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입학 시즌이구나. 소원이도 작년 이맘때 생애 최초로(하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 교육은 ‘백년대계’라 할 만큼 중요한 일 아니겠니.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http://img.khan.co.kr/lady/201403/20140311151911_1_201403_414.jpg)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
게다가 ‘천만다행’히도 이 동네에는 오정초등학교가 있단다. 마음에 드는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 이것은 실로 감사할 일이었어.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미는 이 동네 학교에 대해 관심이 컸거든. 너도 잘 알다시피 ‘모모 작업실’에는 늘 손님들이 모이잖니? 이른바 ‘모모 패밀리’라고 불리는 할미의 오래된 친구들 말이야. ‘패밀리’ 중에 그 학교의 학부모가 있었는데 늘 “모모 선생님, 여기 학교 걱정은 마세요. 그 학교 ‘제법’이에요”라고 했지. 상당히 의식 있는 학부모의 관점에서 지켜봤을 때도 ‘제법’이라는 표현을 붙이며 학교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내는 걸 보고 나는 더 이상 소원이 너의 미래 초등학교 입학을 걱정하지 않게 됐단다. 하마터면 맹모삼천지교는 못해도 초등학교 걱정으로 이사를 했을지도 모를 일. 이렇게 해서 너는 고맙게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거란다.
이렇듯 생각해보면 작은 단위의 지역사회마다 알알이 박혀 있는 요소들 그리고 혜택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각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혹은 숨어 있는 단체나 개인들의 공로라고나 할까. 행정의 보여주기식 허풍스러운 사업들 말고 진정한 것, 진정성 있는 문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 동네에는 소문난 작은 병원-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선생님이 계시는-이 있는데, 동네 병원이라 해도 항상 줄을 서야만 할 정도야. 규모는 작지만 큰 역할을 하며 동네를 지키는 훌륭한 분들이지.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http://img.khan.co.kr/lady/201403/20140311152023_1_201403_414b.jpg)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
그리고 알고 보면 동네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음식점이나 청과물시장의 마음 좋은 아저씨 등 이런 크고 작은 요소들이 주민에게 행복을 주거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 그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살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모두는 제각기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곤 해.
특히 네가 다니는 학교는 위치도 매우 좋고 아름답잖니. 정문 앞에는 오래된 정원과 건물 그리고 넓고 거룩한 느낌의 수녀원이 마주하고 있어 그 풍경만으로도 학교에 다니고 싶어지게 만들지. 누구든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유년에 가졌던 막연한 꿈에 다시 젖게 될 거야. 사실 옛 시절에는 이런 장소가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추억을 더듬거나 유년기를 회상할 만큼 오래된 것들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 같아.
2013년 3월, 네가 입학하던 날의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그 당시 영화 ‘7번방의 선물’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고 여러 매체에서 너의 입학식을 취재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단다. 양식 있는 보도진들은 처음에는 무척 아쉬워했으나 결국 우리 가족의 뜻을 이해하고 존중해줬고, 또 함께 출연했던 류승룡 아저씨도 신중히 고민하신 끝에 소원이와 학교를 위해 아쉽지만 참석을 포기하셨어. 모두 고마운 결정을 내려준 덕에 조용하게 입학식을 마칠 수 있었지. 그렇게 어른들까지는 모두 협조하고 잘 넘어갈 수 있었는데, 으아! 인근에서 몰려온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 그 추운 날씨에도 정문에 서서 너를 보겠다고 안쓰럽게도 몰려와서 기다리며 서 있던 기억이 나는구나. 너의 초등학교 입학식, 벌써 1년 전의 이야기다.
가만히 보면 너는 학교생활이 무지 좋은 모양이다. 각종 인터뷰 때마다 아이답게 지루해하다가도 “학교에 입학했어요?” 이런 질문만 나오면 금세 활기찬 표정을 띠며 솟아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지. “네!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라고 답하는 네 얼굴에선 광채가 날 정도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http://img.khan.co.kr/lady/201403/20140311151911_2_201403_415.jpg)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
사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오랜 시간 비행을 한 건 여행이라기보다 가족과 운명의 필연에 기댄 것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그로 인한 새로운 인연과 기회가 생기기도 했는데, 한번은 여권을 갖고 있는 아역 배우를 찾는 급한 캐스팅 문의가 왔었지. 다섯 살 미만 아역으로 여권을 이미 소지한 어린이가 귀했겠지. 그때 주변 동료들은 너를 부러워하며 당연히 우리가 그 역을 승낙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 멀고 먼 뉴질랜드 촬영이더라고. 우리는 정중히 거절해야만 했어. 며칠 광고를 찍자고 너를 긴 시간 비행기에 태우고 싶지 않았거든. 영상 팀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내 생각에는 제주도만 잘 활용해도 뉴질랜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 여러 생각 끝에 그런 결정을 했던 건데, 주변에서는 그 좋은 기회를 왜 반대하는지 곧잘 묻더라고. 내 생각에 이런 상황은 일반적으로 자칫 쉽게 범할 수 있는 함정이라 생각하는데, 외국 촬영이라면 무조건 환상을 갖게 되는 우리의 약점(물론 지금은 한류를 타고 나날이 내실을 다져가고 있긴 하지)을 발견할 수 있지. 생각해보렴. 어린아이에게 외국 촬영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른 또한 굳이 해외 촬영을 왜 큰 영광처럼 생각해야 할까. 아이가 마음껏 놀고 다양한 것들을 보고 배우는 자유로운 여행이 아니라면 말이야.
뭐 어쨌든 이쯤에서 각설하고 다시 돌아가면, 초등학교 입학 후의 네게는 이제 여행이든 운명이든 그보다는 학교가 먼저인 생활이 시작됐지. 과장하자면 인생의 첫 굴레랄까. 그리하여 우리 가족도 이제는 평일의 자유는 포기하고 결국 주말에나 자유를 찾아 나서는 대중적 레저에 합류해야만 하게 된 거다. 아흐, 슬퍼라.
그래도 시절은 참 좋아졌고, 요즘은 개인의 사정이나 융통성이 허락되는 교육 현장이 됐더구나. 옛날 같아봐라. 개근상에 목숨 걸어야 하고, 지각은 당연히 허용이 안 되고 한 번쯤 사정을 내세울라치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단다. 개인적 사정이 학교의 원칙 앞에 허용되는 게 쉽지가 않았지.
진보한 오늘날, 학교 측의 배려로 인해 이미 높은 수준의 관용이 베풀어지고 있더구나. 연기 활동을 하는 네게도 그런 부분들이 작용하고 있고, 촬영 팀과 학교 측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매끄럽게 이루어져 참 다행이다. 이렇게 원칙과 배려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선택은 학부모 몫이 되겠지. 물론 아무리 특별 배려가 있다 쳐도, 학업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 고학년이 되면 스스로(학부형 측) 분별 있는 용단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소원이는 다각적으로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또한 가족의 논의와 신중한 선택으로 무리 없이 일을 해냈는데, 아마 학년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고민과 결단도 비례하게 될 것 같다. 계속해서 잘해나갈 수 있겠지.
이번 주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는데, 우리 소원이가 아동 폭력과 학대를 방지하는 각종 활동을 펼쳐나가기 위한 홍보대사로 위촉됐지. ‘아동 학대 홍보대사’라는 말의 의미조차 아직 제대로 모를 소원이 너를 두고 우리 가족 사이에서 또 한 번 역할을 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어. 주저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너와 마찬가지로 학대의 뜻도 모를 어린아이들이 당하는 비극을 막자는 운동이라 수락하게 됐어.
이 할미는 인간은 세상을 위해 뭔가 공헌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런 점에서 네가 필요하고, 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거겠지. 앞으로도 이런 멋진 역할을 해나가며 부디 튼튼하게 그리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란다.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http://img.khan.co.kr/lady/201403/20140311151911_3_201403_415_profile.jpg)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입학, 행복한 성장을 위한 시작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제공 / 조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