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손녀에게 쓰는 편지

(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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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번방의 선물’로 대종상 역대 최연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던 소원이. 정작 가족은 소원이를 연기 천재보다는 또래보다 아기 같은 천진난만한 꼬마로 바라보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콕 집어낸 손녀 소원이의 진짜 모습!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바야흐로 봄이 왔다. 이제 5월이구나. 아무리 지독한 동토의 땅에도 초록 양탄자가 넘치는 계절이 됐다. 너의 활동을 마다하지 않을 완연한 봄이지. 어린 너에게 겨울의 촬영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아버린 우리는 그 이후로 겨울 작품을 모두 거절해왔단다. 물론 누군가는 해야 하고, 누군들 혹한의 겨울에 고생을 원하겠느냐마는, 우리는 다만 소원이의 인격이 완성되고 스스로 의지력이 생기는 성인이 돼 자신의 의지만큼 감당할 몫을 정할 때까지는 그러기로 했단다. 어린 날의 고생도 때로는 보약이 되겠지만 그러기엔 넌 아직 어렸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었지. 하필 겨울에, 드라마든 광고든 영화든, 거기에 홍보 활동까지 일이 많았다. 미처 몰랐던 고생. 기왕 시작한 걸 멈출 수도 없었으니 오직 “고생 끝에 낙이 온다”를 외쳐가면서 강행했던 혹한의 겨울이 있었지. 두 번 말하건대, 고생은 천금보다 좋은 교육이 되기도 하지만 열 살 이전의 어린이에게 조절하지 못하는 고생은 아동학대라고 봐야겠지. 흐흑.

내일도 김밥말이?
우린 그 고난을 ‘김밥말이’라는 암호 같은 제목을 붙여놓고 소통하곤 했다. 어린 너에게 새벽 촬영이 떨어지면 단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그대로 김밥 말 듯이 이불로 돌돌 말아 싸안고 차에 실어 갔단다. 가는 동안 깨우거나 현장에 도착해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른 아침. 어쩌자고 그 겨울 새벽녘 집합이 심심찮게 있는 것이었는지. 그러니 “내일 촬영 일찍부터 하나요?” 하고 물어야 할 때, 우리는 “내일도 김밥말이?”라며 확인했었어. 가족 간의 암호처럼 됐다니깐(웃음). 이 단호한 질문은 결코 장난이 아닌 비장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보니 어느새 너도 알아들었던 모양이야. 어느 날 밤에 같이 자겠다고 나에게 와서는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리며 이렇게 말했지. “내일 이모가 나 김밥말이 해서 데리고 가야 하니까 이불을 이렇게 덮어야 해.” 평소에는 이불을 잘 덮지 않는 네가 그랬단 말이야. ‘아이고, 저 존경스러운 아이!’ 너를 보면서 홀로 충만했던 밤이었지.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12월 초, 뉴스에서는 한파를 예보하느라 분주했다. 하필 그날의 촬영 장소는 인천공항보다 더 먼 항공기 격납고, 즉 비행기 창고였지. 한겨울 첫새벽, 거대한 비행기 격납고는 냉동고와 비슷했다. 다행히 그날 촬영 분량이 적어서 잘하면 오전에 끝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후에는 집에 돌아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면 되겠다고 너는 약속을 했었지.

하지만 정오가 돼도 촬영이 시작되지 않았지. 새벽에 불러놓고 말이다. 이런 일은 다반사지! 이럴 줄 알았으면 따뜻한 집에서 아침잠을 더 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우리에겐 유독 아침잠이 많은 가족력(?)이 있었으니. 이 할머니만 해도 오죽하면 “미국행은 밤 비행기가 많아 오케이, 유럽행은 주로 아침 비행기라 공짜여도 싫다”라고 할 정도로 아침잠이 많기로 소문이 났겠니. 이 지경으로 우리 가족 유전자는 아침형 인간이 못 된다. 이 할미도 연예인 체질이랄까(웃음). 그러고 보니 모두 밤에 불 켜고 일하는 예술 쪽이로구나.

그러니 ‘김밥말이’는 우리 가족에게 고문과 같았어. 응급실만큼 긴박하고 로켓 발사만큼 정확해야 하는 촬영 콜 타임. 그렇게 힘들게 아침을 맞이해서 현장에 도착하는데 촬영 시작 시간은 심심찮게 늦어졌고, 막상 촬영이 제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면 그게 사건이 될 지경이었지. 촬영의 고통 제1번이라면 일명 킬링 타임. 대기 중인 모든 스태프가 지쳐버렸다.

레디, 액션! 자동 반응하는 착한 배우
급기야 현장의 모두가 그로기 상태가 됐단다. 이유는 이랬다. 주인공 여배우가 인생의 큰 전환점인 슬픔에 맞닥뜨려 오열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에 그만 실신해버린 것이다. 혼신을 다해 우느라 기력이 소진돼 회복이 불가한 상황에 이른 것이라 했다. 이 딱한 사정에 누가 어찌 무슨 불만을 터뜨릴 수 있었겠니. 참으로 어찌할 수 없이 촬영이 불가하게 되니, 새벽 김밥말이를 해서 나간 어린애를 다시 데리고 컴백 홈 할 수밖에. 뭐, 이런 일은 다반사라고! 차마 불만조차 할 수 없는 딱한 일이 비일비재하니 불만은커녕 그들의 고군분투를 보자면, 동정을 넘어 놀랍고 존경심이 솟을 정도지만 그 고생은 말도 마시라.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냉동고 같은 비행기 격납고를 새벽에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가. 그 뒤론 다시는 겨울 촬영에는 나서지 않았단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오해를 불사하더라도 신중한 거절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너의 출연을 참으로 많은 분들이 원했지만 말이야.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 많았지. 처음부터 너의 출연을 전제로 하고 준비한 감독님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그렇게 고마운 분들을 우리 가족은 낱낱이 기억하고 있지. 그 대신 무수히 많은 영화를 관람했어. 너 대신 다른 아역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보려고.

그렇지만 네가 촬영에 임하는 동안의 태도나 성격은 매번 감동을 줬단다. 수십 번 같은 걸 반복하고 요구해도 짜증내거나 성깔을 부리지 않는 심성. 천진난만함. 아무리 졸리더라도, 잠자는 걸 깨워 일으켜 세워도, 부스스 일어나서 “레디, 액션!” 하면 자동으로 반응하는 너. 그 착한 마음에 많은 스태프들이 매번 놀라고 사랑스러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 그건 너의 연기력보다는 신통한 인내심에 주는 칭찬이었을 것이다. 류승룡 아빠, 유준상 아빠, 그 밖의 많은 삼촌, 이모, 엄마 역할을 해주신 명배우들이 말이야. 한편으로는 이러한 너의 인내심과 책임감 속에 무엇이 싹트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혹여 어린 너만의 중압감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걸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우리는 살피고 배려하고 조절해야만 하고.

기억에 꼭꼭 담아두고픈 순진함
물론 지금도 넌 달랑달랑~ 흔들흔들~ 이런 느낌의 천사지. 학교에 가서 보면 맨 앞줄에 꼬마 한 명이 비틀비틀 아장아장 느낌으로 걸어오곤 한단다. 그렇다 보니 네가 아역 배우여서가 아니라 하도 귀여워서 저절로 구경들 한다니까. “어머, 저기 제일 쪼끄만 애. 쟤야, 쟤.” 유독 조그맣고 말똥말똥 귀여운 너를 보면 누구라도 꺅 소리를 내고 말지. 아홉 살이 되도록 말이야.

이제 너도 2학년이 됐구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네 이모는 지금도 학교에서 너를 볼 때면 매번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고 한단다. 방과 후에 아이들은 신발장에서 각자의 신발을 뚝딱 꺼내 신고 삽시간에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이모가 출입구에 붙어 서서 그걸 보자면 너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서 아이들 틈에 넘어지기 일쑤고,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서툴기만 해서 맨 뒤에 간신히 나오니 말이지. 이런 풍경들은 어린 날의 네 모습을 기억하는 특징이 될 거야. 도대체 학교 급식은 어떻게 받아먹는지, 온 가족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지. 느리고 약하고 서툴고 답답한 너. 그냥 웃음이 나오는구나. 이런 너만의 독특한 순진함이 나에겐 무척 소중하단다. 이렇게 써놓고 그 귀여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구나.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손녀에게 쓰는 편지](10) 소원이 김밥말이 사연

PROFILE 조은일 작가는…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사진 / 조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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