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 가르치는 나라는 일본과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경직된 문·이과의 장벽을 허물어 종합적이고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이번 교육개정안의 배경이다. 서울대 입학본부는 2015학년도 입시부터 의·치대에 문과생도 지원할 수 있게 한 ‘교차지원 허용안’을 발표했다가 한 달여 만에 철회했다. 교육과정의 파행 우려로 유보한 것이다. 당초 2017년까지 수능의 문·이과를 통합하겠다는 정부안은 백지화됐지만, 2021학년도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이 수능을 치르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과생만 불리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이과를 선택한 윤진서양(18)은 “문과도 의대에 지원할 수 있다고 하면 공부 양이 적은 문과가 더 유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과생들이 공부하는 수리 영역은 출제 범위도 넓고 까다롭다. 수학이 부담스러워 문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수인데 이들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면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 이런 이유로 수학의 경우 문과 수준으로 통합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공계 교수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공계생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고교에서 물리Ⅱ와 화학Ⅱ 정도는 이수해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신입생들을 상대로 다시 수학·과학을 가르치는 현실에서는 노벨상은 꿈도 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2018학년도 고교에서는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1학년 때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한국사를 공통과목으로 배워야 한다. 동시에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맞춤형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선택과목(일반선택, 진로선택)’이 개설된다. 인문학적 소양을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고자 문학이 이론 위주에서 감성과 소통 중심으로 바뀌고, 고교 교과에 인문학적 내용이 강화된다. ‘고전 읽기’, ‘고전과 윤리’, ‘과학사’ 등의 과목 신설도 검토되고 있다.
논란의 쟁점이 된 통합과학은 초등·중학교 과학의 기본 개념과 탐구 방법을 바탕으로 현행 물리Ⅰ, 화학Ⅰ,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의 30% 정도의 내용과 난이도로 구성된다. 쉬워지는 대신 자연현상과 관련된 통합 개념 이해와 미래 사회 대비 핵심 역량을 반영한 융합형으로 개발된다. 쉽게 말해 사회와 과학을 묶는다는 것이다. 사회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에 지구과학을 연계해 사회과학의 융합과목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이 실제로 어떻게 전형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공부 부담이 얼마나 늘게 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난이도를 조절하지 않은 채 시험 볼 과목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공부 양만 늘어나게 된다. 바뀐 교육과정으로 출제되는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수능 제도 3년 예고제’에 따라 2017년에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최악의 입시 제도라도 안 바꾸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입 제도 개편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뀌는 혼란 속에 결국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 한때는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입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학문의 융합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고, 문·이과의 통합은 근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IT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도 대학 시절 서체 수업에서 영감을 받아 맥킨토시의 독특한 글씨체를 만들었고, 버튼이 하나밖에 없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아이폰도 인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잡스는 “기술은 예술, 인문학과 결합할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이과의 장벽이 존재하는 한 융합형 인재의 육성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학생부 지정 과목이,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응시 영역이 문과생의 이공대 진학을 철저히 막고 있다. 이과생의 인문대 진학도 마찬가지다. 현행 대학 입시부터 융합형 인재의 싹을 자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입시 체계에서 자연계는 인문 과목을, 인문계에서는 자연 과목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인문계열을 선택한 학생들은 입시에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과학 과목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다. 물론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역사나 사회 과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문과 바보와 이과 바보들이 탄생한다.
진정한 융합을 위해서는 수능의 통합뿐 아니라 교육 현장이 함께 변해야 한다. 융합적 사고 능력을 길러주려면 교사가 먼저 새로운 교육과정의 의미와 교습 방법에 대해 충분히 습득해야 한다. 이에 맞는 교과서 개발과 교사 연수 등 현장 운영에 관한 고민이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Mini Interview
“적성 미리 단정하고 포기하는 과목 있어서는 안 돼”
임성호(하늘교육 대표)
문과 재학생들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고교에서 문과의 비율은 60%, 이과는 40% 정도다. 하지만 대학은 문·이과 비율이 50대 50으로 비슷하고, 서울 시내 대학은 이과의 비율이 좀 더 높다. 현재까진 문과 재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도, 취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의대에 관심이 있어도 수학과 과학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상황이 조금 달라진 것이다. 이번 개편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진출 분야가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교육 현장에서 염려되는 부분은?
통합교육은 사실 혁명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 지금처럼 사회·과학 선생님이 따로 가르칠 것이냐, 함께 들어가서 가르칠 것이냐의 문제부터 문과 수준의 수학으로 통합될 경우 이공계는 대학의 커리큘럼도 일부 수정돼야 한다. 입시를 치를 때 문·이과 상관없이 뽑아야 진정한 통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현재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교 교과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지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재수를 하게 될 경우 문제가 커진다. 수험생이 60만 명일 때 재수생은 13만 명 정도로 재수생 비율이 보통 20%대에 이르는데, 이 아이들의 경우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 하는가?
안타깝지만(웃음), 전 과목에 흥미를 가지고 모두 잘해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리 적성과 진로를 설정하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수학을 못한다고 미리 문과 성향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교 공부를 모두 흥미 있게 두루 살펴야 한다.
현행 교육 제도와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현행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예측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정책 구사가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 분야다. 그런데 현행 교육 제도는 80%는 좋은데 20%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면 100% 잘못된 정책으로 판단하고 바로 없어지는 데 문제점이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앞으로는 신중한 정책과 잘못된 20%에 대해 수정·보완하는 모델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도움말 /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하늘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