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게 쓰는 편지]미션 임파서블은 없다! 앞니 대소동](http://img.khan.co.kr/lady/201404/20140414152004_1_lady04_474.jpg)
[손녀에게 쓰는 편지]미션 임파서블은 없다! 앞니 대소동
영화 예술의 세계란 ‘007 시리즈’의 긴박함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지. 유년기에 누구나 겪게 되는 이갈이, 이 정상적인 사건이 그토록 큰 난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소원이 여섯 살 적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금도 너의 이갈이는 들쑥날쑥 진행 중이지만….
너의 최초 이갈이를 기억하니? 앞니가 흔들린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의 고민이 시작됐지. 1주일 후에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있었거든. “어찌할 것인가?” “어쩌긴 뭘 어째. 별게 다 걱정이네. 자연스럽게 하면 되지.” 하지만 그건 그 바닥의 상식을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앞니 빠진 소원이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겠지만, 문제는 스크린 속에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데 있단다. 시나리오에 없는 건 안 되는 일이었어. 잘만 견디어서 1주일 후, 마지막 촬영까지만 붙어 있어다오. 노심초사하는 동안 시간이 금세 흘렀지. 월요일 촬영을 앞두고 토요일 밤까지도 붙어 있는 이를 보며 설마설마했단다.
그런데 촬영 바로 하루 전 일요일 아침에 이가 빠져버리고 말았지. 그것도 음식을 먹던 소원이가 이를 뱉어놓았단다. 허무하다. (내일이 촬영인데 우짜면 좋노?) 빠져버린 입 속은 커다란 동굴이 생겨서 얼굴까지 낯설고 이상했고, 말씨는 말할 것도 없었단다. 설설설~ 발음이 마구 샜지.
상담을 하자니 치과는 물론 모든 병원도 쉬는 일요일. 설상가상에 사면초가. 이런 난감한 상황이 총집합된 사건이라니! “이~” 하지 않는 이상 이 빠진 구멍이 보일 리 있나 싶어서 “소원아, ‘모모 사랑해’ 해봐”라고 시켰지. 소원이가 나를 보며 “모모 사랑해” 하는 순간. 맙소사, 까맣게 빈자리가 들여다보이고 바람이 새어 나왔단다. 이 빠진 소원이는 할머니가 보기에도 낯설어서 이거 큰일 났다 싶더구나.
정작 설마가 현실이 되자, 이 시간부터 난리 대소동이 났단다. 늦출 수도 없는 촬영 날짜, 게다가 소원이는 주인공이었지. 일단 감독님에게 알렸어. 이미 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감독님도 우리처럼 초조한 상태였는데. 드디어 이가 빠졌다고 연락을 한 시간이 낮 12시경. 촬영 팀은 모조리 촬영지 익산에 내려가 있었고, 그날 밤 소원이도 합류할 예정이었어. 그래야만 월요일 아침 촬영에 차질이 없으니까.
익산으로 떠날 예정 시간은 오후 6시. 익산에 가서 그날 밤엔 잠만 자면 되니까. 소원이를 일찍 재우면서도 최대한 집에 머물 게 하다가 보내고 싶어 결정한 시간이 그 때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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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에게 쓰는 편지]미션 임파서블은 없다! 앞니 대소동
일단 일요일에도 열려 있는 치과를 찾아 헤매야 했지. 이가 빠진 채로 촬영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감독님의 엄명이니, 인터넷의 공로로 문을 연 치과를 찾은 뒤 달렸어. 치과에 도착하니 때마침 점심시간. 오후 2시가 돼서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임플란트를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내일 오후는 돼야 합니다”라고 했단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지.
감독님께 문의하니 “그럼 일단 본을 떠서 맡겨놓고 오세요. 완성된 본을 찾는 건 연출부 스태프를 보냅시다”라고 했지만, 이 보고를 들은 의사 선생님의 답은 단호했단다. “안 됩니다. 본인이 있어야 해요. 이가 맞는지 끼워봐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족히 1백 통의 전화가 오갔을 것이다. 출발 예정 시간을 2시간 앞두고 익산에서 급한 통보가 왔지. “즉각 내려오세요. 익산에 치과 마련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매니저를 담당하는 이모와 넌 부랴부랴 익산으로 향했어. 익산 도착 시간이 오후 6시 반. 통보받은 치과로 직행했지. 이번엔 내비게이션의 공로가 컸다.
서너 명의 의료진이 퇴근도 못하고 영화사의 연출 팀과 함께 대기하고 계셨단다. 빠진 이 사이로 까만 동굴이 보이는 소원이의 잇몸을 수십 명이 들여다보았지. (조금 과장하자면) 미션 임파서블이다. 일단 난색을 보이는 의사 선생님. 막상 보니 이가 너무 작아서, 도저히 본을 뜰 처지가 아닌 듯했다. 철심을 걸어서 틀니처럼 걸어보자니, 그 또한 말만 들어도 무서운 것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소원이는 부정교합이라는 판정을 받았단다. 입을 다물면 윗니가 아랫니를 완전히 덮어버리니까 임시로 임플란트를 설치하는 것조차 불가하다는 것이었지.
뭐시라? 서울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가족은 모두 손거울을 들고 새삼 본인들의 윗니와 아랫니를 맞물려보았단다. 그냥그냥 다 비슷한 정상이다. 무슨 아랫니가 안 보이냐?
이때 전광석화와 같이 네 엄마가 싱가포르에 있는 네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혹시 이 부정교합 아니었어? 맞지? 맞지?’, ‘부정교합이 뭔데?’, ‘빨리 거울 보고 이를 다물어봐. 윗니가 아랫니를 완전히 덮는지 보라고’ 옥신각신 끝에 온 네 아빠의 답. ‘이를 다물면 아랫니가 당연히 안 보이지, 그게 왜 보여?’
모두가 웃었단다. 그러면 그렇지 유전자라니까. 강한 유전자야, 부정교합! 그러나 시방 웃을 때가 아니었지.
감독에게 임무 불가능을 알리는 연출 팀. 어떻게든 이를 메워야 한다는 감독. 난색을 표명하는 치과. 007 작전은 저리 가라였지. 감독님의 꺾을 수 없는 미션을 받고, 소원이의 잇몸을 계속 살피던 의사 선생님(여기서부터가 클라이맥스의 시작이다).
“캬아~ 이거 빠진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게 있을 리 있나. 집에서 밥 먹다가 이가 빠진 걸.
“넵? 빠진 이 여기 있는데요?”
이때 네 이모가 이렇게 대답했단다(정말 웃겼다. 원래 이모 별명이 ‘닥터 리’. 꼼꼼하고 정확한 것은 누구도 못 말리지). 네 이를 검은색 종이에 싸서, 종이컵에 담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손으로 집기 어려울 만큼 작고, 생선 비늘보다 존재감이 없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 물질을. 눈에 잘 띄지도 않아서 검정 종이에 쌌다는 얘기에 ‘역시 네 이모구나’ 했단다.
그와 동시에 의료진 일동이 머리를 맞대 놀라운 협동심을 발휘했고, 결국 그 이를 본드로 붙였다는 상황이 나에게까지 전해진 거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또 한 번의 위기
이튿날 드디어 촬영이 시작됐단다. 임시로 이를 붙인 소원이의 고충은 이 할머니의 군걱정에 불과했어. 동영상으로 전달된 소원이의 연기 장면은 걱정을 잊게 할 만큼 기쁨을 주었지. 오전에는 주로 멀리서 길게 잡는 망원 촬영이 있었고, 오후에 클로즈업 촬영이 남았다고 했어. 드디어 이까지 카메라에 잡히는 중요한 촬영을 남겨둔 것이었지.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어. 차라리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오전 촬영을 마치고 쉬고 있는 너에게 하필 지나가던 누군가가 캐러멜을 줬다지. 그 캐러멜을 받아 먹고 그만 이가 뽑혀버린 거야. ‘대형 참사’였어. 촬영장은 긴장의 도가니.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이었지.
클로즈업 촬영을 어쩔 수 없이 하루 미루고 치과로 다시 달려갔어. 치과 의료진은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고,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동원했단다. 조금 과장하자면 익산 시내 치과 선생님들이 총출동했다지.
결국 양쪽 날개처럼 생긴 투명 플라스틱에 이를 붙이는 장치를 만들었어. 잠자리 날개 같은 양쪽을 잡고 이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는 그 장치를 만들기까지의 시간싸움은 아유, 말도 마시라. 또 전화 통화는 끝이 없었지. 의사-감독-의사-기공사-의사-감독-의사-기공사…. 참말이지 지방에서나 가능한 훈훈한 미담이 아닐까 싶구나. 그 치과는 최선을 다해 촬영을 도운 것이지(영화가 개봉하면 이 치과 그룹에 특별 티켓을 잊지 말고 보내기로 했다).
영화 제작이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지. 그 일을 해내는 모든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부디 소원이도 어려움 속에서 용기와 극복하는 지혜를 배우길 바라본단다. “소원아 잊지 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7번방의 선물’ 용구 아빠 버전^^).”
![[손녀에게 쓰는 편지]미션 임파서블은 없다! 앞니 대소동](http://img.khan.co.kr/lady/201404/20140414152004_3_lady04_475_b.jpg)
[손녀에게 쓰는 편지]미션 임파서블은 없다! 앞니 대소동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사진 제공 / 조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