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경제교육, 세 살 소비 버릇 여든까지 간다
미국 교육은 실용주의 그 자체다. 교육 현장에도 학문보다 경제력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문화가 반영돼 있다. 미국 청소년 중 약 58%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직업을 갖는다. 대학 진학률이 약 90%에 달하는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이다.
대입 문화가 다르다 보니 청소년들의 생활문화 자체도 현격히 다르다. 명문대 진학을 꿈꾸며 부모에게 용돈을 받는 한국 청소년과 달리 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직접 돈을 벌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다. 부모가 중상층이든 빈곤층이든 마찬가지다.
세계 2위의 거부 빌 게이츠가 자녀에게 주는 용돈은 매주 1달러다. 대신 그는 자녀에게 자동차를 닦게 하는 등 집안일을 도와 용돈을 벌게 한다. 가사나 시간제 근무를 하게 함으로써 일에 대한 보상과 돈의 가치를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유명한 변호사였던 빌 게이츠 역시 어린 시절 컴퓨터를 사기 위해 시간제 근무를 했다.
미국 북동부의 펜실베이니아 주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 존슨 토드(18)는 자신의 시간제 근무 경험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중산층 가정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지만 대부분 친구들의 부모님이 그렇듯 저희 부모님도 용돈을 넉넉하게 주시진 않죠(웃음). 가장 처음 한 1시간제 근무는 베이비시터였어요. 이외에 잔디 깎기, 레스토랑 서빙을 하거나 마트 계산원, 영어 교사 등을 거치며 용돈을 벌었습니다. 힘들지 않았느냐고요? 다들 그 정도는 하는데요. 시간제 근무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토드의 말처럼 시간제 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보니 경쟁률도 치열하다. 대부분 예닐곱 곳에서 면접을 봐야 간신히 일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특히 6~8월 여름방학 때는 경쟁률이 더 높아진다. 이때는 여러 곳에 인맥이 있는 부모들이 앞장서서 자녀들의 시간제 근무 자리를 챙기기도 한다.
이쯤 되면 한국의 부모들은 “공부는 언제 하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공부를 하지 않는 일부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청소년들은 시간제 근무도 하면서 공부도 하는 ‘엄친아’들이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모리스 스콧(23)은 “수업이 끝나면 식당이나 빌딩으로 달려갔어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해서 제 용돈이나 대학교 입학금을 모아야 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공부는 공부고, 돈은 돈이지 않나요? 시간제 근무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라는 야무진 답변을 했다.
고등학생의 절반이 주식 투자,
교실에는 주식 관련 잡지 비치
버는 만큼 쓰는 법도 중요하다. 용돈 사용처를 묻는 질문에 토드는 이렇게 답한다.
“가끔 불법으로 술을 마시는 고등학생들도 있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되면 좀 더 성숙해지죠. 힘겹게 번 돈인 만큼 현명하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6년 이후 청소년들이 경제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실제 외국의 경우 주식 투자를 하는 고등학생이 한 반에 절반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부모에게 용돈도 받고, 시간제 근무도 병행해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상위 50% 학생들이다. 투자처는 부모님과 상의하는 편이고, 금액은 1천 달러 남짓이다.
주식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프로그램이나 기사들도 많다. 중·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주식 투자에 대한 기초 사항을 알려주는 잡지와 홈페이지들이 있으며, 가상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스톡마켓게임. 미국 내 50개 주의 학생들이 실제로 주식을 거래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7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지도교사도 1만2천여 명에 달한다.
미국 학생들이 저축이 아닌 주식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주식시장의 규모가 거대해서일까? 아니다. 세계 네 번째 규모의 금융 허브를 자랑하는 금융 대국 싱가포르의 청소년들은 한국의 청소년처럼 주식에 무지하다.
답은 금리에 있다. 금리가 낮은 탓에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저축보다는 주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는 최근 5년간 0~0.25%에서 동결됐다. 지속적인 저금리 조치로 은행 금리도 연 1% 남짓이다. 미국의 최근 50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4.1%임을 고려하면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 수준. 주택시장도 무너진 상황에서 주식시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재테크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중·고등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만, 미국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도 단기보단 장기 투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5년 장기 수익률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프랑스 직불카드 사용으로 통제력 키우다

세계의 경제교육, 세 살 소비 버릇 여든까지 간다
독일 4세 때부터 용돈 지급, 푼돈의 가치를 깨닫게 하다
독일의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다. 많은 독일 부모들이 4세 때부터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한다. 독일인들은 돈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부터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어 경제관념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지출을 안배하기 어렵기 때문에 9세까지는 주급으로, 이후에는 월급으로 주는 등 세심한 규칙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독일 청소년의 수입은 크게 세 종류다. 용돈과 시간제 근무, 직업 훈련시 받는 금액이다. 미국 청소년처럼 독일 청소년에게도 시간제 근무는 일상이다. 법적으로 13세가 되면 일을 할 수 있어 대다수의 중·고등학생은 시간제 근무가 생활화돼 있다. 인기 있는 일자리는 광고지 돌리기, 약국에 주문된 약을 환자의 집으로 배달하기, 주말이나 방학 동안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기, 어린이 돌보기, 저학년 과외하기 등이다. 이외에 직업학교가 활성화돼 있어 직업 훈련시 받는 금액도 용돈에 포함된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다양한 시간제 근무를 경험하며 성장해 수입원과 지출 등 경제적인 관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물론 어디에나 문제는 있다. 최근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으로 빚을 지게 된 독일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더욱이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LTE 이동통신 환경이 주가 되면서 청소년들의 휴대전화 이용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자녀 용돈은 0달러
유대인은 성공의 아이콘이다. 세계 100대 기업 소유주의 40%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는 유대인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경제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유대인 부모들은 이유 없이 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 정원의 잔디 깎기는 5달러, 아침 우유 나르기 2달러, 신문 사오기 1달러 등과 같이 일의 종류와 분량에 따라 자녀에게 용돈을 준다. 이로 인해 이들은 어려서부터 돈의 소중함과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용돈이지만 부모는 자녀에게 용돈을 주기 전에 반드시 그 사용처를 묻는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용돈의 지출 계획서를 받는다. 그리고 아이의 용돈 지출이 계획서에 따라서 이루어지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함께 의논해 나간다. ‘요람에서 배운 것은 무덤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성인이 된 유대인들 역시 필요하지 않거나 계획에 없는 지출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박은혜(프리랜서) ■사진 / 원상희 ■참고 자료 / 「청소년 생활 실태 국제 비교 연구」, 「한국과 독일 청소년의 수입, 지출, 부채 실태에 관한 비교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