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의 진심](http://img.khan.co.kr/lady/201406/20140609162757_1_lady06_408_a.jpg)
[손녀에게 쓰는 편지](11) 외할머니의 진심
어린 너의 데뷔 초창기, 집에 있어도 할미는 사령탑과 같았다. 네가 촬영하러 가는 날은 온 가족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어. 할 이야기야 태산 같지만 우선 한국인들의 ‘코리안 타임’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 이 묵고 묵은 불합리를 누가 때려치울 것이냐. 어디다 대놓고 딱히 누구를 상대로 삿대질도 할 수 없는 메커니즘. 영상 예술, 영화, 드라마 제작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었어.
‘아침 9시 집합!’ 이것도 맘에 안 들었다. 직장, 학교, 온 서울 시민이 거리로 나서는 출근길 러시아워. 하필 자유업인 촬영팀마저 이 지옥 타임에 합류하다니! 생방송도 아닌데 말이다. 길에 뿌려지는 시간도 아깝거니와 한 사람만 지각해도 또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지게 마련이었어. 어린 너의 생체 리듬까지 깨뜨리면서 시간을 맞추는 건 잔인한 일이었지.
아역 배우의 발달 상태, 개인적 기능, 생리적 리듬(수면 시간) 등 모든 것을 헤아려 최대한 일사분란하게 진행할 수는 없는가.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어린아이기에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건만, 아침 9시에 나간 아이가 밤 9시가 돼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 그동안 죄 없는 너의 이모(소원이 매니저)가 중간에서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 “도대체 거기 총책임자가 누구냐?”라며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시시각각 미쳐가던 이 할미. 급기야 이런 날도 많았어. “감독 바꿔!” 하고 내가 명령하기에 이르렀지. 감독을 바꾸라니. 알고 보면 완전 왕무식이 아닌가. 언감생심 감독과 통화가 그 시간에 가능이나 하겠는가. 현장을 총지휘하고 작품을 위한 몰두에 머리가 터질 지경일 텐데….
그럼 누구를 바꾸나? 제작사 대표나 과장을 부르나? 어느 누구도 책임자가 아니다. 그 무엇도 직접 전달되지 않는 구조. 매니저-에이전시-기획사-광고주-촬영팀-감독-AD, FD, PD…. 아이고, 머리야~. 책임자도 대상도 없는, 모두가 피해자?(웃음)
나에게는 참새 같은 손녀. 그 가냘픈 놈에게 이 무슨 혹사냐고! “여보시요. 당신들 미국 같으면 감방에 가요~.” 아이를 배려하지 않고 하루 종일 내 피를 말리게 한 죄. 아무도 없는 무책임에 대해 열을 토하고 피를 토했다. 이건 순전히 뭘 모르는 때, 벌써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어른이라면 고생이든 희생이든 자기 할 탓이지만, 이건 아무런 권리가 없는 아이를 놓고 이래서야 되겠는가. 촬영 현장에 불이라도 지르러 갈 것처럼 매번 화가 났어. 잘 다스려지지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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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에게 쓰는 편지](11) 외할머니의 진심
“그러게요. 제작사 측도 죽으려고 해요.” (에이전시의 진심)
에이전시는 하도 답답해서 겨우 제작사에 알아본다.
-시간이 이렇게 늦으면 안 되잖아요!
“저희도 지금 미치겠습니다.” (제작사의 진심)
마지못해 제작사가 촬영팀에 묻는다.
-몇 시쯤에나 시작될 수 있을까요?
“세트장이 이 모양이네요.” (누구 탓도 못하는 촬영팀의 진심)
세트장 실무에게 물어봤자,
“와야 할 물건이 늦어져서요.”
이렇게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라니까! 과연 진정한 선진국이 돼도 이럴까? 할미는 그것이 알고 싶다. 비단 촬영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기초는 성실, 정직, 책임의 철저한 구조적 장치가 있어야만 하지. 그러나 산 넘어 산. 아침에 촬영장으로 간 소원이가 밤이 돼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어. 할미의 아우성은 달걀로 바위 치기였고.
퍽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어린 소원이는 놀랍게도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어디서나 신나게 보낸다는 것이었어. 모든 스태프가 귀여워하며 같이 놀아주었지. 촬영장의 화려한 무대, 신기한 시설물, 각종 의상 등 말 그대로 소원이에게는 환상의 세계일 거야. 그렇게 나를 위로했지. 그리고 관대해져야 했어. 모든 것은 대가를 치러야 얻어지는 것. 고생 없이 이루어지는 게 있겠냐 말이다. 그리하여 배우란 얼마나 멋진 일이냐, 하는 결론에 이르렀어. 견디어야만 되는 것이지.
소속사 YG를 만난 소원이
어쨌든 가족은 어린 너의 정서에 미칠, 혹여 우리가 모르는 스트레스와 과중한 압력을 우려하고, 또 네가 더 자라 스스로 판단이 서기 전에는 함부로 과용할 수 없었기에 사실은 참 많은 기회를 그냥 보내야 했단다. 공공연히 혹은 비밀스럽게 너를 찾는 고마운 분들에게 정중한 거절을 해야만 했지. ‘배가 부른가?’, ‘그렇게 잘났냐?’, ‘그리도 비싸냐?’ 등 자칫 오해할 수도 있었거든. 그런데 전화위복이랄까. 바로 너의 이 점을 간파한 소속사, YG가 있었어. YG는 고맙고도 이상적인 방법으로 너를 관찰했더군. 접근 방식이 달랐지. 오래 기다려주었고, 그곳의 교육관, 예술관, 세계관이 우리랑 맞았어. 오너의 생각이나 행동이 바로 서면 좋은 업체가 되고, 그 하나하나가 우리를 선진국의 반열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할미는, 모모는 선진국형을 좋아해(웃음). 일종의 자부심이지. 네 소속사와 오래오래 서로 협동해 큰 업적을 이루길 바란다.
마지막 원고 모모의 삶을 회상하며
나의 인생은 세 가지 키워드로 작동되는 삶이었어. 자랑이든 비하이든, 나는 예술의 재능과 특기와 취미,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내재된 성향으로 태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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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에게 쓰는 편지](11) 외할머니의 진심
문학. 음악이 타인으로부터 공급받는 찰나적인 감동이었다면 문학은 나의 삶이었지. 뭐 유별난 공적을 세우거나 현시적 욕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문학이란 음악과는 반대로 인간을 아주 서서히 변화시키는 무척 느린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장기적으로 인성을 높여주고 가장 오래오래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가져다주는 위대함. 나와 맞는 느림의 미학이 문학이지. 문학이 없는 삶이 내게 가능할까 싶구나.
미술은 나의 첫사랑, 나의 재능, 나의 뼈아픈 배반. 나는 결국 미술을 놓아버렸지. 그랬는데 나의 딸, 소원이 네 엄마가 학창 시절 내내 미술로 이름을 날리고 학교를 빛내며 이화여대 미술학과를 나왔지. 말 나온 김에, 네 이모는 같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단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이딴 허세가 한 톨도 없는 두 자매(웃음).
음악적 감성, 미술적 재능, 문학적 삶.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영화적인 네가 탄생했지. 소원이, 너를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선율을 떠올리며) 감동에 빠져 이 글을 쓴다. 마지막 원고를. 손끝으로 자판을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자연스러움에 빠져 쓴다. 이런 걸 이른바 한달음에 갈겨쓴 원고라고나 할까? 소원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되곤 하지.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는 너를. 넌 매우 독특하게도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하지. 거기에 이제 (모순 같지만) 성숙함 속에도 변치 않을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며 잘 자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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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에게 쓰는 편지](11) 외할머니의 진심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 「빵점엄마 백점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때로는 편안한 친구 같고 때로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두 딸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늘 밝고 유머러스한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지혜와 성숙을 배웠고, 국내 최초로 홍대 앞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빛나는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지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양의 외할머니로, 자녀들에게 그랬듯 소원양 또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보살펴왔다. 「빵점엄마 백점일기 1, 2, 3」 외에도 「가끔은 원시인처럼 살자」,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작고 단단한 행복」 등의 책을 펴냈다.
※그동안 소원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사진 / 조은일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