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석학들이 ‘수포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수학 석학들이 ‘수포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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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녀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라면, 그것을 꾸짖을 권한이 당신에게 있을까.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학창 시절 자신의 수학 성적을 떠올려보자. ‘수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하고 호소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향해 세계적 권위의 석학들이 말한다. 수학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그 이유에 대해.

국내 이공계 발전과 수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K.A.O.S(Knowledge Awake on Stage: 무대 위에서 지식이 깨어나다)’라는 이름으로 인터파크가 수학 콘서트를 개최했다. 세계적인 수학자와 여러 전문가를 초청해 대중에게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시간이었다. 수학 콘서트 내에서 이뤄진 관객과 수학자들의 1:1 질의응답을 모았다. 수학은 도대체 뭐기에 우릴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예비 ‘수포자’들에게 수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는 석학들의 답변에 귀 기울여보자.

수학 석학들이 ‘수포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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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필요도 없는 수학, 왜 배워야 하죠?
하승열 교수(서울대 수리과학부)
수학 이론이 경제, 사회현상에 미치는 중요한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수많은 일례가 있어요. 1950년대 공학자들은 비행기 날개를 잘 디자인해 충격파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화두였어요. 그런데 한 수학자가 충격파를 막을 수 있는 연속적인 흐름은 불안정해서 자연으로 존재하기 힘들다는 걸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했죠. 공학자들은 충격파가 생기는 건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 위치에 오게 할지를 조절했지요. 또 전기전진에 의해 반도체가 평균적으로 고장에 이르게 하는 시간을 구하는 수학적 방법인 ‘블랙숄즈 방정식’도 그렇고요. 얼마 전에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죠? 그 역시 수학적 이론인 캄(KAM) 이론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실험과 입증이 가능했던 거예요.

관련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저 입시 때문에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요?
하승열 교수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라는 것이 참 솔직한 대답이에요. 저도 대학교 4학년 때 국비유학 시험을 위해 국사 시험을 준비해야 했어요. 두 문제가 출제되는데 그걸 위해 국사 전체를 공부해야 했죠. 그때 제 멘토 역할을 해줬던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때로는 하기 싫어도 해야 될 일이 있다.” 학생들의 고민이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하는 생각일지도 몰라요. 수학이 왜 필요한지 당장 답을 줄 순 없지만 이런 말은 해줄 수 있어요. 지금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20년 뒤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을지 생각해보고,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을 거라고 말이에요. 선택을 줄이는 건 지금보다 더 많은 고민에 시달릴 수 있어요. “미적분? 아마 필요 없을 거야. 그거 공부하지 마”라고 하는 것은 학생에 대한 미래의 선택을 줄이는 일이라서 저는 수학 공부를 하는 게 좋다는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그 대신 교과서만이 아니고 수학에 대해 재밌게 다룬 책이라든가 수학 콘서트 같은 걸 이용하면 어떨까요? 해야 한다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통로를 찾는 거죠.

그럼 수학을 잘하면 어떤 장래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김민형 교수(옥스퍼드대 수학과)
무척 많은 것이 될 수 있어요. 영국의 경우 수학 전공자들이 가장 취업이 잘된답니다. 수학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경찰관이 되기 위해 듣는 강좌에도 ‘법 수학’, ‘수사 수학’이란 것이 있어요. 자녀가 “수학을 꼭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자녀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고 그것이 수학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거예요. 막연하게 “수학을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라는 답변은 요즘 아이들에게 먹히지 않죠.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정보처리를 위해 구조를 찾아야 하고 그것은 결국 수학적 구조가 필요해요. 앞으로도 점차 수학이 강조되는 시대라는 건 확실해요.

수학은 왜 그리 어려운 건가요? 도대체!
김민형 교수
과학자들도 늘 생각하는 문제예요. 왜 우리가 수학을 할 수 있는지 말이죠. 수학적 능력은 도대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상해요. 수학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도 진화 과정에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마 수 광년 지나면 지금 어려운 수학이 미래의 인간들에게는 아주 쉬울지도 몰라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자일 때 발견한 나눗셈이 지금은 초등학교 수학 과정이잖아요? 저도 수학을 잘하지 못했어요. 퀴즈나 퍼즐은 굉장히 좋아했죠. 요즘 학생들은 수학을 무척 잘해서 감탄해요. 지금의 ‘수포자’라고 불리는 친구들도 학창 시절 저와 비교하자면 정말 잘하는 수준일 거예요, 아마도.

그럼, 수학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김민형 교수
실용적인 조언을 하자면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기’가 가장 중요할 거 같아요. 암기도 중요하고 연산도 중요해요. 때로는 본질을 모른 채 외워서 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렇지만 개념을 배웠다면 선생님에게 질문을 할 때 부분적인 질문이 아닌, 전체적인 질문을 해보세요. 우선 자기가 이해한 바를 한번 설명해보세요.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저렇다”라며 어렵고 엉성하더라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잘못된 부분을 가르쳐주세요”라고 질문하세요.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수학 석학들이 ‘수포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수학 석학들이 ‘수포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수학을 공부하면서 혹시 벽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어떻게 수학에 대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나요?
김정한 교수(고등과학원 수학부)
수학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벽을 느끼는 시간이에요. 벽은 매일 느껴요. 박사과정을 밟을 때 한 문제에 매달려 4, 5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한 적이 있어요. 알고 있는 걸로는 안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고…. 그래서 교수님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 상황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를 배우는 것도 박사과정 중 하나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놀았어요(웃음). 사실 저처럼 그러면 안 되고요. 계속 생각해야죠. 그 벽이 없어질 때까지.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항상 비가 온다고 했어요. 왜냐면 비가 올 때까지 지냈으니까요. 강조하고 싶은 건 벽을 만났을 때가 진짜로 뭔가 배우고 있는 때라는 거예요. 진전이 없다고 느끼는 그때가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때예요.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맞서서 노력해보길 바랍니다.

저는 중2입니다. 다니던 수학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학년별로 공부하는 걸 접고 계통별로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하승열 교수
개인적으로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에서 선생님은 길잡이 역할일 뿐이고 연습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자기 시간이 필요한 과목이죠. 저한테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있는데 특별한 교수법이 있냐고 많이들 물어봐요. 저는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많은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많이 푸는 것으로 실력을 가늠하는데 정말 이런 것으로 수학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황준목 교수(고등과학원 수학부)
저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런 식으로 수학 실력을 측정했다면 저는 아주 형편없을 거예요. 수학은 깊이 생각하는 학문이에요. 짧은 시간에 단편적인 지식이나 사고를 측정하는 학문이 아니에요. 수학자들은 반대로 적은 수의 문제를 오랜 시간 동안 푸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1년에 한 문제 풀기가 힘들어요. 10년 이상 걸린 것도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20년째 풀고 있는 문제도 있고요. 여러 제약이 있겠지만 기존의 교육에서 보완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자들이 추천하는 ‘한 권의 책’

「G is for Googol: A Math Alphabet Book」(데이빗 슈바르츠, 메리사 모스 저) Googol은 10의 100승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적인 검색 사이트 구글(google)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영어의 각 알파벳마다 수학과 관련된 단어를 연관 짓고 설명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중학생들에게도 유익하다.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폴 호프만 저) 1천475편의 논문을 발표했던 20세기 전설적인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을 담은 책. 그는 죽는 날까지 하루 19시간씩 수학을 생각하고 또 저술했다. 에어디쉬의 천재성과 기이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한 생애의 따뜻함, 즐거움, 유머 감각까지 소개한다.

「What is Mathematics?」(리처드 쿠란트, 허버트 로빈스 저) 수학 입문서의 고전. 단순한 암기 위주의 수학 교육에서 탈피해 수학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지적 능력의 함양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문제 풀이식의 수학이 아닌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수학을 바라보는 안목을 제시한다.

「The Book of Numbers」(존 콘웨이, 리처드 가이 저) 어려운 수론(Number Theory)을 쉽고 매혹적인 주제로 바꿔놓은 책. 쉽고도 명쾌한 설명뿐 아니라 매혹적인 도표와 삽화가 책 읽는 흥미를 더한다. 다양한 수의 기원과 패턴, 그 상호관계에 관한 심오한 고찰을 담았다. 특별한 수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인생은 뜨겁게」(버트런드 러셀 저) 길을 찾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1950년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입증하듯이 러셀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셀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자서전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문체, 재기 넘치는 표현이 돋보인다. 위대한 학자치고는 무척이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인터파크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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