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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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슬슬 부모님은 더 이상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나이. ‘자아’를 찾기 위해 충돌하고, 무모하게 뛰어들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반항을 부리는 때다. 이런 시한폭탄 같은 아이들이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지나온 인생을 또박또박 대신 써본다. 대구 북중학교 ‘책!톡! 동아리’의 프로젝트, ‘부모님 자서전 쓰기’의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천수현 학생이 쓴 어머니 자서전

숨이 벅차 날아오르다
中 일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없다. 그저 내 앞에서 사진으로 남아 있고 계실뿐 옆에 없다. 검은 옷을 차려입고 옆에 함께인 언니. 장례식이 4일째다. (중략) 4일전 엄마는 내 품에 안겨 계속 객혈하시고 호흡은 점점 짧아져가는데, 119 구급차는 소식이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니 무거워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무거워질수도 있구나 하고,

“아빠, 엄마가 너무 무겁다. 점점 무거워진다.”
“이러다 내가 균형 못잡아서 쓰러질 것 같다.”

아빠는 자신이 엄마를 안으시더니 밖으로 나가 구급차가 오는지 보라고 하셨다. 맨발로 뛰어나갔다.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 급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고 귀를 쫑긋 세워봐도 구급차로 오해할만한 것조차 오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건 구급차를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 뿐이었기에 얼굴은 이미 눈물로 세수중이었다. 아직 쌀쌀한 바람만이 눈물을 조금이나마 말려주려했다. 비록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1 천수현 학생과 엄마. 2 엄마의 젊은 시절. 3 외할머니와 엄마(왼쪽)의 옛 사진.

1 천수현 학생과 엄마. 2 엄마의 젊은 시절. 3 외할머니와 엄마(왼쪽)의 옛 사진.

천수현 학생이 외할머니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듣고 어머니의 시점으로 쓴 글이다. 실제로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 없다던 수현이지만 생생한 상황 묘사와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이 인상적이다. 글을 써보진 않았어도 분명 문학 소녀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소설 읽는 걸 특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가는 성장소설의 대가, 팀 보울러예요. 청소년의 심리나 행동이 주제라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거든요. 이 이야기는 모두 엄마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쓰다 보니 마치 소설처럼 쓰게 되더라고요.”

수현이는 자서전을 쓰면서 엄마의 수많은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 선택한 것이 무척 무겁고 슬픈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합창단과 무용단에서 활동하신 밝고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모든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쓰려 했을 때 외할머니 이야기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더라고요. 엄마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한 번도 뵙지 못해서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한 일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슬퍼져서 울어버렸어요. 제가 우니까 엄마도 참으시던 눈물을 터뜨리시더라고요. 눈물바다가 됐지만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딸에게 있어 엄마는 의지할 수 있는 큰 나무와 같다. 무엇이든 언제나 아낌없이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이 끝난 뒤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스트레스 풀고 오라’며 흔쾌히 서울까지 보내주는 통 큰 엄마다.

“늘 친구 같은 엄마가 돼주려고 노력하세요. 특히 어른이라 할지라도 잘못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시는 것을 보면 오히려 존경스러워요.”

수현이의 어머니, 김성희씨는 딸과 대화를 잘할 수 있는 그녀만의 노하우도 갖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말하기 불편한 것이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이나 불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가졌던 불만을 아이에게 먼저 이야기해봐요. 맞장구도 치고 유도하다 보면 아이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죠.”

막 사춘기에 들어선 딸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하나다. 기분 나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삭이는 점이란다. 그건 본인을 쏙 빼닮았다.

“제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냥 자버리는 편인데 수현이도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소리 내서 울어보라고 해요. 팔공산에 올라가서 맘껏 소리 지르라고 하죠. 먼저 하기 부끄러워하니 제가 먼저 소리를 질러요. 아이가 받는 학업 스트레스를 일일이 대화로 풀 수 없는 노릇이니 이 방법을 쓰고 있어요.”

이토록 딸을 배려하는 멋진 엄마 앞에서 사춘기의 삐걱거림도 눈 녹듯 사라질 것만 같다. 수현이도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잘 읽고 있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워할 딸로 성장해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한다.

이하림 학생이 쓴 어머니 자서전
엄마의 시간 中 일부

“2반아, 1등짜리가 전학 왔대이. 느그들 긴장해야겠다. 전학생아, 니는 66번이다. 저기 맨 끝에 가서 앉아라” 하셨고, 반 학생들은 힐끔 엄마를 쳐다보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자기들이 하던 일을 그냥 계속했다고 한다.

전학 온 첫날, 그렇게 예상하지도 못한 시험을 치며 엄마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시골 학교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엄마에게 말을 걸어주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엄마가 먼저 다가가기에는 대구, 그것도 수성구 여학생들이 너무 까칠해 보였다고 한다. 전학 첫날 치렀던 시험에서 엄마는 부끄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하신다. 한 반 66명 중 28등.

엄마에게는 대구 학생들이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고 한다. 일단 이름부터가 시골 친구들과는 달랐다. 시골 친구들은 윤정이, 소영이 같은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영순이, 갑숙이, 순복이, 길남이 같은 이름을 가졌다. 그런데 대구 학생들은 기은이, 은진이, 민정이, 심지어 파랑이라는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진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물론 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예쁘고 좋은 이름이라고 자부하신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문장 끝을 “~여”로 끝냈는데, 대구 사람들은 “~다”로 끝내서 똑똑하지만 매정하게 들렸다고 한다. 시골 친구들은 “숙제 다 해가여?” 하고 물으면 “어, 다 해가여” 하고 대답하는데, 대구 학생들은 “숙제 다 해가나?” 하면 “그래 다 해간다” 하고 딱딱하게 대답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고 하신다.

학교에서 우유를 받아 먹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귀한 우유를 학교에서 매일 먹다니…. 게다가 초코우유와 딸기우유까지 학교에서 먹을 수 있더라는 것이다. 초코우유를 세 개나 먹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초코우유를 먹으면 얼굴이 까매진다고 들었는데 역시 대구 애구나. 하루에 세 개나 먹으면서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하얗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점심시간의 풍경도 놀라웠다고 한다. 그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시골에서는 김치와 멸치 같은 마른반찬이 주를 이루고 가끔 분홍 소시지를 구워 오면 서로 먹으려고 난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맛살에 달걀을 입혀 구워 온 반찬도 거의 매일 등장하고, 거기에 방울토마토 같은 과일도 조그만 통에 예쁘게 담아 오더라는 것이다.

1 이하림 학생과 엄마. 2 엄마의 어린 시절(빨간 옷). 3 엄마의 초등학교 졸업사진.

1 이하림 학생과 엄마. 2 엄마의 어린 시절(빨간 옷). 3 엄마의 초등학교 졸업사진.

이하림 학생의 어머니, 김자현씨는 현재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자서전의 결말은 시골에서 온 열등감을 떨치고 좋은 성적을 받게 됐다는 해피엔딩이다. 시련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

“하림이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제일 인상적이었나 봐요. 엄마는 항상 1등만 한 줄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시절 전학으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되게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웃음).”

김자현씨는 다른 부모들에 비해 좀 엄한 편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단호한 규칙을 세웠고 잘못했을 때는 호되게 혼내기도 했다. 하림이는 엄마가 집에서도 선생님 같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집에서도 자주 선생님이 되세요. 특히 ‘시간 낭비 하지 마라’, ‘알아서 계획 세워서 해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잘못했을 때 맞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엄마가 저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워킹 맘으로 하림이와 하림이의 동생을 키웠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했다. 바쁜 학교 일 때문에 잘 돌봐주지 못하고 혹여나 잘못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기대치가 고등학생에게 맞춰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에게는 기준이 좀 엄격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크더라고요. 제가 없어도 스스로 식사를 차려먹고 설거지에 음식물 쓰레기까지 치워요. 장가가면 사랑받을 거예요(웃음).”

하림이는 평탄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살갑고 든든한 아들이다. 밥을 먹을 때는 꼭 엄마를 앞에 앉혀두고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두서없이 종알댄다.

“하림이에게 가장 감동받았던 때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은 제 생일이었어요. 그날 마침 고3 자습 감독이라 많이 늦었는데, 하림이가 동생과 함께 저를 그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생일 축하합니다’를 주제로 동영상을 넣은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보여줬어요.”

엄마는 아들이 무엇이 됐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림이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원서로 읽을 만큼 영어를 잘한다. 영어 특기적성을 살려 관련 분야의 꿈을 꾸고 있다.

“제 꿈은 한때 공항 입국심사 요원이었어요.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질문하고는 제 여권에 도장을 꽝! 찍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연습도 하고요. 이제는 일단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요즘은 발음이 재미있어서 발음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하림이는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나서 언젠간 자신의 자서전을 쓸 요량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정예린 학생이 쓴 아버지 자서전
가지 못한 길 中 일부

“안동에서 나와 대구로 와서 신임고등학교에 입학했어. 작은 면 소재지 길안에서 훨씬 넓은 대구로 오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많았어. 나는 그저 흔히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지. 그래서 또다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렇게 1년이 흐르고 2학년이 되니 학교와 선생님 모두가 시시해져 혼자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싶어서 자퇴를 했어.”

나는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것을….
“검정고시가 많이 어렵지는 않았어. 학력고사가 문제였지.”
나는 학력고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학력고사가 뭐예요?”
“지금의 수능이랑 같은 거야. 평소에도 공부를 하긴 했지만 학력고사를 치기 100일 전에 처음 가본 독서실에서 본격적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근데 100일 공부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냐.”

“에이, 100일 전이면 너무 늦게 시작한 거죠.”
내가 생각해도 너무 늦게 시작한 거 같았다.
“학력고사 치기 전에 공부하면서 자퇴한 걸 처음으로 후회했어.”
그때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는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실까.

1 아빠의 젊은 시절. 2 정예린 학생과 아빠.

1 아빠의 젊은 시절. 2 정예린 학생과 아빠.

정예린 학생은 독특하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썼다. 학창 시절 우리네 아버지는 늘 일에 지쳐 피곤하게 잠든 모습, 무뚝뚝한 큰 벽처럼 느껴졌는데,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자서전을 쓰겠다고 한 시도 자체가 참 대단해 보인다. ‘가지 못한 길’이란 제목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예린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지었다.

“만약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지 않으셨다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아닌, 가지 못한 길을 걸어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사셨을 것 같아 지어본 제목이에요.”

예린이는 막연히 아버지는 공부를 잘했다는 말만 듣고 자랐다. 자서전을 쓰면서 알게 된 아버지의 고등학교 자퇴 이야기는 예린이에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좀 놀랐어요. 전교 1등만 하시던 아버지가 자퇴를 결정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했어요. 아버지는 지금 돌이켜보면 10대에서 바라봤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셨다며, 자신의 판단에 후회를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결정이듯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예린이의 롤모델이었다. 특히 부지런함과 책임감은 항상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셔서 수영 가는 걸 보면 정신력도 굉장히 강하신 것 같아요. 저는 피곤하면 그날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든요.”

무엇보다 가정에 웃음꽃이 피는 건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 생각한다. 애교와 농담은 다른 아버지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만의 필살기다. 예린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금의 좋은 환경이 모두 아버지의 땀과 노력 그리고 시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MiniI Interview 지도교사 김미선(대구 북중학교)
“부모님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

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중학생이 쓴 우리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가지 못한 길’

부모님 자서전 쓰기는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이뤄졌나요? 작년 3월에 ‘책!톡! 동아리’를 만들어 4월에는 어떤 내용을 쓸지 생각해보고, 5월에는 부모님을 인터뷰해서 여름방학 때 본격적으로 썼어요. 10월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교정하기도 했으니 장장 1년의 시간이 걸렸네요.

부모님의 자서전을 대필한다는 기획의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들이 부모님의 자서전을 써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도록 하고 싶었어요. 중학생이면 사춘기라 부모님께 반항하는 시기잖아요.

글의 수준이 중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논리정연하고 깔끔합니다. 대필 의혹이 생기는데요 아닌가요? 네. 모두 학생들이 직접 쓴 글들이 맞아요. 제가 주문한 건 시점을 다양하게 써보라는 것이었어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엄마, 아빠가 돼 쓴 아이도 있고, 들은 대로 쓴 아이도 있어요. 참여한 아이들 모두 부모님과 대화도 나누면서 진솔하게 글을 썼기 때문에 뺄 내용도 더할 내용도 없이 진심이 담겨 있었어요.

지도하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요?시간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학원을 가거나 해서 무척 바빠서요. 글을 쓰고 교정하는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요?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님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인터뷰하는 걸 가장 힘들어했어요. 또 아빠의 이야기를 택한 아이들이 친구들이 ‘아빠가 잘 이야기를 안 해주신다’라며 쓰기 힘들어했고요. 아빠들은 자녀를 속으로는 많이 사랑하시지만 표현에 서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어색해하셨거든요.

부모님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미화나 과장 없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주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협조해주실지 예상하셨나요? 아니요. 저도 부모님들이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말씀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저도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통해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나 젊은 시절 포기한 꿈들에 대한 내용을 보니 감동스러웠어요.

부모님 자서전을 쓰고 아이들이 변화한 부분이 있다면요? 예린이의 예를 들자면 평소 아버지가 공부나 건강에 대해 엄격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자서전을 쓰면서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으셔서 고생하셨고, 우수한 성적임에도 학업을 중간에 그만두신 걸 알게 됐다며 앞으로는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평소 불평했던 일들을 부모님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쓰면서 많이 반성하고, 부모님을 더 이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앞으로 또 다른 글쓰기 프로젝트 계획이 있으신가요? 국어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현대 단편소설을 필수적으로 읽으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단편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평을 한 번 쓰게 하고 싶어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제공 / 김미선, 이하림, 정예린, 천수현 ■참고 서적 /「가지 못한 길」(책! 톡! 동아리 저,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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