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처럼 볼일을 보면서 신문 읽는 흉내를 내는 장난꾸러기 효재. 2 배변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게 된 뒤 비데를 사용했다가 크게 놀라는 바람에 다시 처음부터 배변 훈련을 시작해야 했어요. 시간이 걸렸지만 유아용 변기에 볼일을 보는 데 성공한 날! 3 드디어 어른 변기에서 볼일 보는 데 성공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순수한 존재에 여러 가지 좋은 습관과 태도라는 좋은 옷을 잘 입혀 어엿한 성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 역시 완성된 존재가 아니고 부모로서 계속해서 자라고 다듬어지고 있기에 늘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선배 부모나 주변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죠.
제가 겪은 첫 번째 난관은 배변 훈련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전적으로 엄마인 제게만 의존해도 되던 아이가 처음으로 본인의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 거죠.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수월하게 배변을 가리게 됐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 입장에서 봤을 때나 ‘수월하게’이지 아이로서는 큰 산 하나를 넘은 것일 거예요.
같은 홍콩이라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서양인들이 많은 편이라 그들의 육아 방식을 쉽게 접하게 되는데요. 서양 부모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매너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가르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자기 가방은 아무리 무거워도 스스로 메고 다니며 정리하게 하는 등 독립심을 상당히 강조해요. 배변 훈련 또한 부모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자연스럽게 떼게끔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유치원에 가보면 덩치가 상당히 큰데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한국 부모들이라면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잘 해결하고 나중에 초등학교 고학년쯤 됐을 때 보면 오히려 훨씬 자립심 높은 아이로 자란 경우도 많고요.
효재가 스스로 옷을 입게 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려 답답할 때도 있지만 참고 기다려줘야 하겠죠?
가끔 신문 등 언론에서조차 13세가 넘은 홍콩 아이들이 자신의 운동화 끈도 제대로 못 매는 경우가 많다며 대리 육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해요. 헬퍼들도 열심히 가사와 육아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래도 훈육은 부모만큼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지라 아이들이 대부분 기저귀를 오랫동안 못 떼곤 해요. 재미있는 점은 필리핀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이 배변을 아주 빨리(한국보다 더) 가린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기저귀 값이 비싸서 거의 채우지 않고 키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여곡절, 길고 힘들었던 효재의 배변 훈련
어쨌든 배변 훈련이라는 이 엄청난 문제는 제게도 어김없이 닥쳐왔어요. 처음엔 아이가 다니던 놀이학교에서도 그다지 문제를 삼지 않는 편이라 특별히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진행했죠. 두 돌이 지나고 세 돌이 조금 못 됐을 시기, 여름 동안 한국에서 한 달 반 정도를 지내게 됐어요. 그때까지 영어, 광둥어, 만다린어, 한국어 등 아이가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다 보니 말 자체가 너무 느린 것 같아 한국 어린이집에 한 달 보내볼 생각이었죠. 여기 홍콩에 사는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세 살 정도가 지나면 다소 긴(거의 두 달) 여름방학 기간 동안 그렇게 한국말을 배우게 해서 돌아오기도 하거든요.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던 효재가 이렇게 ‘도구’를 사용하게 됐어요.
그렇게 속성 배변 훈련 후 한국에 도착한 뒤, 한국 어린이집에서도 그럭저럭 잘 지냈는데 귀국 1주일쯤 전 친구 집에 며칠 다니러 갔다가 아이가 화장실에서 비데 버튼을 누르고서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무척 놀라며 뛰어나오더니 그 후로는 화장실 변기에 앉기를 거부하는 거예요. 심지어 아기용 변기까지도요. 그래서 홍콩에 돌아오고 나서는 다시 기저귀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두 번째는 오히려 처음 배변 훈련을 할 때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훨씬 힘들었어요. 엄마의 속은 타들어갔지요. 기저귀를 안 채워줬더니 해줄 때까지 용변을 참는 거예요. 결국 치워버리려고 싸두었던 유아용 변기를 다시 꺼내놨죠. 그 변기에 앉기까지도 무척 오래 걸렸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유아용 변기에 볼일을 본 날 매우 기뻐하면서 칭찬하고 하루 종일 치켜세워줬더니 그 다음부터는 기저귀를 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리고 다시 6개월쯤 지나 겨우 어른 변기에 유아용 변좌를 올려 용변을 보는 데 성공하고(그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키가 자라서 발이 바닥에 닿게 되니 어느 날 유아용 변좌 없이도 스스로 변기에 앉아 변을 보게 되면서 효재의 긴 배변 훈련 여정이 끝이 났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변기에 대한 공포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한 것에 대해 아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했요.
1 이젠 혼자서도 잘해요. 교통카드로 페리 비용을 지불하고 탑승한 효재. 뿌듯한 표정이네요. 2 효재가 스쿠터를 타고 갈 때는 저도 같이 스쿠터로 뒤를 따라간답니다.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주로 안내를 부탁하며 길을 찾아가보도록 해요. 아이를 앞세우고 저는 한 발짝 뒤에서 걸어가는 중입니다.
저는 아들만 둘이라 아이들의 자립심을 기르는 데 더욱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큰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한국이라면 3학년) 때부터 교통카드 한 장을 쥐어주고는 지도로 지역을 설명해주며 몇 달에 걸쳐 혼자 갈 수 있는 지역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갔더니 지금은 홍콩 전역을 혼자서도 무리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됐고, 심지어 한국에 갔을 때도 웬만한 곳은 혼자 지도를 보고 지하철 노선도를 분석해가며 찾아다니더라고요.
효재는 아직 다섯 살이라 그 나이에 맞게 학교에서 집까지, 친구 집 혹은 수영장이나 축구 연습장에 갈 때 저보다 앞서 걷게 하면서 엄마가 너를 따라갈 테니 엄마를 데려다달라고 해요. 그러면 아이는 으쓱해하며 다 큰 아이가 된 듯 앞장서서 저를 안내해서 걷는데, 어떤 때는 혼자서 길을 다 아는구나 싶어 놀랍고 기특해요. 저는 한 발 정도 뒤에 따라가면서 위험한 길이나 교차로가 나왔을 때 손을 살며시 잡고 멈추게 한 다음 지켜야 할 수칙만 그때그때 알려주죠. 어느 날인가는 교차로가 나왔는데 일부러 저지하지 않고 뒀더니 자기가 먼저 멈춰 서서 저를 손으로 막고 위험하니 멈추라고 하더군요. 백 번의 잔소리보다 의지를 존중하며 훈육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죠.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가르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요. 큰아이 때는 “멈춰 서! 위험해! 같이 가야지!”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느라 목이 다 쉴 정도였죠. 그래도 아이는 번번이 교차로에서 성큼 발을 내딛기도 하고 집과 무척 가까운 곳에서 길을 잃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맏아이는 언제나 이렇게 시행착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참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네요. 이 세상 모든 맏이들 “파이팅!”입니다.
부모의 가장 좋은 훈육법은 바로 ‘기다림’이라고 하지요. 아이가 스스로 신발을 신고 옷 단추를 끼우고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부모도 이렇게 조금씩 자랍니다.
[육아 삼국지_홍콩 효재맘 이야기]기다리면서 함께 성장하는 부모와 아이
홍콩에 입성한 지 7년째, 훤칠한 열네 살 큰아들과 다섯 살 늦둥이 아들 효재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큰아이를 키울 때는 일과 학업으로 바빠 육아가 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뒤늦게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작년에는 효재가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이 돼 국영기업 이미지 광고에 출연했다. 홍콩 전역이 인정하는 멋진 아들을 둔 엄마인 셈이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정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