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유치원이 아니다
4~7세 연령의 아이들은 우뇌나 좌뇌 등 뇌의 특정 부분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를 발달시켜야 하는 시기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들에게 전인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일반 유치원에서 행하는 통합 누리과정은 이런 점을 고려해 각계 교육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교육법이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슬기 연구원은 요즘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영어유치원이 전인교육 커리큘럼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저희가 실제로 이런 영어학원들의 커리큘럼을 조사해본 결과 ‘영어 읽기, 쓰기’에 관련된 교과목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외에 수학, 과학, 체육도 영어로 가르치고 있지만 그 비율이 30%밖에 되지 않아 교육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더군다나 연령이 올라갈수록 스펠링이나 문법 수업 과정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들은 늘 ‘우리는 놀이로 쉽게 배우고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라고 강조하지만 외국어 공부에 주입식 교육이 없을 수 있나요?”
그녀가 인터뷰한 전직 영어유치원 교사에 의하면 학부모 상담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우리 아이 영어 실력이 얼마나 올랐나요?”라고 한다.
“그 교사는 일단 단시간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줘야 해 점점 주입식 교육으로 흘러가게 된다고 털어놓았어요. 그러니 인성이나 전인보다는 영어가 제일 큰 목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학습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지요.”
커리큘럼의 문제뿐만 아니라 시설 면에서도 영어유치원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법적으로는 학원으로 등록돼 있어 교사의 자질이나 시설, 급식 등에 대한 규정이나 제재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면?
그럼에도 아이의 영어 실력 향상이 지상 최대의 목표라 영어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면 해당 원의 교사 자질, 시설, 급식을 알아서 잘 따져봐야겠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영어유치원을 일반 유치원보다 운영자금도 많고 시설도 좋은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유치원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별로 없다. 유치원은 원아 1명당 5㎡의 공간과 별도의 놀이터와 체육관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영어학원의 경우 어학원 규정에 따라 1백50㎡(서울시 조례)의 공간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또 교사 채용도 유아교육 관련 정규 자격증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원장 재량이다.
또 일반 유치원들은 정기적으로 유아교육법에 의해 급식 위생 점검을 하지만 영어 학원은 그 어떤 점검도 받지 않으니,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시설의 급식 위생 상태를 잘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영어유치원, 조기 영어 얼마나 효과 있을까?
전문가들마다 학설은 매번 달라지지만 요즘 인정받고 있는 주장은 ‘영어 조기교육 굳이 필요 없다’이다.
EBS에서 발간한 「언어 발달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보면 “언어는 시작 시기보다 노출 환경과 빈도가 중요해서 아무리 어린 시절에 시작해도 꾸준한 노출이나 언어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발전할 수 없다”라고 언급돼 있다. 언어 발달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초등학교 2, 3학년에 시작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효과적인 습득이 가능하다.
“현직 영어 교사 토론회를 진행하다 보면 다들 하시는 말씀이 영어유치원에 다녔던 아이들이나 초2, 3학년부터 시작한 아이들이나 결국 실력은 같아진다고 해요. 같은 단어를 외워도 인지 발달 정도의 차이로 어린 나이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거죠. 결국 이중 부담이 될 수 있고, 그 연령대에 맞는 교육이 가장 빠른 길인 거죠.”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영어에만 치중하다 유아기에 발달해야 할 요소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희가 2009년 초등학교 1학년 적응도에 대해 조사했는데 적응을 가장 잘하는 아이들이 병설유치원 졸업생들이었고, 영어학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가장 낮게 나왔어요. 서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환경이라서 집단생활이나 한국식 생활에 적응 훈련을 받지 못한 거죠. 유치원 누리과정은 초등학교 1학년과 자연스럽게 연계되는데 영어학원은 그렇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언어 창의력 부분은 어떨까? 동덕여대 육아정책연구소 우남희 교수의 연구물에 의하면 언어 창의력 1위는 학습보다 자연 관찰이나 생태에 특화된 교육을 하는 공동체 육아를 경험한 어린이들이 가장 높았고, 영어학원 출신 아이들이 가장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막 시작한 유아 시기에 무엇이 먼저 선행돼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한 사실은 모국어를 잘하는 것이 외국어도 잘할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는 점이다.
Tip 영어, 엄마 홈스쿨링으로 시작하자
집에서 하는 영어,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언어 공부는 어릴 때 자연스럽게 노출이 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때 가장 효과가 좋아요. 한글과 영어책을 6:4 비율로 섞어서 재미있게 읽어주면 아이는 영어를 학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언어로 인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어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 어떻게 할까요? 6세나 7세 때 영어유치원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최근 나타나고, 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흥미 유발입니다. 학습지에 알파벳을 쓰거나 하는 학습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쉬운 영어책들을 엄마가 먼저 즐기면서 아이와 함께 읽는 것이 중요하고, 재미있는 영어로 된 영상을 보여주면서 노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줄 때나 자기 전에 나란히 누워서 책을 읽어줄 때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때 아주 쉽고 재미있는 영어책을 한글책과 비슷한 비율로 매일 읽어준다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시골 마을에 사는 아이가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무척 좋아해 50번을 보고 귀가 뚫렸다는 사례가 있는데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또 추천할 만한 방법일까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붐이 일면서 아이들이 영어로 된 DVD를 많이 보는데, 이는 영어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 무척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말을 따라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관련 서적을 준비한 뒤 읽어주면서 내용을 알려주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어요.
DVD, 스마트 기기 등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하고 싶어도 중독 때문에 꺼려지는데 적절한 사용법이 있을까요? 어린이들의 스마트 기기 중독은 심각합니다. 그래서 책이나 오디오로 대체할 수 있으면 무조건 대체해야 합니다. 저 역시 유튜브에서 유명한 작가가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는 영상이나 영어 동요 정도만 가끔 보여줍니다. 이때 아이들은 신기해서 계속 보려고 하는 본능이 있는데, 적절한 선을 반드시 정해서 10~20분을 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유아 대상 영어책 추천해주세요. 미국이나 유럽 유치원에서 쓰는 유명한 교재인 「Oxford Reading Tree」 같은 책을 보면 캐릭터들의 엉뚱한 일화의 재미 때문에 엄마와 아이 둘 다 즐기면서 볼 수 있죠. 세이펜(Say Pen)도 함께 구성돼 발음에 신경 쓰이는 엄마는 덕을 많이 봅니다. 저는 아이와 한 달에 두세 번 서점의 영어 코너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재미있겠다 싶은 오디오가 함께 있는 책을 선택합니다. 오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함께 보면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돼요. 유아 책들은 대부분 이야기를 반복적인 노래(Chant)로 만들어서 들려주는데 아이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며 익히게 돼죠.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도움말 / 글로리아(대치 미래탐구 영어과 강사), 이슬기(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