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

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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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말연시 그리고 새해 풍경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해를 맞는 것이 일본 가족의 풍경이다. 귀여운 하나네 식구들의 연말연시를 따라가본다.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아이들에겐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자연을 만끽하는 날
일본 며느리들은 시댁과 교류가 드뭅니다. 저희 집은 1년에 많아도 다섯 번 이상 보는 일은 없습니다. 주변 주부들의 경우 1년에 두 번 정도 찾아뵙는다고 합니다. 설과 추석이지요. 자주 만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소합니다. 연말연시엔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나서 같이 온천도 가고,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메워봅니다. 한편 하나에게 나스는 ‘겨울 나라’입니다. 도쿄와는 달리 눈이 많이 내려 나스에 가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할 수 있어요.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서 눈썰매와 스키도 즐길 수 있습니다. 스키를 타고 온천에서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도 있지요. 하나가 좋아하는 놀이는 도토리 줍기와 고드름 떼기입니다. 바구니에 도토리를 가득 담아서 개미가 지나가는 곳에 먹으라고 놓아줍니다. 개미 취향까진 몰라도, 아이 딴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는 훌륭한 먹이입니다. 개미 먹이 주기가 끝나면 낮은 처마에 달린 고드름을 떼어서 요리조리 돌려보고 만져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빠에겐 1년에 한 번 효도하는 날
하나가 새해 첫날 입을 기모노설빔을 미리 입어봤어요.

하나가 새해 첫날 입을 기모노설빔을 미리 입어봤어요.

일본에서는 12월을 ‘시와스(師走)’라고 부릅니다. 늘 평온해야 할 스님(師)이 뛰어다녀야(走) 할 정도로 바쁜 달이란 의미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니 바쁘긴 하죠. 저희 가족의 연말연시 풍경을 전할게요. 우선 하나 아빠에겐 1년에 한 번 부모님을 찾아뵙는 날입니다. 평소엔 연락도 뜸한 남편이 연말연시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이맘때면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남편은 1월 1일만큼은 꼭 본가에서 지내고 싶어 합니다. 시댁은 도치키의 나스예요. 이 지역은 목장과 논밭이 있고, 산과 숲이 아름다운 휴양지입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 후 바뀌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의 영향으로 유명한 목장이 도산했으며, 시부모님은 텃밭 농사를 그만두셔야 했습니다. 숲과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보니 방사능 수치가 나스(0.3마이크로시버트)가 도쿄(0.03마이크로시버트)보다 10배가량 높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내려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철마다 가서 계절을 즐겼는데, 사고 이후엔 연말연시에만 2박 3일 정도 시댁에서 보냅니다. 1년에 한 번 신주쿠의 백화점에서 햄과 소시지, 과자와 와인에 삼계탕과 게 선물 세트 등도 챙겨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 일 때문에 바쁜 남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효도인 셈이죠.

엄마에겐 1년에 한 번 편지 쓰는 날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제게 연말연시는 연하장을 쓰는 날입니다. 인터넷과 이메일의 시대라지만 일본인들은 아직도 연말연시에는 손수 쓴 연하장을 보냅니다. 연하장은 우정의 징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회사원의 인맥 유지를 위한 수단입니다. 한 해 동안 받은 명함을 정리하고, 내년에도 인연을 이어갈 사람들에게 손수 연하장을 써서 보냅니다. 평균 서른 장 정도를 보낸다고 합니다. 일본인의 약 20%는 1백 장 이상을 보낸다고 하네요(니프티 2012년 연하장 조사). 어마어마하죠? 저도 1년 동안 취재나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정성껏 연하장을 씁니다. 한 해 동안의 인연에 감사하며, 내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연하장에 담아 띄웁니다. 일본의 연하장에는 번호가 달려 있어요. 매년 1월 15일에 당첨 번호가 발표됩니다. 1등 상품은 짜잔! 해외여행입니다. 전 아직 당첨된 적이 없어요.

일본만의 연말연시, 홍백가합전과 메밀국수
12월 31일은 시댁에서 보냅니다. 오후에 도착하면 시부모님이 따뜻한 물을 받아주시고는 목욕부터 하라고 하십니다. 짧은 여독이나마 풀라는 뜻이죠. 목욕을 하고 저녁 준비를 시작합니다. 특별한 음식은 없습니다.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문 앞에 대나무 장식을 걸어둡니다. 신이 대나무에 머무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NHK의 ‘홍백가합전’을 봅니다. 오후 7시부터 11시 45분까지 남녀 팀별로 나뉘어 승부를 겨루는 가요 프로입니다. 무려 4시간 동안 50여 명의 가수가 나오는데, 그해에 활약한 가수들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내용이 없고, 내내 노래만 나와서 온 가족이 보기에 적절한 방송입니다.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만나 대화의 화제를 찾지 못할 때 이 프로그램만 틀어놓으면 그런 걱정에서 해방됩니다. 조용히 앉아만 있어도 되고, 화제가 필요할 땐 가수 얘기를 하면 되거든요. 한국은 섣달그믐에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죠? 일본은 머리가 하얗게 센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하고, 밤에 도시코시소바(한 해를 넘기는 메밀국수)를 먹습니다. 0시 이전에 먹어야 하는데 저희는 자정 직전에 먹어요.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걸 감사하며 새해에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희는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밖에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신사나 절을 찾아가 행운을 비는데, 12월 31일 밤새 신사나 절 앞에 줄을 서서 안으로 들어가길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메이지 신궁에는 무려 3백만 명이 한 해의 소원을 빌러 온답니다.

1 설음식은 포장된 걸 주문 배달해 먹습니다. 2·3 일본에서는 설에 찬합에 넣은 찬 음식을 먹어요. 불을 쓰면 신이 노여워한다고 합니다. 4 12월 31일에 꼭 먹는 메밀국수.

1 설음식은 포장된 걸 주문 배달해 먹습니다. 2·3 일본에서는 설에 찬합에 넣은 찬 음식을 먹어요. 불을 쓰면 신이 노여워한다고 합니다. 4 12월 31일에 꼭 먹는 메밀국수.

이렇게 한 해가 마무리됩니다. 설날 음식은 언제 준비하냐고요? 하하하. 일본은 설날 음식을 차갑게 먹어요. 찬합에 든 음식을 미리 준비했다가 먹는데, 요즘은 오세치 요리(설 찬합 음식)를 전문 식당에서 주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댁도 주문해 먹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저는 특별히 요리를 하지는 않는답니다. 샐러드만 곁들이는 정도예요. 설날 아침에 일어나면 오세치 요리를 먹고, 절에 가서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빌고, 시어머니와 성급히 쇼핑에 나섭니다. ‘복주머니’를 사기 위해서지요. 각 브랜드들이 자사 상품을 이것저것 넣은 복주머니는 백화점 앞에서 밤새워 줄을 서서 살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새해의 운을 점치는 역할도 합니다. 과연 지불한 돈보다 더 비싼 것이 들었는지. 운이 좋으면 바겐세일 때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이렇게 일본의 연말연시 풍경을 간략하게나마 전해드렸는데, 독자 여러분도 남은 한 해 무사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기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육아 삼국지_일본 하나맘 이야기]일본 하나네 가족 연말연시 풍경

하나 맘, 김민정은…
1976년생. 열여섯 살 때 가족 이민으로 일본행.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도쿄에서 보낸 셈이다. 첫째 하나와 둘째 하루를 키우며 낮에는 대학원생, 저녁에는 라디오 방송 통신원, 밤에는 번역가로 열혈 활동 중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낼 꿈을 갖고 있다. 대학 연극 동아리 동기로 만난 남편은 교육방송 PD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글&사진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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