빛으로, 울음으로 내게 애원했다. 굵은 링거바늘은 그 작은 팔과 다리에 열 군데쯤 상처를 냈고 수액에 항생제, 해열제까지 약봉지가 링거대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아이는 내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고 평소 깊은 잠에 빠졌을 때처럼 온몸을 내게 맡겼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었을 녀석은 허공을 향해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미안하다, 아가야. 내가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이에게 내 품을 내준 이후에야 내 눈에선 따스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온 세상은 물에 젖은 그림처럼 번져 보였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친정엄마는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실 뿐 다가오지 않으셨다. 아마 그분의 눈에도 눈물방울이 맺히지 않았을까, 울고 있는 딸을 보며 함께 가슴 아파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해본다. 이렇게 난 딸에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무서운 것이 열이라더니 새벽부터 뜨거워지던 은산이의 몸은 급성신우신염이란 병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는 요로감염의 일종으로 신장에 세균 감염이 발생하는, 돌 전 남아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듯 그 원인을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나와 남편은 아이의 울음소리 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우리가 주목한 것은 기저귀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똥 덩어리였다.

다리에 링거 꽂고 있는 은산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저귀에서 지름 1cm 정도의 똥 덩어리가 서너 개씩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구슬처럼 기저귀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며 붙어 있기 일쑤였다. 아마도 그때 몇몇의 덩어리들이 남자의 상징인 그곳에 붙어 있으면서 균이 침범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추측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난 그 이후로 아이의 기저귀를 더욱 신경 써서 보며 그날그날 아이의 건강을 체크했다. 대소변의 횟수는 기본이고 소변의 색깔은 괜찮은지,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대변의 무르기 정도는 어떤지, 평소와 다른 색과 모양을 나타내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기저귀의 희로애락
어느 날인가 아이가 배고플 때도 아니고 졸린 것도 아닌데 심하게 칭얼대는 것이다. 안아주기도 하고 혼내보기도 했지만 칭얼거림은 더욱 커져 울음에까지 이르렀다. 기저귀가 불편해서 그런가 싶어 기저귀를 벗겨보니 그 작은 항문에 지름 4~5cm쯤 되는 단단한 덩어리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난 바로 비닐장갑을 끼고 혹시나 항문이 찢어질까봐 항문 주위를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른 속도로 눌러가며 그 덩어리를 빼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진땀이 났지만 그 순간엔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해주고 싶은 마음뿐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딱딱한 덩어리가 완전히 빠져나오자 아이와 나는 결승 레이스를 1등으로 끊고 바닥에 드러누운 선수들처럼 큰 숨을 몰아쉬며 ‘헤벌쭉’ 웃었다.
그 뒤 난 아이가 하루만 응가를 안 해도 좌불안석하며 부엌을 분주히 오갔다. 사과와 배를 강판에 갈아서 주기도 하고 이유식을 할 때 미역을 듬뿍 넣어 끓여 먹이기도 했다. 서양식 자두로 불리는 ‘푸룬’이란 과일로 즙을 낸 주스를 먹이거나 말린 푸룬을 변비에 좋은 고구마에 잘게 다져 섞어 먹이면 딱딱한 변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그래도 변을 보지 않을 때는 면봉에 오일을 묻혀 항문 주위를 부드럽게 자극하기도 했다. 식사 중 비위에 거슬리는 얘기만 들어도 울렁거림을 호소하는 나이건만 내 아이의 변은 전혀 더러운 줄 몰랐다. 다진 당근을 넣은 이유식을 주면 변에 주황색 알갱이가 박혀 있고, 노란 호박고구마를 먹은 날엔 노란색 변을 보고, 쌀 과자를 많이 먹으면 변이 단단해진다. 참 정직한 내장이다.
소변을 본 기저귀의 색은 보통 연한 아이보리 빛을 띠는데 연한 살구색을 띤 적도 있었다. 난 기저귀를 봉지에 담아 소아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진료를 받을 사람이 직접 오지 않으면 불법이라며 다음부터는 진료를 받아줄 수 없다는 싸늘한 말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에는 둘 다 힘들기도 했고, 육아 서적에도 여의치 못할 땐 기저귀만 가지고 가서 문진을 받으라고 쓰여 있기에 당당하게 갔는데 적잖은 상처를 받은 셈이다. 반대로 친절한 대답을 듣고 온 적도 있었다. 일정한 묽기와 색의 응가를 하던 녀석이 어느 날 녹색의 변을 내놓았다. 모든 게 낯선 초보 엄마인 내가 찾은 것은 일단 인터넷과 육아 서적이었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정상 변이니 괜찮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중한 병일 가능성이 있으니 반드시 병원에 가보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가 녹변인지조차 헷갈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저귀를 싸들고 다른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워낙 추운 날씨여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는 오히려 새로운 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이곳에선 별말 없이 진료를 받아줬고 친절하게 상담까지 해주셨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체스판 위의 말처럼 날 들었다 놨다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당시 별 큰 병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었나 하는 마음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작든 크든 아이로 인해 병원에 다녀와본 엄마들은 내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까. 예전에 한 TV 광고에서 아이가 황금 변을 봤다고 좋아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어 공감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냄새도 날 텐데 뭐가 좋아 저렇게 싱글벙글해가며 광고에까지 나올까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기저귀를 한 번 벗길 때마다 안도하고 뿌듯해하고 화내는 등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표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비친다.
정직한 똥 덩어리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자주 고민한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키우는 건 물론일 테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시로 되묻는다. 무엇이든 다 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자신의 단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기 삼아 지혜롭게 컸으면 좋겠다. 산꼭대기에 가장 먼저 올라 홀로 세상을 호령하는 것보다는 산중턱에서라도 여러 사람과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세상이 정한 울타리 안에서 안분지족하기보다는 작게는 자신 안의 한계와 싸우며 그 울타리를 열 수 있었으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거창하게 말하기보다는 곧 과거가 될 오늘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민정 아나운서의 감성 육아 에세이] (2)기저귀](http://img.khan.co.kr/lady/201302/20130130165110_3_kominj3.jpg)
[고민정 아나운서의 감성 육아 에세이] (2)기저귀
세상이 아이들의 똥만큼만 정직하다면 어떨까. 설령 소화가 안 된 당근처럼 그대로 나온다 해도, 몇 날 며칠 변비나 설사에 걸려도 걱정할 건 없다. 소화가 잘되는 다른 방법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이거나 위장이 그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 위장에 탈이 났는데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면 더 큰 병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책을 뒤지든,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든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쓰다 보면 씻은 듯이 낫게 된다. 누구든 실패가 두렵지 않은 이유다.
오늘도 은산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며 세상으로부터 섭취한 음식물을 정직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난 적당한 묽기와 색깔로 나온 아이 똥을 보며 한시름 놓는다. 아이 똥을 보며 하게 된 이런 생각들을 그저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두 소매를 걷어붙일 수 있기를, 적어도 은산이가 커 아이를 낳았을 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럴 수만 있다면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만큼은 좀 더 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아이들의 똥만큼만 정직하다면 어떨까. 설령 소화가 안 된 당근처럼 그대로 나온다 해도, 몇 날 며칠 변비나 설사에 걸려도 걱정할 건 없다. 소화가 잘되는 다른 방법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이거나 위장이 그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 위장에 탈이 났는데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면 더 큰 병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책을 뒤지든,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든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쓰다 보면 씻은 듯이 낫게 된다. 누구든 실패가 두렵지 않은 이유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2004년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006년 대학 선배이자 열한 살 연상인 시인 조기영과 부부가 됐고, 결혼 6년 만에 아들 은산이를 만났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가 있다. (@kbsminjung)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고민정 ■사진 / 원상희, 조민정 ■장소 협찬 / 베이비훈(02-573-3777, www.baby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