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1161210_1_lady07_236.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19)“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
15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닌 은산이는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다. 처음 등원했을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며 눈물 바람을 일으켰지만 은산이는 ‘왜 울지?’라는 표정으로 선생님께 안기곤 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선생님, 교실이 모두 바뀌는 상황에서도 처음 며칠만 조금 어색해할 뿐이었다. 동생 은설이 출산으로 엄마랑 떨어져 있던 2주 동안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의연히, 아니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더 신나게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랬던 녀석이 반을 옮긴 지 석 달, 동생을 본 지 두 달이 된 요즘 갑자기 어느 날부터 등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처음 이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반은 끌려 들어가더니 3일째 되는 날 결국엔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아빠랑 가는 날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는가 하면, 나랑 갔을 땐 내 목을 부둥켜안은 채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기 싫어한다고 안 보내기 시작하면 오히려 은산이도, 나도 악순환이 반복될 것 같아 억지로 선생님께 떠넘겼는데 그때부터 통곡이 시작됐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부르짖는데 마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여명의 눈동자’의 채시라, 최재성이 따로 없었다. 교실에 들어가서도 창문으로 다시 고개를 내민 은산이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그날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남편과 나는 시간 날 때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이유들을 대며 추론해봤고, 은산이가 눈치 채지 않는 선에서 모르는 척하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이제 30개월 된 아이가 마음에 있는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결국 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봤다. 그중 하나는 집에서 놀고 싶은 생각에 어린이집이 그냥 가기 싫은 건 아닐까. 마치 학교를 단 하루만이라도 빠지고 싶어 좀 아파봤으면, 하고 기도하던 학생 때의 나처럼 말이다.
싫어! 안 해!
우리 부부는 은산이를 좀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에 보낸 대신 감기라도 걸리면 말끔히 나을 때까지 푹 쉬게 하고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린 나이에 단체생활을 억지로 하게 된 건데 아플 때만큼은 하루 종일 엄마, 아빠랑 살을 부대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내면 그 약한 틈으로 또 다른 감기 균이 침투해 더 긴 시간 약을 먹어야 했기에 한 번 쉴 때 화끈하게 쉬는 걸 택해왔다. 얼마 전에도 감기로 1주일 정도 등원을 못했다. 백일 된 아기와 에너지 넘치는 아들 녀석까지 함께 하루 종일 지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아이의 몸은 회복돼갔지만 내 몸은 거꾸로 녹초가 돼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참으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버텼고 1주일 만에 의사 선생님의 완치 사인을 받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런데 그때부터 등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연휴가 길수록 회사 나가기가 어렵듯이 집에서 쉰 시간이 길어 어린이집 가기가 싫은 걸까? 아침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서던 아이가 어린이집 앞에만 가면 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산아, 왜 그래? 어린이집에 왜 가기 싫은 건데? 천천히 말해봐.”
“싫어! 으앙!”
“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1161210_2_lady07_237.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19)“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
“얼마 전에 내가 참관수업 갔잖아. 그런데 한 반에 스무 명이나 있다 보니 무척 시끄럽더라고. 은산이랑 말하려면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해야 들리고. 혹시 그런 환경이 은산이한테 불편함을 준 건 아닐까?”
아직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 스무 명이나 된다. 물론 선생님들이 계시긴 하지만 정해진 공간 안에 많은 아이들이 함께 있다 보니 북새통이 따로 없다.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건 산만함과 이율배반적이지만 외로움이었다. 아이의 감정과 나의 느낌이 완전히 일치할 순 없겠지만 아이의 불편한 마음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나로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의 산만함이란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일 테고, 외로움은 뭐지 싶을 거다. 군중 속 고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려나. 친구들이 북적대지만 나와 함께 끝까지 놀아주는 친구는 없고, 내가 하는 놀이에 엄마처럼 온전히 보조를 맞춰주고 기다려주는 친구도 없다. 그저 모두 누군가 내게 맞춰주기만을 기다리며 각자 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쏟아지는 빗속을 운전해 가다가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너도 참 외로워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바깥에서 보기엔 비슷하게 생긴 빗방울들이 한데 쏟아져 내리니 외롭진 않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빗방울 하나하나는 결국 낱낱일 뿐이니까. 깨끗한 계곡의 물, 나뭇잎에 맺힌 싱그러운 이슬, 썩어가는 하천의 물, 나의 눈물. 사람의 눈엔 그저 비에 불과하지만 그들도 이렇듯 각자 다른 곳으로부터 와 각자 다른 사연으로 유리창을 때리고 있는 외로운 존재들이란 말이다. 이런 빗방울들처럼 어쩌면 아이들도 각자는 무척이나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짠하다.
난 유독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서도 그랬고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도 연결고리로 종종 떠올리는 단어다. 오빠가 둘이나 있는 집에 막내딸로 태어났으니 무늬만 봤을 땐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지만 난 어릴 적부터 외로움을 잘 탔다. 가족은 하나같이 말했다.
“그래도 네가 제일 많은 혜택을 받았지. 사랑도 받았고. 아빠가 네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줬잖아.”
그러나 정작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어른들은 몰라요’ 동요 가사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부모님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딸이 느지막이 태어났으니 예쁘긴 하셨겠지만 두 분 다 바쁘셔서 내 옆엔 늘 부모님 대신 인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물가물한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약국 아저씨한테 받은 비타민 음료 상자 안에 종이 인형을 넣어 다니거나 집 안에 있는 각종 잡동사니들로 인형의 집을 만들곤 했다. 엄마, 아빠와 놀았던 기억은 아쉽지만 거의 없다. 사진을 보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는 한 것 같은데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오빠들은 자기 친구들과 노느라 나랑은 상대해주지 않았고, 굳이 떠올리자면 못살게 굴고 괴롭힌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을 만났을 때 세대 차보다는 날 늘 보살펴주고 지켜봐준다는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풍족한 돈보다 나에게만 집중된 풍족한 사랑이 내 외로운 마음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엔 더 절실했던 것 같다.
동생아, 동생아
남은 또 하나의 경우는 핏줄이고 뭐고 간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동생의 등장 때문에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는 건 아닐까. 첫째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건 자기 애인이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랑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라는데 난 동생도 없는 데다 내가 은산이가 아니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문으로 시나리오를 써본다.
“엄마 앞에서는 동생한테 못된 짓 안 하지. 엄마 안 보일 때 하지. 눈을 쿡 찌른다든지 꼬집는다든지.”
그래서 몰래 지켜봤다.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은산이가 조용한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 조용하면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에 후다닥 찾아봤다. 이 방 저 방 둘러보다 보니 동생이 누워 있는 침대 위에 올라가 동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1161210_3_lady07_239_a.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19)“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
숨죽여 지켜봤다. 그런데 이 녀석 때리기는커녕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동생의 얼굴을 여기저기 훑어본다. 그러고는 배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가 하면 나긋나긋하게 동생의 이름을 부른다.
사실 은산이도 처음엔 “동생 젖 주지 말고 나만 안아줘. 동생 내려놓아”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몇 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줬더니 이제는 자기 한 번 안아주고 그 다음에 동생 젖 주라고 한다. 그리곤 젖을 다 먹을 때까지 내 주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기다린다. 또 하원할 때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동생은 왔냐면서 카시트를 꼭 확인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때도 우리 가족에 동생을 꼭 포함시킨다. 이런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동생이 무작정 싫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혹시 천사표 어린이로 철저하게 코스프레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갈수록 물음표만 늘어난다. 하긴 30여 년이 흘렀어도 나도 내 마음을 몰라 허우적대는데 하물며 은산이 마음을 어찌 알까 싶다.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엄마도 모르겠어…
정말이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어린이집이 무작정 재미없어서인가, 라는 결론을 내릴라치면 친구들이랑 선생님 보고 싶다고 뜬금포를 날린다. 그러면 동생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가, 하고 무게중심을 그쪽에 맞추면 나 보고 동생을 안아주라든지 동생아, 하고 사랑스럽게 부른다. 학창시절 내내 정답만 고르는 일을 반복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있지도 않은 정답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돌이켜보니 아이 옷을 살 때도 매번 어려웠다. 치수가 2T라고 쓰여 있으면 만 2세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뜻인데 두 살 반쯤 된 아이는 뭘 입혀야 할지 매번 갈등한다. 결국 치수와 상관없이 눈대중으로 아이에게 맞을 만한 옷을 고르게 되는데, 그게 실제 나이보다 어린 아이들 치수라고 쓰여 있으면 괜스레 혼자 속상해한다.
병원에서도 비슷하다. 어느 병원에나 가면 아이들의 체중과 신장을 개월별로 평균치를 내놓은 기준표가 있다. 육아 서적에도 필수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기도 한데, 그걸 보면 내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평균치를 따라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 성장한 이후에는 표준체중과 신장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지만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비만이나 저체중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준표에서 아이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또 고민한다. 항목에 2년 6개월과 3년이 있는데 은산이가 2년 9개월일 땐 어느 쪽에 맞춰야 하지?
그뿐이 아니다. 아이의 발달 정도를 확인시키는 차원에서 육아 서적에는 옹알이를 하고 목을 가누고 밤낮을 가리는 등의 과정을 생후 개월 수와 함께 기입해놓는다. 당연히 머리로는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책에 적힌 대로 크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책에 나온 개월 수에 해당되는 항목을 내 아이가 하지 못하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폐해가, 오지선다 중 하나의 정답을 골라야 하는 객관식 교육을 받은 부작용이 아이 엄마가 돼서도 나타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벗어나고 싶고 얽매이지 말자고 그토록 다짐하면서도 정답 고르기 습관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은산이는 집에선 신나는 얼굴로 어린이집으로 향했지만 어린이집 문 앞에선 아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한 채 억지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이의 이런 행동이 하나의 원인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자꾸만 하나의 답만을 찾으려 헤맨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엄마, 원래 세상엔 정답이 없는 거야.’
“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1161210_4_lady07_239_b.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19)“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 대학 선배이자 열한 살 연상인 시인 조기영과 결혼해 6년 만에 아들 은산이가 태어났고 지난 3월, 둘째 딸 은설이를 만났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가 있다.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고민정 ■사진&장소 협찬 / 서주성, 박소현, 정상진(스튜디오 숲 홍대점, 02-334-9598, www.soopstudio.co.kr) ■의상 협찬 / 트라이 크리켓(02-3485-6052, www.sb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