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http://img.khan.co.kr/lady/201409/20140915150128_1_ko_babay1.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1)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
산이는 엄마,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이 어린이집 가자고 어르다 보면 이미 등원 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평소보다 일찌감치 눈을 뜨더니 엄마, 아빠까지 다 깨웠고, 아침을 먹었는데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것저것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문득 이러다간 집에서 계속 놀겠다며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시간 상관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어린이집에 보냈다.
“산이 오늘 일찍 왔네?”
평소 은산이가 천사 같다며 잘 따르던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날 역시 그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런데 은산이가 대뜸 엄마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러는 것이다.
“선생님 보려고 일찍 왔잖아요.”
그 옛날 남편도 내게 자주 들려주지 않던 말을 녀석이 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사람들한테 하는 걸 보면 참 다정다감하다. 하루가 다 지나고 오후가 돼 하원시키러 갔더니 이번엔 복도에서 선생님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은산아 너, 여자 여럿 울리겠다. 아무한테나 하면 안 돼.”
녀석이 선생님들에게 윙크를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애굣덩어리인 줄 알겠다. 산이는 옹알이를 하던 갓난아이 때부터 웃음을 잘 보여주는 아기가 아니었다. 동생 설이가 태어나 엄마, 아빠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는 걸 보고 나서야 산이가 마냥 잘 웃어주는 아기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산이만 키웠을 때는 원래 아기 웃기는 게 무척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시크한 녀석인데 자기 맘에 쏙 드는 사람이 있거나 기분이 무척 좋을 때는 저런 애교를 떤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쪽 눈 윙크가 안 돼 양쪽 눈을 다 질끈 감아야 했는데 이젠 완벽히 한쪽 눈만 찡긋하는 게 되던 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 오전에 산책을 하는데 은산이가 글쎄 민들레꽃을 한 송이 딱 꺾더니 저한테 주는 거 있죠?”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남편은 장미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워주며 나의 성년의 날을 축하해줬다. 탐스러운 장미꽃 스무 송이로 만든 화관이었는데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영화 속 여주인공이 부럽지 않았다. 만들어진 화관을 받았어도 좋았을 텐데 한 송이 한 송이 직접 엮은 화관이라니…. 그날 밤 그 화관을 조심스럽게 집으로 가져와 내 방에 걸어두었다. 그 후로도 화관은 먼지 쌓인다고 버리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몇 년 동안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화관 말고도 내 방에 걸려 있던 게 또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하얀 조개껍데기로 엮은 목걸이였다. 인사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메이드 인 조기영’인 핸드메이드 목걸이.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던 때 바람 쐬러 우리는 인천에서 가까운 용유도에 갔다.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 새끼손톱만 한 소라껍데기, 바닷물에 바스락거리는 모래알갱이까지 내 감성을 자극하던 날이었다.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 걸까? 두근두근대며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어 애가 타던 때 그 사람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노끈에 주위에 하얗게 널려 있는 조개껍데기들을 엮어 내 목에 걸어주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었다면 아마 그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보지도 않았으려니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난 유난히도 이성에게 받은 물건에 민감하다. 나름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쓸 법도 한데 왠지 몸에 지니고 있으면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준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아 아예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 약간 오버인 듯싶지만 어쨌든 내 몸에 밴 습성 중 하나다. 이런 나인데도 그때 난 마치 값비싼 목걸이인 것처럼 조금이라도 부서질까 봐 조심스럽게 집으로 가져와 내 방 한쪽에 걸어두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때에도 내게 최선을 다했고, 내게 최상의 존재였다. 방 안 가득 촛불을 밝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을 땐 노트 한 권을 그리움과 사랑의 편지로 가득 채워 보내주기도 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값비싼 명품은 한 번도 선물하지 않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선물들이었으니까.
이런 남편의 행동들로 미뤄보건대 산이가 선생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건 어찌 보면 참 당연한 결과다.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다정다감함은 세월이 흘러도, 세대가 바뀌어도 대물림되며 변함없이 이어져간다. 단, 그 사랑을 받아온 나의 입장만 달라졌을 뿐. 남편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을 땐 호사를 누린다며 좋아했는데 이젠 거꾸로 그런 대접을 받는 다른 여자를 봐야 하는 입장이 되다니…. 사뭇 시어머니께서도 지금 나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살짝 든다.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http://img.khan.co.kr/lady/201409/20140915150128_2_ko_babay2.jpg)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1)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다양한 종류의 ‘작업’을 걸고 받고 했을 것이다. 꼬마 시절 옆집 오빠에게 받은 ‘작업’부터 결혼에 골인하기 전까지 받은 ‘작업’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 쯤은 훌쩍 지나가지 않을까?
스물한 살 때 열한 살 연상의 남자에게 푹 빠져 꽃 같은 20대를 온통 한 남자에게 바쳤으니 다양한 연애 경험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도 한때는 이러저러한 ‘작업’이란 걸 받아본 ‘여자’였다. 정확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다. 같이 몰려다녔던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에도 가끔 나이트클럽을 들락날락거렸다. 그에 비해 좀 고지식했던 나는 나이트클럽은 스무 살이 되면 가겠다고 선포하고 친구들의 모임에 빠지곤 했다. 아마 그때 같이 몰려다녔더라면 영화 ‘써니’에서처럼 친구들과 진한 추억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소심한 내가 어디 가겠나. 시간을 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던 1월 1일, 드디어 나이트클럽에 갔다. 통조림 과일과 우유, 얼음이 적당히 섞인 안주에 병맥주를 마시며 춤 잘 추던 친구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가끔 웨이터의 강제 연행에 이끌려 처음 보는 남자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지만 할 말도 딱히 없고 쑥스럽기도 해 1분도 채 안 돼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난 음악에 몸을 제대로 실어보지도 못한 채 귀를 때리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 그리고 내가 봐도 예뻤던 친구들의 몸짓을 보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와 함께.
춤이라고 할 순 없고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몸을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스케치북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 모습이 스케치돼 있었다. 당시엔 휴대전화 대신 대부분 삐삐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삐삐 번호조차 없이 그저 내 그림과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를 그리며’와 같은 짧은 글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괜찮은 ‘작업’이고 장면인데 난 받으면 안 될 그림을 받은 사람처럼 그 그림을 경계했다. 그마저도 난 나이트클럽에 그냥 두고 오려는 걸 친구들이 기념으로라도 가져가라고 해서 억지로 들고 나왔고, 결국 집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액자까지 할 건 아니지만 어디 책꽂이 귀퉁이에라도 꽂아두었더라면 애 둘 낳고 아줌마가 된 지금 꺼내 보면서 나의 ‘한때’를 흐뭇하게 회상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렇듯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작업을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애장품으로 작업을 걸어온 이도 있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난 햇병아리처럼 삐약삐약대며 교정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다른 단과대는 물론 동아리 중에서 조금이라도 끈이 있는 곳이라면 내 취향과 관계없이 고개를 들이밀곤 했다. 그중 어느 동아리에 있던 1년 선배였다. 스포츠를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모습과 참 잘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속은 은근 여리고 단순한 만큼 뒤끝이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 동아리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내게 고백을 해오는 것이었다.
“민정아, 이거 받아줄래?”
그 선배가 내게 건넨 건 축구 유니폼과 옥반지였다.
“이 옷은 내가 아끼는 유니폼이고 이 반지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거야.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주라고 그러셨거든. 물론 네가 지금 당장 내 마음을 안 받아줄 수도 있겠지. 나도 곧 군대 가야 하고. 그냥 네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마음이 있다면 그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내 마음을 제대하고 나서 털어놔도 되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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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1)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
이랬던 내게 지금의 남편은 미지근하지도 뜨겁지도 않게 서서히 다가왔고 결국 한 여자의 20대를 그리고 인생 전체를 차지했다. 멋진 글씨와 글솜씨라는 재능으로 1차 작업을 했고 적당히 완급 조절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나름 많은 나이 때문에 천천히 다가왔던 건데 난 그 조심스러움이 날 소중히 여겨주는 것 같아 좋았다. 날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지도 않았던 그는 의도치 않게 ‘밀당’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애장품을 줄 때도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물건들이 아닌 정말 자신의 손때가 묻은 것들을 건네주었다. 자신이 재미있게 봤던 책이나 직접 써내려간 엽서 한 장 등등. 때론 영화 시작을 기다리면서 티켓에 시를 한 편 써주기도 했는데 그 티켓은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살며시 내 어깨에 올라온 손은 내 가슴을 떨리게 했고, 날 안아주던 품은 사랑의 감정 그 이상을 느끼게 했다.
누구를 닮았을까?
우리 딸 설이는 어떤 작업을 받게 될까?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함께하자고 말할까? 아니 그 이전에 어떤 남자친구들을 만날까? 아들 산이는 어떤 여자에게 매력을 느낄까? 엄마인 날 닮은 사람을 좋아할까, 반대로 나에게 없는 걸 가진 여자를 좋아할까?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작업을 걸까? 첫 데이트를 기다리는 심정만큼이나 궁금하고 기대된다.
‘은산이가 날 잘 따르는 걸 보면 날 닮은 여자를 만나지 않을까? 아니지, 엄마만 한 여자는 없다고 그러는 건 아닐까?’
혼자 상상하며 킥킥대고 있는데 거실에서 은산이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내 마음에 사랑이….”
profile 고민정은 …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 대학 선배이자 열한 살 연상인 시인 조기영과 결혼해 6년 만에 아들 은산이가 태어났고 지난 3월, 둘째 딸 은설이를 만났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가 있다.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고민정 ■사진&장소 협찬 / 서주성, 박소현, 정상진(스튜디오 숲 홍대점, 02-334-9598, www.soopstudio.co.kr) ■의상 협찬 / 게스 키즈(02-516-5611),트라이 크리켓(02-3485-6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