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http://img.khan.co.kr/lady/201408/20140805104742_1_lady08_244.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0)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
‘우리 아이 얼굴 좀 봐주세요. 얼굴에 오돌토돌한 게 하나둘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다 그래요. 모유만 먹는 아기인데 제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걸까요? 혹시 이게 아토피인가요?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못난 엄마 만나서 고생하는 울 아가. 그저 미안하기만 하네요. 지금도 이 글 쓰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그냥 보통 태열이구만. 목욕 깨끗이 씻겨서 로션만 듬뿍 발라주고 조금만 기다리면 금세 좋아질 텐데 너무 오버하네.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던 중에 만난 아무개 엄마의 글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경험해본 자의 여유라고 해야 하나? 사실 저렇게 걱정하는 엄마의 글은 비단 특정 1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당히 많은 엄마들이 아기 피부에 민감해하고 혹시나 아토피로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런 엄마들을 보며 난 별것도 아닌 걸로 유난을 떤다며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자기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람처럼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내가 코웃음 짓던 그들은, 별것 아닌 일로 유난을 떨었던 2년 전 내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은산이 얼굴이 왜 이러지? 어제는 얼굴만 그러더니 이젠 온몸이 다 오돌토돌하잖아. 어떡해, 나 때문인가?”
은산이와 조리원에서 퇴원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생후 1개월 때쯤으로 기억한다. 처음 키워보는 아기인데다 당시 살던 집은 한겨울 외풍이 워낙 세서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셋이나 키운 친정 엄마가 옆에 있으면 소아과 선생님 안 부러울 거란 생각에 택한 길이기도 했다. 덕분에 은산이는 자신 한 명에 엄마인 나랑 아빠인 남편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어른 4명의 호위를 받으며 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친정집에서 생활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은산이의 피부가 온통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엄마, 얘 왜 이런 거야? 나도 이랬어? 애기들은 보통 이런 거야?”
“그러게, 왜 그러지? 혹시 내가 끓여준 미역국이 잘못된 건 아니니?”
아이 낳고 1년만 지나도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물며 30년이 지난 엄마는 두말해 무엇하랴. 의사 선생님 만큼의 수준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그날부터 친정 엄마는 안절부절못하셨다. 딸 살찔까 봐 쇠고기 대신 굴과 조개로 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 혹시 그 해산물이 아기한테 안 맞은 건 아닌가 하시며 들통으로 끓여놓은 굴 미역국은 다른 식구들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산모용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순수 미역국으로 다시 한 통을 끓이셨다. 혹시 집 안에 있는 먼지 때문인가 하며 청소를 열심히 하셨고, 보일러로 인해 공기가 건조해진 건가 하며 숯을 한 상자 사오시기도 했다. 그것도 숯가마에서 직접 구운 진짜배기 참숯을 구하기 위해 산골짜기까지 다녀오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달맞이꽃 기름이 좋다는 얘기를 들으시곤 마침 작년에 직접 재배해 짜놓은 기름이 한 병 있다며 그걸 아기 온몸에 발라보라고 하셨다. 고소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기름을 발라 코는 호사를 누렸지만 이런 민간요법을 신생아에게 적용해도 되는 건지 불안해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좋다며 해보라고 하시는데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워 발라봤지만 역시 큰 차도는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걱정, 근심에다 미안함까지 가득한 표정으로 나와 아기를 바라보셨다.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http://img.khan.co.kr/lady/201408/20140805104742_2_lady08_245.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0)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리실 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 산후조리 시켜주겠다고 집으로 데려오긴 했는데 아기 피부가 보드랍기는커녕 수세미처럼 거칠어졌으니 모든 게 다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리고 중간중간 갑자기 젖 양이 줄어들었을 땐 돼지 족을 끓여 그 물을 마시면 좋다면서 경동시장까지 가서 생족을 사오시기도 했다. 그때도 역시 당신이 산모 음식을 제대로 못 챙겨줘서 그런 것 아니냐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그래, 그땐 그랬지
친정 엄마가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실 무렵 나와 남편은 눈에 불을 켜고 웹서핑을 시작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어떤 방법을 써야 하나, 이런 경우가 많은가. 우선 은산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아기들이 많았다. 더불어 그에 대한 엄마들의 경험담도 넘쳐났다. 애가 아픈데 어쩌면 저렇게 꼼꼼하게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을 정신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런 엄마들의 수고 덕분에 나 같은 초보 엄마들이 큰 힘을 얻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좋아진다는 혹은 좋아졌다는 10개의 글보다는 부정적인 1개의 글이 더 신뢰가 가는 이유는 뭘까. 결국 아토피로 발전한 아이 엄마의 글을 더 열심히 보게 됐고 내 머릿속은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토피에 걸리면 피부가 거칠어지는 건 둘째치고 아기가 많이 예민해진다던데. 부모도 밤새 잠도 못 자고 아이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해서 같이 피곤한 건 물론이고. 아토피가 유전인가? 애 아빠가 어렸을 때 피부병이 있었다던데. 내가 임신했을 때 빵을 많이 먹긴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럼 앞으로 음식은 다 유기농으로 먹어야 하나? 빵도 끊고? 빵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데…. 그래도 아기가 아픈 것보다는 내가 참는 게 낫겠지.”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토피라고 단정을 지었던 것 같다. 그러곤 아이 아토피로 고생했다던 언니한테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게다가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삼천기도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내가 아는 모든 신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백일기도를 드리고 삼천 배를 하는 이유를 알겠다.
어쨌든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본 뒤 마지막 방법으로 병원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다. 인터넷이네, 민간요법이네 할 것 없이 일단 병원부터 갔으면 괜한 고생 안 해도 되는데, 병원 안 가고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많은 고생으로 이어진 셈이다. 잔뜩 긴장한 우리 부부는 병원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됐다.
“갓난아기네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아기 온몸에 이런 오돌토돌한 게 올라와서요. 처음엔 얼굴에만 그러더니 지금은 온몸이 다 그래요. 모유 수유 중인데 제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건가요? 이게 바로 아토피라는 건가요?”
“어디 보자. 음… 이건 태열인 것 같네요. 일단 로션을 듬뿍 발라주세요.”
“네? 피부에 뭐가 났는데 로션을 발라요? 그럼 더 덧나는 거 아닌가요?”
신생아 때는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 그때까지도 물로 목욕만 시키고 로션을 발라주지 않았다. 아기 몸에 트러블이 나면서부터는 내 얼굴에 뾰루지 났을 때처럼 더더욱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계속 양수라는 물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 거라 피부가 많이 건조해요. 그래서 신생아 때 이런 경우가 많아요. 대개는 보습만 잘해줘도 좋아져요. 그런데 지금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아토피로 번질 수도 있으니 신경 써주세요.”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그저 로션 하나 사서 바르라는 처방이었다. 내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난 그날부터 바로 보습력이 좋다는 크림을 하나 사 수시로 발라주었다. 목욕하고 나서는 물론이고 좀 건조해졌다 싶으면 가제수건으로 살짝 이물질만 닦아주고 덧발랐다. 크림을 바르고 바로 다음날부터 피부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그야말로 아기 같은 피부가 됐다. 더불어 우리 부부와 친정 엄마의 마음도 괜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편안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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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0)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
둘째 설이가 태어나고 역시나 조리원에서 퇴원한 뒤부터 피부에 오돌토돌한 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직 목을 가누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 목의 피부가 항상 접혀 있다 보니 목에서 자꾸 진물이 났다. 아마 초보 엄마였다면 당연히 흥분했을 사안이다.
“은산이 때도 이랬잖아. 로션 잘 발라주고, 목은 당분간 계속 이럴 테니 자주 씻기고 잘 말려주자.”
첫째 은산이 때와는 다르게 친정 엄마도 무척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설이 목에서 진물이 나네? 괜찮아. 아기 때는 다 이래.”
아이가 고열이어도 이젠 침착하게 대처한다. 예전에는 38℃만 돼도 잔뜩 이마를 찌푸리며 밤새 안절부절못했는데 지금은 39℃가 넘어가도 응급실로 뛰어가진 않는다. 몇 도가 됐든 일단 아기가 축 처지지 않는다면 해열제를 먹이거나 물수건으로 계속 닦아주며 체온 확인을 한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병원을 간다. 열이 떨어졌어도 고열이 난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확인 차원에서라도 꼭 거르지 않는다.
물론 나보다 더 아이를 많이 키운 엄마들 눈엔 지금의 내 모습도 귀여워 보일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생이 유치원생에게 너도 학교 다녀보면 알 거라고 얘기하는 모습일 테다.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꼴이다. 언젠가 중학생 아이를 둔 엄마가 은산이에 대한 이러저러한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지금이 편한 거야. 아기 때는 아픈 것만 조심하면 되고 설령 아파도 먹는 걸 엄마가 통제라도 할 수 있지. 커봐. 통제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건강까지 신경 써야 하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야. 학교 공부에 친구들 문제까지, 차라리 어렸을 때 병원 뛰어다니는 게 낫다니까.”
이제 겨우 만 2세.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앞으로 또 몇 번쯤은 호들갑을 떨 테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첫째에겐 항상 초보 엄마다. 아이가 아무리 커도, 심지어 어른이 된다 해도 엄마들에겐 다 처음 겪는 일들일 테니 말이다. 백일의 기적도, 돌잔치를 치러내는 일도, 기저귀를 떼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학부모가 되는 일,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의 당혹감, 이성친구와 교제를 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서운함 등 모두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둘째에겐 베테랑 엄마지만 첫째에겐 언제나 초보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첫째 때는 그래도 백일 전까지는 꽤 힘들었던지 백일의 기적을 무척 애타게 기다렸는데 둘째 때는 백일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렸다. 지금도 둘째 설이는 그저 먹고 자고 웃어주고 이 일들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알아서 저절로 커가는 느낌이다. 워낙 순둥이여서 그런 건지, 베테랑 엄마가 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애를 넷, 다섯씩 낳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조금 전에도 백일 된 아기 엄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는 원래 다 그래. 호들갑은(웃음).”
Profile 고민정은 …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 대학 선배이자 열한 살 연상인 시인 조기영과 결혼해 6년 만에 아들 은산이가 태어났고 지난 3월, 둘째 딸 은설이를 만났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가 있다.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고민정 ■사진&장소 협찬 / 서주성, 박소현, 정상진(스튜디오 숲 홍대점, 02-334-9598, www.soopstudi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