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케이크로 생일파티하기

하나의 두 살 생일. 간단하게 케이크와 플래카드로 꾸몄습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서도 이런 사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그달에 태어난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단체로 하는데, 케이크는 역시 준비되지 않았고 선물도 없었습니다. 하나와 선생님 말을 종합해보면, 생일파티 케이크는 점토로 만들 걸 쓰고,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입에 넣어 먹는 척을 한다고 합니다(웃음). 근데 하나는 그런 흉내만으로도 생일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집에서도 블록으로 매일 케이크를 만들고, 제게 먹는 흉내를 내라고 합니다.

1 케이크 가게 점원을 연기 중인 하나. 2 하나의 세 번째 생일은 외식으로 때웠습니다. 아동관 생일파티. 매달 돌려쓰는 종이로 된 케이크.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는데, 이젠 가짜에 익숙합니다(웃음).
생일, 그 조촐함에 관해
일본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민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자기가 끼치는 것도, 남이 자기에게 그런 우를 범하는 것도 귀찮게, 때론 불쾌하게 여깁니다. 담당 기자로부터 이번 호의 주제는 ‘생일’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왜냐고요? 생일을 이토록 챙기지 않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어서요. 일본을 대표하는, 아니 도쿄를 대표하는, 아니 그저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엄마로서 일본의 재미난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데 ‘생일’이란 주제는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식 생일, 그 조촐함에 대해 풀어볼까 합니다.
일본의 생일파티 트렌드
그럼 집에서 개인적으로 하는 파티는 어떠냐고요? 케이크를 사고 음식을 장만하고 선물을 주는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생일파티를 합니다. 단 유아기에 친구를 초대하는 거창한 파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나가 생일을 세 번 맞았지만, 초대를 받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와 생일이 같은 동네 친구와는 1시간쯤 시간을 내어 케이크만 같이 먹는 정도의 행사는 매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돼도 대여섯 명 정도를 초대하지, 스무 명이 넘는 규모의 파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집에선 ‘치라시즈시’라는 해산물을 넣고 버무린 초밥을 준비하고 치킨과 피자도 인기 메뉴예요. 아주 작은 규모로 열거나, 아예 생일파티를 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왜나고요?

1·2 동생이 태어나서 무척이나 즐거운 하나. 기저귀도 봐주고, 자기 손가락도 물려주며 빨라고 합니다. 3 흙으로 만든 하나의 스페셜 케이크. 4 요즘은 3개월 된 하루를 봐주느라 정신없이 즐거운 하나예요.
일본의 철저한 음식 관리도 한몫
아! 아동관이나 어린이집에서 가짜 케이크를 쓰는 이유는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통일성을 강조하는 일본에서 한 명의 아이라도 케이크에 쓰인 재료를 먹지 못한다면 절대로 내놓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그걸 먹지 못하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 혹여 부러워서 먹었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선 어린이집 근처에서 다른 아이들이 보도록 뭘 먹으며 등·하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아이의 알레르기 혹은 부모의 교육 지침에 따라 케이크나 과자를 안 먹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만 세 살. 다양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덧붙여! 일본의 조촐한 식문화
생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문화도 조촐합니다. 찌개, 고기, 생선, 국이 한꺼번에 오르는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한국의 식탁을 일본 가정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메인 요리 하나, 반찬 두 개면 충분합니다. 덕분에 생일도 평소처럼 조촐하게 보내서 삼류 주부인 저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우면서도, 때론 아이에게 제가 어릴 때 했던 거창한 생일파티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합니다.
하나 맘, 김민정은…
1976년생. 열여섯 살 때 가족 이민으로 일본행.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도쿄에서 보낸 셈이다. 첫째 하나와 둘째 하루를 키우며 낮에는 대학원생, 저녁에는 라디오 방송 통신원, 밤에는 번역가로 열혈 활동 중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낼 꿈을 갖고 있다. 대학 연극 동아리 동기로 만난 남편은 교육방송 PD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글&사진 /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