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방송 채널 아리랑 TV 진행자이자 YBM어학원 신촌 센터에서 영어 강의를 하고 있는 위준성씨(39)를 처음 만나자마자 던진 질문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만큼 많은 것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가보다는 영어를 어디서 어떻게 공부해 ‘그만큼’ 하는가가 더 궁금해진 세상이다. 정말 어학연수를 한 번도 안 갔는지, 토종 영어로 그 자리에까지 오른 건지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1990년인가 91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는데 청소년 육성 어쩌고,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그런 단체에서 미국으로 견학을 가는 프로그램을 부모님이 보내주셨어요. 걸프전 때여서 안보 차원이라며 백악관을 보지 못하고 왔던 것이 생각나네요(웃음).”
30명 조금 안 되는 인원 중 막내로 따라간 여행이었다고 한다. 뉴욕,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등을 둘러보고 대학 기숙사에서 두어 밤, 미국 가정에서 하룻밤 정도 홈스테이를 해보는 관광과 체험이 결합된 여행이었다. 지방 도시에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음에도 그의 부모님은 큰맘 먹고 아들에게 미국 구경을 시켜줬다.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하라’라는 것이 부모님의 교육 철학이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1년에도 몇 번씩 외국에 가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그의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해외여행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설마 그 여행에서 영어를 마스터했다는 건 아니겠지?’라면서.
“당연하죠. 저는 중학교에 입학해 영어 교과서를 받으면서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기다릴 때 영어 대문자와 소문자를 외웠죠. 결국 소문자는 다 못 떼고 입학했어요(웃음). 미국 여행을 보내주셨을 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잘 못했어요. 옛날 중1이 무슨 영어를 했겠어요? 하지만 그 여행이 제 영어 공부의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됐죠.”
방법이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미국을 보고 왔다. 시골 촌놈이 미국에 가서 입국심사대도 통과해보고, 명문대 캠퍼스도 거닐어보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음식도 주문해 먹어봤다. 손짓, 발짓, 콩글리시를 동원하고 그나마도 안 되면 가이드가 다 해주니 입 다물고 다녀도 전혀 지장 없는 여행이었지만.
“애플이 왜 애플로 발음되는지… 스펠링 옆에 쓰인 발음기호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 영어를 대하는 저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영어 테이프가 딸린 학습지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그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고, 따라서 말했어요. 정말 수없이 반복했죠.”
그건 대중적인 영어 학습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학습지의 효과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학습지와 세트로 구성된 영어 테이프를 그렇게 활용한 사람은 당시에 자신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부터 소리 내어 말하기를 많이 연습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아!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선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는구나’ 하는. 하지만 바꿔 질문하고 싶어요. 외국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본 여러분은 영어를 잘하시나요?(웃음) 여기서 주목했으면 하는 게, 제가 영어 공부를 하게 된 지점이에요.”
자기주도형 학습, 동기부여 학습 등등은 새로울 게 없는 용어가 됐다. 하지만 토종 영어 승부사 위준성씨는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했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심각해질 필요도 없다고 했다. 영어가 필요하게 되는 계기, 영어가 그래서 조금은 재밌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영어 공부를 위해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는 것부터 성인이 돼 다양한 이유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까지 해외에 나가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뭔가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국내에서만 공부시키는 것을 불안해한다.
“갈 수만 있다면, 여유가 된다면 얼마든지 가세요. 좋죠. 해외에 간다는 것, 설레잖아요. 제가 국내파라고 해서 해외에 가는 것이 소용없다고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경험이란 목적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안 한 공부를 해외에 나가서 한다? 아니요. 100%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겉멋만 잔뜩 든 영어, 외국물 먹은 것을 티내는 굴리는 발음, 표피적인 생활 회화 등을 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해외 경험을 하는 시대라 해외 연수 한 번 나가지 않고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제가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점은,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셨다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은 많이 배우시지도 못했고, 영어는 더더욱 못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됐죠. 결국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죠.”
위준성씨는 해외 연수에 대해 결코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라는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시기와 방법, 비용 걱정까지 하며 불안해하지 말고, 여행의 형태도 좋으니 차라리 자주 짧게 외국을 경험하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언제 어떻게 자극을 받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해외 연수나 유학 경험 여부에 자신감을 잃지 말라는 겁니다. 가면 간 대로, 안 가면 안 간 대로 좋고, 잘할 수 있는 게 영어예요. 그리고 한국의 영어 공부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의 영어 공부 환경의 장점을 잘 알고, 이용한 사람 중 하나다. 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영어에 관심이 많은 나라라고 했다. 그만큼 듣기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고. 아리랑TV와 라디오, TBS 영어 방송, EBS 등의 특수 방송을 제외하고도 영어권의 외화나 영화나 드라마, 영어 뉴스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더불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많다.
“단점도 있죠. 영어 안 해도 살 수 있는 나라라는 거죠. 취직하는 데 불이익을 받기도 하지만 아예 영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면 되니까 사는 데 지장은 없죠. 그래서 영어 공부의 방법과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거예요. 결국 국내파 영어의 관건은 ‘의지’의 문제거든요.”
더불어 테스트 위주의 영어 공부 환경이 영어를 되레 못하게 만드는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영어의 최전방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보건대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영어 말하기에 초점을 맞춰 공부한다는 거예요. 눈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거예요. 외향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직접 부딪치고, 실수에 상처 덜 받는 것이 핵심이죠.”
테스트 위주의 영어 환경이지만 공부만큼은 말하기 위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순수 국내파임에도 “교포 출신이냐”라는 오해를 사고, 영어 방송의 진행자를 맡을 정도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말하기’에 초점을 맞춘 공부법 덕이라고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를 듣고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단다. 그 수업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지속한 사람은 위준성씨 한 명뿐이었다고. 영어로 팝송을 듣고, 영화를 본다는 것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개 학생들은 “영어는 외울 게 많다”라며 푸념을 한다. 그는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단순 암기는 지루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사실 최상의 암기법은 ‘반복’이라고 했다. 반복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 이해하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순서의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요즘은 유치원부터 영어를 공부하니 정말 오랫동안 영어를 합니다. 그러니 슬럼프가 오는 거죠. 자신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말이에요. 영어도 수직이 아닌 계단형 그래프를 그리며 늘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슬럼프가 왔을 때 낙담하지 말고, 영어를 설레고 기대하며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으세요. 제가 영화나 팝송을 즐겼던 것처럼요. 그 고비 다음에는 바로 한 계단 오른 향상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위준성씨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말하라고! 즐겁게, 재밌게 영어로 말하라고!
Tip
“영어 공부 ‘잘’하기 위해 이것만은 하지 마라”
토종 영어 승부사 위준성 선생님이 뽑은 ‘워스트’ 공부법 3
1 단어 좀 그만 외워라! ‘영어 공부 해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단어장부터 펴고 단어를 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쓴다. 그렇게 열심히 써봐야 발음할 줄도 모르고, 발음이 된 걸 듣지도 못한다. 영어는 결국 말이고, 소리다. 입으로 하지 않은 공부는 잔상이 남지 않아 결국 남는 게 없게 된다. 영어 공부의 초점을 ‘말 잘하는 것’으로 맞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눈으로만 하는 영어 학습, 이제 그만하자.
2 엄마 말, 좀 그만 들어라! 모든 공부엔 선생님이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다. 실컷 영어 공부에 대해 상담해놓고 다음날 하는 말이 “엄마가 안 된대요”다. 상징적으로 ‘엄마’라고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의 멘토, 전문가인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건 해서 뭐 하겠어?’, ‘얼마나 효과가 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혼자 지름길만을 찾는다. 그러면서 엄마 핑계를 대곤 하는 것이다. 영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선생님(전문가)을 완벽하게 신뢰한다는 거다.
3 어학연수 가서 영어 공부 하지 마라! 조기유학이 보편화된 요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이민을 가는 게 아니라면 대개의 어학연수는 영어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닌 영어를 ‘향상시키러 가는 것’이 돼야 한다. ‘가면 뭔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100% 실패만을 안겨줄 것이다. 한국에서도 안 되는 영어가 그곳에서 될 리 없다. 공부는 한국에서 마치고, 외국은 실전을 경험하고 적용하러 가야 한다. 해외 어학연수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참고 서적 / 「영어는 지하철 2호선이다」(위준성 저, 수수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