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만족이란 바로 이런 것!
아이가 자라 제 힘으로 연필이나 볼펜을 들기 시작하면 엄마는 긴장한다. 벽에 아이들의 낙서가 시작되는 순간, 큰맘 먹고 연출한 실크 벽지의 깔끔한 자태와는 안녕을 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야, 너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라!’ 하며 집 안을 낙서 천지로 만들어도 눈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 엄마들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는 소심한 엄마를 둔 탓에 기껏해야 4절 크기 스케치북에 상상력을 펼치고 있으니 슬슬 아이용 칠판이나 보드를 장만할까 하던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독일 스타빌로사의 색연필 ‘우디 3 in 1’을 알게 됐다. 욕실 벽에 쓸 수 있다고 해 ‘욕실 색연필’로 불리기도 한단다. 미끈한 재질에도 잘 써지고 수성이라 물로 말끔히 지워진다고 하니 베란다 유리창을 칠판 삼아 그리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서가 시들해질 쯤 지워보기로 했다. 그냥 지우는 건 재미가 없으니 수성 색연필의 특수성을 이용해 분무기로 물을 뿌려보았다. 낙서는 금세 물에 녹아 물감처럼 흘러내렸다. 아이는 색이 흘러내리는 것을 신기해하며 손으로 색을 문대기 시작했다. 언젠가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촉감을 통한 두뇌 자극이 된다는 교육 놀이법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이는 책에 나온 두뇌 자극 놀이를 혼자 하고 있었다. 결국 손바닥이며 옷이며 바닥이며 물감 놀이터가 되고 말았지만, 아이의 상상력과 두뇌 개발에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면 엄마는 그 어떤 수고를 마다할까. 어쨌든 수성이니 세탁하면 싹 지워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안도감을 준다.
이번에는 낙서 정도로 끝이 났지만 엄마와 함께 할 때 ‘우디’의 활용도는 더욱 높아 보인다. 낮이면 푸른 하늘을 칠판 삼아 알록달록 1, 2, 3, 4를 쓰며 숫자를 가르쳐주고, 밤이 되면 별빛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며 동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스스로 쓴 것을 깨끗이 지우도록 해 생활 습관도 일면 길러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왜인지 쓰는 것보다 물휴지로 낙서를 지우는 편에 더 흥미를 갖고 열중하긴 했다.
평소 내가 스타빌로의 펜을 즐겨 쓰던 터라 어느 정도의 신뢰감을 갖고 우디 3 in 1을 접했다.
아이의 시각과 촉각을 모두 자극할 수 있는, 쓰면 쓸수록 흥미로운 색연필이다. 무엇보다 발색이 뛰어나서 놀랐다. 반대로 쉽게 바닥이나 여타 물건에 묻을 수 있어 아이가 갖고 논 흔적이 많이 남는 편이다. 유리창에는 시판 물휴지보다는 휴지에 순수하게 물을 묻혀 닦는 것이 더 깨끗이 닦인다. 기존의 색연필보다 심이 무른 이유로 30℃ 이상의 직사광선에 놓아두면 녹을 수도 있으니 주의 요망!
■글·사진 / 이유진 기자 ■모델 / 서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