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입을 옷을 직접 만드는 기쁨
패션 디자이너들은 1년을 앞서 산다. 계절을 앞서서 미리 유행을 예측하고 대중에게 패션 트렌드를 제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난히 바쁘고 야근도 많다. 아동복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한 벌의 아동복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과정을 거친다. 디자이너는 시장조사, 자료조사, 트렌드 분석 등을 거쳐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소재, 패턴 등 각 전담 부서들과 수차례 협의를 통해 샘플을 만들고 품평, 제작 등 세부 단계를 거쳐 비로소 아동복 한 벌이 탄생할 때까지 거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제품이 출시된 이후에도 디자이너의 역할이 이어진다. 매장 판매원들에게 시즌 패션 정보를 교육하고, 매장에 주기적으로 들러 디스플레이 등을 점검한다. 이런 디자인팀을 이끄는 이 팀장은 디자인 방향의 맥을 잡아 팀원들을 지휘하고, 다른 부서들과 협의를 하며 매 순간마다 판단하는 중요한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는 2003년 알로봇 브랜드가 탄생할 때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다. 엄마들에게 인기 있는 아동복 브랜드로 우뚝 서기까지 남모르게 들인 노력과 정성이 상당하다. 밥 먹듯 하는 야근, 잦은 해외 출장에 업무 강도도 높은 편이지만 “아동복 디자이너는 내 천직이다”라고 할 만큼 일에 대한 애착도 크다. 주변에서는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들지 않으냐고 묻지만 이 팀장은 아이 엄마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자랑한다.
여아 옷을 만들 때는 딸 태린이를, 남아 옷을 만들 때는 아들 지후를 떠올리면서 디자인한다는 이 팀장. 일하는 엄마라서 늘 곁에 있어줄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아이들을 생각하면 일터에서도 힘이 난다.
엄마의 감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디자이너의 딸이라서 그런 걸까. 태린이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옷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으면 스타일리스트를 자청해 입을 옷을 척척 골라주는데, 디자이너 엄마가 보기에도 감각이 놀라울 정도라고.
“어쩌다 코디네이션이 좀 ‘삐끗’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잔소리를 해요. ‘그 색은 이 색이랑 안 어울려요’, ‘그 바지에는 이 블라우스를 입는 게 예뻐요’라면서 아주 매섭게 검사하는데 그 소리가 제법 참고할 만해서 놀랄 때가 많아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마다 그러곤 했는데 태린이도 그러니까 과연 내 딸이로구나 싶죠(웃음).”
태린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재능이 또 있다. 바로 그림 실력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색상을 과감하게 잘 쓰고 표현력도 섬세한 편이다. 디자인 감각을 타고난 아이에게 진짜 디자이너가 일하는 공간은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엄마의 사무실에서 옷을 만들 때 쓰는 패션북과 컬러 차트 등을 보자 태린이는 눈을 반짝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여러 가지 옷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촬영하는 내내 만지작만지작거리더니 끝내 엄마에게 “이 옷 갖고 싶어”라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훗날 엄마처럼, 아니 엄마보다 더 뛰어난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팀장은 태린이가 디자이너가 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의 경우를 보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아동복 디자이너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일을 재미있어 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것이 언제나 잘 풀리는 게 아니고 힘들 때도 있는 법인데, 이왕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고 인생도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아이 옷 고르기가 어렵다고요?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전문가이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이 팀장은 평소에도 아이 옷 입히기에 관한 소소한 고민들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해결사로 통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소 어디에서 아이 옷을 사느냐고. 예상했던 대로 자신이 디자인하고 있는 알로봇의 옷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편이라고 했다. 또 시장조사를 할 때 눈에 띄는 옷을 사거나, 홍콩 등 해외 출장이 많아 해외 브랜드 제품을 국내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도 한다. 요즘 그녀의 눈에 띄는 브랜드는 모델 미란다 커의 아들이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브랜드 누누누와 스페인 브랜드 보보쇼즈. 감각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중성적인 느낌이 매력적이라고. 이 팀장도 자주 빨아 입히는 티셔츠류는 저렴한 제품을 구입한다. 시장조사를 위해 자주 나가는 남대문시장이 주 쇼핑 장소인데, 계절이 끝날 무렵을 노리면 5천원에 티셔츠 두 벌은 너끈히 살 수 있다.
태린이의 옷을 고를 때 유념하는 점이 있다면 여자아이라고 해서 너무 여성스러운 스타일만 입히지 않는 것이다. 옷뿐만 아니라 장난감을 사줄 때도 마찬가지다. 인형만 사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로봇과 자동차도 사준다.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움만 강조하면 고정된 성 역할에 갇힐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는, 과연 디자이너다운 생각이다.
또 아이들 옷을 살 때 디자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재다. 일단 신축성부터 살핀다. 아이들은 종일 뛰고 구르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정도로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스판덱스 소재가 함유된 옷을 선택하는 편이다. 특히 바지는 신축성이 좋고 허리에 고무 밴드 처리가 된 것을 택한다. 여름에는 에어로 쿨 소재도 좋다. 땀이 나도 빨리 마르고 쾌적하게 입을 수 있어서다. 겨울에는 보온성을 고려해 이중원단이나 안감이 기모로 처리된 것을 입힌다. 또 유해성이 없는 무독성 원단인지 살피고, 통풍이 잘 안 되는 인조가죽이나 보풀이 많이 나는 옷감은 피한다.
이 팀장이 꼽는 아동복 디자이너의 첫 번째 요건은 마음가짐부터 아이처럼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입는 옷을 만드는 직업이니만큼 힘들 때도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그래서일까. 그녀가 디자인한 옷은 왠지 모르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환해지고 유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훗날 내 아이에게도 주저 없이 입혀주고 싶을 만큼.
“엄마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해요!”
“저는 엄마가 만든 옷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유치원 친구들한테 자랑도 많이 했어요. 우리 엄마는 디자이너예요. 저같이 어린이들이 입는 옷을 만드세요. 엄마 회사에는 처음 와봤는데 예쁜 옷도 많고 신기한 그림책들도 많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또 엄마랑 같이 그림도 그려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엄마가 바쁘셔서 매일 같이 못 노는 것은 아쉽지만 내가 어른이 됐을 때도 내 옷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베테랑 아동복 디자이너 이은옥 팀장이 일러주는
우리 아이 옷 선택하는 요령
1 포인트가 없는 스타일링은 피하자
옷을 잘 입는 사람은 ‘강약 조절’을 잘한다. 가끔 상의부터 하의, 심지어 신발까지 비슷한 컬러로 맞춰 입은 아이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핑크색 스웨터에 핑크색 레이스 치마, 핑크색 신발을 신고 머리에는 핑크색 리본까지 달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답답해 보이겠는가. 아이가 핑크색만 고집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럴 때는 엄마가 센스를 조금 발휘해서 민트색 계열의 스카프나 신발을 매치하면 한층 보기 좋은 옷차림이 된다.
2 과하지 않은 디자인을 선택하자
여자아이들은 한 번씩 공주풍 스타일에 열광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발레리나풍의 치마에 프릴이 많이 달린 상의를 받쳐 입고 레이스 양말까지 신었다면 이건 공주 코스프레나 다름없다. 뭐든지 과한 것은 보기 좋지 않은 법. 공주풍 치마를 포기할 수 없다면 조금 담백하게 캐주얼한 점퍼를 매치해 디자인적 요소가 지나치게 과해지는 것을 피한다.
3 상·하의 모두 패턴 있는 옷은 피하자
상·하의 모두 패턴이 두드러지는 옷을 선택하면 어지러워 보인다. 예를 들어 별무늬가 유행해서 별무늬 점퍼를 장만해 입혔다면 하의는 패턴이 없는 무지나 모노톤 계열로 선택하자. 상의의 별무늬도 살려주면서 옷차림에 리듬감이 생겨 실패할 확률이 적다.
4 스타일링이 어렵다면 오늘 갈 장소가 어딘지 떠올려보자
스타일링을 가장 쉽게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오늘 아이와 어디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놀이동산에 갈 때는 활동성이 좋으면서 경쾌해 보이는 옷이 알맞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움직이기 편한 배기 스타일의 저지 바지를 매치하고 발랄해 보이는 스냅백을 씌우면 귀여우면서도 놀기 편한 옷차림이 완성된다. 단풍놀이를 간다면 단풍 색깔을 스타일링에 활용하는 것도 감각 있는 방법. 겨자색이나 붉은색 계열의 하의를 입히고 상의는 흰색, 검은색 등의 맨투맨 티셔츠를 매치하는 식이다. 단풍의 색상과 옷 색상을 맞추면 사진을 찍었을 때도 더 예쁘게 나온다. 캠핑을 갈 때는 활동적인 분위기를 주는 옷이 어울린다. 목까지 잠그는 칼라 티셔츠나 레이스가 과도한 스타일보다는 카키색 야상 점퍼와 스판덱스 소재 데님을 선택해 아이가 캠핑을 즐기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연출해보자.
5 액세서리를 적극 활용하자
옷을 잘 스타일링할 자신이 없다면 옷은 기본 티셔츠나 데님 등을 이용해 무난한 스타일로 입히되, 액세서리 한두 개를 해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유행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일링이 어려운 엄마들에게 유행 아이템은 손쉽게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확실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올가을에는 미키마우스, 배트맨 같은 캐릭터를 활용한 아이템이 유행할 전망이다. 유행 아이템을 매칭하거나 스냅백 등의 액세서리를 적절히 섞어주면 똑같은 티셔츠를 입어도 좀 더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기존에 늘 입던 옷들이 지겨워졌을 때도 유행 액세서리를 더하면 새로운 패션처럼 보여 기분 전환도 된다.
6 부모와 아이가 커플 룩처럼 연출해보자
아이와 외출할 때 때로는 부모와 커플 룩처럼 연출해보는 것도 좋다. 이 경우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부모와 일체감을 느껴서 더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효과가 있다. 옷을 맞춰 입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함께 즐거워질 수 있다니, 한 번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가족 모두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유니섹스 아이템을 선택하면 스타일링이 쉽다.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맞춰 입거나 컬러를 비슷하게 맞춰도 좋다.
7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자
지금까지 일러준 것들을 아이가 모두 거부하고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 의견을 들어주는 것도 좋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은 특정 시기에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내 딸도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공주풍 옷으로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때가 있어서 못마땅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주 옷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부모가 더 세련되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그 시기에 원하는 부분을 묵살하지 말고 잘 타협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인 아동복 브랜드 알로봇의 디자인 팀장이자, 일곱 살 딸, 세 살 아들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열혈 워킹 맘이다. 의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아동복 디자이너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블루독, 밍크뮤 등으로 유명한 서양네트웍스에 입사해 알로봇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아이들이 입는 옷이기 때문에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취재 협조 / 알로봇(R.ROB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