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남편 조기영 시인이 보내온 편지 “은산이 동생 은설이가 태어났어요!”
두 돌이 지난 은산이는 이제 제 작은 세상들, 집과 어린이집과 외할머니 댁을 휘젓고 다닌다. 양가 어르신들을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구별해주니 “외엄마”, “외아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웃음꽃을 퍼 나른다. 녀석은 요즘 뭐든 자기가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아무도 손대지 말라며 “지가!”, “지가!”를 연발하고 있다. 신발을 신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엄마, 아빠가 도와주려 하면 “지가!”를 외쳐댄다. 답답하면서도 도와주려다 싸우게 되니 그냥 지켜보게 된다. 자기가 하다하다 안 되면 엄마나 아빠를 빤히 쳐다본다. 그 표정이 꽃봉오리처럼 사랑스럽다. 마흔넷에 얻은 아들, 은산이. 녀석을 얻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꽃은 바람만으로 피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내게 다섯 번 청혼해 결혼했다고 이야기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녀도 오랜 기다림 끝에 나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사자인 나는 그걸 몰랐다. 누가 그 횟수를 세고 있었겠는가. 나는 그녀가 결혼 의사를 내비칠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결혼을 미뤄 그녀가 이 사회에서 잘 자리 잡기를 바랐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나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아나운서에 합격하고 신내동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젠 네가 사회적으로 보면 강자야. 난 오랫동안 네 사랑을 충분히 받았어. 그걸로 나는 충분해. 네가 내 곁을 떠나도 난 여한이 없어.”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떠보는 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왠지 그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정 때문에 곁에 남아 있는 건 나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남편 조기영 시인이 보내온 편지 “은산이 동생 은설이가 태어났어요!”
결혼 후 그녀는 일에 집중했다. 일과 신혼을 즐기며 아이 갖는 것은 미뤄두었다. 아이를 기다리기는 했지만 아이 갖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마흔이 넘어도 표 나지 않게 그녀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기만을, 아이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활짝 열리기만을 바랐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나도 서로 다른 이유로 기다린 날들이 많았구나 싶다.
아내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 것은 결혼 후 2년이 지나서였다. 그녀의 결심이 서자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먹었던 약 중에 스테로이드제라는 게 있다. 강직성 척추염 발병 초기에 통증이 심할 때 여러 약과 함께 한 번에 네 알씩 먹기도 했는데, 아이를 가지려면 그 약을 먹은 날로부터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는 지나야 했다. 2008년경에는 스테로이드제를 먹지 않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드물게 눈에 포도막염이 발생했다. 그 무렵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포도막염은 쉽게 말해 강직성 척추염의 염증이 눈으로 흘러든 것이다. 심하면 스테로이드제를 먹어야 했다. 그 약을 먹을 때면 당분간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몸의 가시를 한껏 세운 고슴도치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 무렵 아내가 결혼한 지 3년이 돼가는데 아이가 없으니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 했다. 아이는 갖고 싶고, 몸은 안 되고, 이상한 소문은 돌고, 마음이 무거웠다. 꽃은 바람만으로 피는 것이 아니었다.
혹성 탈출
2009년 1월 29일. 그 날짜를 분명히 기억한다.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내의 이름이 어이없는 이유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내달린 날이니. 이름 하여 고민정 누드 사건. 그날 나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도서관에서 나와 회사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6시가 한참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슨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꽃에, 꽃밭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가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고상우씨로부터 메일을 받은 것은 2008년 늦봄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아내와 만날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그의 제의로 그가 참가하고 있던 전시장을 찾았다. 그는 작품을 보여주며 우리와 작업을 하고자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는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우리 부부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그 내용을 작품으로 만들기를 희망했다.
그 자리에서 작업을 약속할 만큼 그도, 그의 작품도 매력적이었다. 15세에 한국의 미술 교육이 답답해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작가가 된 사나이. 사진을 그림처럼 그리는 사람. 그는 척박한 한국 땅에서 미국으로 날아가 핀 꽃이었다. 그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렌즈 너머에서 밝은 것은 어둡게, 어두운 것은 밝게, 흰 피부는 검게 전복되며, 검은 피부는 하늘색으로, 동양인의 피부는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것에 착안해 창작을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현실과 환상이 전도되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뚱뚱한 여자, 백인 사회의 동양인 같은 소수자, 비주류, 소외된 사람들이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남편 조기영 시인이 보내온 편지 “은산이 동생 은설이가 태어났어요!”
작품 전시는 2월 13일로 예정돼 있었다. 문제의 누드 기사가 터진 것은 1월 29일. 왜곡된 신문 기사로 그녀는 예정되지 않은 고행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이면 울면서 출근을 했고, 저녁이면 울면서 퇴근을 했다. 부당한 기사에 고립된 개인이 넘어야 할 파고는 높았다. 기사는 누드가 아닌데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라는 말을 만들어내는 비범함을 보여주었다. 전시를 못하게 하라는 압력과 소송을 걸라는 겁박이 먹구름 속에서 날아들었다.
비바람은 고상우씨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저질 쓰레기 작가로 격하됐다. 안쓰러웠지만 나는 아내에게 부당한 일이니 이겨내라고,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는 것은 정신적 상처로 남아 이후 그녀를 괴롭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때론 부당한 일을 견뎌낸 자긍심으로 살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었다
고상우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느낌이 이상해 누드 아니라고, 누드의 ‘누’ 자도 꺼내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회사를 빛냈다며 사장이 축하의 꽃다발까지 준다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작품이 의심되면 작품을 다 보여주고 전시하겠다고 했지만 압력은 잦아들지 않았다. 작가와 모델은 함께 압력을 견뎌야 했다. 일회성으로 지나갔을지도 모를 인연은 우리를 동지에 가까운 친구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그녀는 지쳐갔다. 그녀가 알아온 세계는 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막에 꽃이 필 리 없었다. 우리는 밖으로 눈을 돌렸다. 사막이 꽃밭이 되고, 마음에 꽃이 피어날 때까지 한국을 떠나 있기로 한 것이다. 목적지로 떠오른 곳은 중국 칭다오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학이었지만 사실 혹가혹할酷 성별星 탈출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화는 새 생명을 피워내지 못한다
기다리던 아이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된 건 2011년 3월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다음 해, 아내가 아이를 포기하고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그날 우리는 만세를 불렀던가, 아니던가.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태어난 은산이는 이제 엄마, 아빠의 눈빛을 햇빛으로 받아먹으며 뛰어다닌다.
문득문득 궁금하다. 누드 기사를 쓴 그 기자는 무언가 간절히 기다린다는 걸 알기는 하는지, 벌써 5년이 다 돼가는 일인데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는지,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인정을 받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세상이 변해도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이 자식들에게 가장 큰 교육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텐데, 하면서….
귀한 삶이란 본능에서, 욕망에서 멀어지려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내 어머니, 아버지는 농부셨다. 평생 땅을 파 자식들을 가르친 농부. 두 분은 너희가 배우겠다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며 4남매를 대학까지 가르치셨다. 자식들에게는 어디로 가라, 무엇을 해라 한마디 말씀이 없으셨다.
모든 꽃들에게 사랑할 대상과 일할 지역을 정해주고 모두 그에 따랐다면 아마 지구라는 별에 지금처럼 꽃들이 많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조화에 불과하다. 조화는 새 생명을, 새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노닐던 꽃밭은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고상우씨의 꽃밭은 어린 그의 미국행을 묵묵히 지지해준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고상우씨는 머나먼 나라로 날아가 한 송이 꽃을 피워냈다. 그 꽃씨로 우리에게도 꽃을 만들어줬다. 나도, 고상우씨도 이제 아이들에게 꽃밭을 만들어줄 차례다. 언제든 비바람이 불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인생의 일부라는 것, 비바람이 없으면 기쁨도 커지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일러주련다. 그 이외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대에 시는 어느덧 별 쓸모없는 꽃이 돼버렸다. 이 첨단의 이윤 추구 시대에 효율성이 낮아 저 뒤쪽으로 밀려나간 것일 게다. 맨 뒷자리는 철학 하는 자리라 했던가. 그 자리에서 은산이와 이제 막 태어난 은설이가 북극으로 향하기 위해 파르르 떨고 있는 나침반처럼 서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먼 훗날의 얘기겠지만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동반자는 시 1백 편쯤은 외울 줄 알아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아들, 며느리와 혹은 딸, 사위와 시 1백 편을 안주 삼아 술잔을 들고 삶이라는 희망에 대해 함께 얘기해볼 수 있으리라. 그런 날엔 창밖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남편 조기영 시인이 보내온 편지 “은산이 동생 은설이가 태어났어요!”
한 여자의 남편,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 시인은 세상과 ‘맞짱’ 뜰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몽상가. 저서로는 시집 「사람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 장편 소설 「달의 뒤편」이 있다.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조기영 ■사진 / 원상희 ■의상 협찬 / 에뜨와(02-527-1430,
www.agabangncompany.com), 게스 키즈(02-516-5611) ■장소 협찬 / 베이비훈 스튜디오(02-573-3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