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집에서 전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처음 만들어보고 신나하는 효재예요. 2 연말이 되면 쇼핑몰 등 대형 건물들은 실내외를 각각 특색 있게 꾸며놓아요. 3 매년 크리스마스 때 준비해서 제3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Box of Hope’예요.
홍콩은 연말이 1년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어요.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정도로 약간 쌀쌀한 편인데, 그래서 외출하기에 더욱 좋아요. 연말이 다가오면 홍콩의 모든 거리와 건물 그리고 실내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멋지게 단장되지요. 매년 다른 주제로 다양하게 꾸미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그 기발함에 탄성을 지르게 된답니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수시로 라이브 음악 연주회가 열리기도 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둘러서서 손뼉을 치며 음악을 즐기거나 어린아이들은 춤을 추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주되는 악기들을 관찰하곤 해요.
또 연중 최대 세일 기간이기도 해서 마치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홍콩으로 몰려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관광객들이 넘쳐나요. 요즘 한국의 겨울이 점점 더 추워지고 있어서인지 한국 친구와 가족에게 홍콩은 좋은 피한지가 되기도 한답니다. 저희 가족은 이미 몸이 현지화돼버려서 요즘 정도 추위에도 겨울 코트를 꺼내 입어야 하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들은 덥다며 반팔 차림으로 다니기도 하더라고요. 참고로 홍콩은 기온이 10℃ 이하로만 떨어져도 사람이 얼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크리스마스
홍콩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의 방학 기간인 2, 3주 동안에는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크리스마스를 매우 큰 휴일로 여기는 유럽이나 호주, 미국, 캐나다 쪽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각 학교에서는 ‘Box of Hope’라고 해서 학생들이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 제3국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는 행사를 진행해요.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직접 선물을 마련하고 준비할 수 있게끔 하기도 해서 일방적으로 ‘받는 크리스마스’만이 아닌 ‘나누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교육한답니다.

1 한복을 좋아하는 효재. 2 색이 고운 한복은 외국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에요.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자정에 시작하는 성대한 불꽃놀이가 새해를 알리지요. 홍콩아일랜드와 구룡 반도 사이에 서울의 한강 정도 폭의 바다가 있는데, 그 위에서 불꽃놀이를 해요. 방송사들은 불꽃놀이를 생중계하고, 각종 쇼도 벌어지면서 홍콩 시내는 인산인해를 이루지요. 물론 차량들은 통제되고요. 저는 홍콩에 오는 해에 효재를 가졌고, 이후로는 아이가 워낙 어려서 직접 불꽃놀이를 보러 가지는 못하고 늘 TV로만 구경했어요. 그 인파에 뛰어들려면 굉장한 용기와 체력이 필요하거든요. 한국에서 보신각 종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노력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는 그리 춥지 않기에 잘 버틸 수 있는 체력만 갖추면 될 것 같아요. 예전에 홍콩의 중국 반환 10주년 기념 불꽃놀이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아, 역시 중국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더라고요.
화려한 구정 퍼레이드
이렇게 거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구정이 되면 홍콩색이 짙은 여러 가지 장식이 등장하고 관련 행사도 열립니다. 일반 아파트의 로비도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 치장을 하고, 구정 연휴 동안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커다란 드래곤 탈을 쓰고 드래곤 댄스를 펼치며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해요. 이러한 행위는 액을 막아준다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른들은 붉은 봉투에 약간의 돈을 담아 손아랫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이를 ‘라이씨’라고 해요. 많이 나눠줄수록 복이 들어온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당량의 ‘라이씨 봉투’를 지니고 다니면서 “쿵헤이팟초이(‘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는 의미)”라고 말하며 나눠줘요.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나이가 다소 많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라이씨 봉투를 받는 입장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홍콩은 우리나라처럼 ‘민족 대이동’이 없어서인지 의외로 공휴일은 달랑 하루예요. 그것도 우리나라 설날 다음날이 공휴일이라서 저는 매번 깜빡하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조금 늦게 전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사촌들까지 친척들 모두가 모여 며칠 동안 서로 부대끼며 떠들썩하게 보내는 명절이 아니라 그런지 외부적으로 비치는 화려함과는 달리 안으로는 무척 차분하고, 어떨 때는 조금 외롭기도 해요.

1 우리 동네의 연말 장식이에요. 2 구정을 맞아 시내에 용을 장식한 모습. 이렇게 온통 황금색이나 붉은색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요. 3 연말을 맞아 유치원에서 특별한 쇼를 준비했네요. 4 한겨울,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효재. 5 연말 장식 중 한국을 테마로 해 꾸며놓았어요. 6 동네 가게에도 이렇게 예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았네요.
홍콩 사람들에게 신년은 구정을 의미해요. 신정은 큰 의미를 두지 않죠. 그래서 구정을 맞이하기 직전에 집 안 대청소를 하고, 구정 전에는 이사도 하지 않아요. 참고로 12월부터 시작되는 홍콩 대세일은 구정 바로 직전이 가장 싸답니다.
이곳에서는 구정을 ‘차이니즈 뉴 이어’라 칭해요. 유치원에서는 구정 하루 전 날에 명절 옷을 입고 등원하라고 하는데요. 홍콩 아이들이나 몇몇 외국 아이들은 중국 전통 옷을 입고 가기도 하던데, 저는 매해 효재에게 한복을 입혀 보냈어요. 그런데 한복이 워낙 색이 곱고 예쁘잖아요. 그래서 그때마다 외국인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곤 해요. 심지어 옆 반 선생님들까지도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사진까지 찍어 간다고 하더라고요. 효재 학년에 통틀어 한국인은 효재 하나뿐이라 더욱 주목을 받게 되네요.
홍콩에서도 명절이면 가족이 모두 모여 같이 식사를 해요. 다만, 어른들이 계셔도 한 집에서 모든 음식을 다 장만하거나 손님을 치르지 않고 식당을 예약해 모두가 힘들이지 않고 즐겁게 즐기려 해요. 한국 며느리들에게는 조금 부러운 모습이지요.
이렇게 떠들썩한 연말과 연시를 보내고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갔던 친구들이 속속 홍콩으로 다시 돌아오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우곤 해요. 그리고 이때의 즐거운 에너지로 힘차게 또 한 해를 시작하게 되지요.

1 탈을 쓰고 펼치는, 액을 막아준다는 의미의 드래곤 댄스예요. 2 구정을 맞아 학교에서는 전통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어요.
홍콩에 입성한 지 7년째, 훤칠한 열네 살 큰아들과 다섯 살 늦둥이 아들 효재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큰아이를 키울 때는 일과 학업으로 바빠 육아가 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뒤늦게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작년에는 효재가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이 돼 국영기업 이미지 광고에 출연했다. 홍콩 전역이 인정하는 멋진 아들을 둔 엄마인 셈이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정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