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기자의 육아 스트레스

기자들이 직접 체험했다

워킹맘 기자의 육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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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내 시간이 없는 삶, 지쳐버렸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정시 퇴근 후에는 곧장 집으로 달려간다. 맘에 드는 쇼윈도의 옷이 90% 세일을 한다고 해도 한눈을 팔 새는 없다. 집에서 아이가 엄마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생활이 배제된 채 5년의 시간을 보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선을 넘은 것만 같다.

[기자들이 직접 체험했다] 워킹맘 기자의 육아 스트레스

[기자들이 직접 체험했다] 워킹맘 기자의 육아 스트레스

오전 7시, 어김없는 나의 자명종이 울린다. 아이의 칭얼거림이다. 어제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왔든 말든 아이가 그걸 알아줄 리 없다. 간신히 눈을 떠보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가 순간 도깨비처럼 비쳐 흠칫 놀란다. “엄마 노올자~~.” 이미 자동차를 손에 쥐고 온 아이를 밀어낼 수는 없다. 엄마를 어젯밤에 못 보고 잤으니 그리워했을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엄마가 많이 피곤한데, 어쩌지? 눈이 안 떠져”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그럼 엄마는 누워서 놀면 되잖아”. 아이의 손에 이끌려 척척한 솜뭉치 같은 몸으로 놀이방으로 간다. 정말 아이 옆에 누워서 자동차를 굴리며 놀아줬다. 비몽사몽이라 아이에게 무슨 대사를 쳤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헛소리를 하면서 다시 잠들었다는 건 아이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고서야 알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마감 주의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마감이 끝났다고 해서 큰 차이는 없다.

회사 생활은 아이에게 조금 해방되는 나만의 시간일까? 회사에서는 마치 ‘나는 6시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라는 기세로 오후 6시 30분 땡 하면 미리 싸둔 가방을 들고 일어난다. “먼저 가보겠습…” 하고 개미 목소리로 인사하고 사무실 문을 나서면 집으로 뛰어간다. 뛰어갈 수밖에 없다. 7시까지 아이를 맡고 있는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바통 터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0분만 늦어도 싸늘해진 공기에 내 집임에도 몸 둘 곳이 없다.

유독 엄마를 좋아하고 찾아대는 아이를 보며 귀엽기도 하지만 버거울 때도 많다. 임신 이후 여러 권의 육아서 탐독을 통해 ‘애착관계 형성’이 지상 최대의 숙제인 것으로 알고 지냈다. 애착관계를 위해 아이와 한시라도 떨어진 적이 없고 아이의 반응에 빛의 속도로 반응했다. 당연히 지난 5년간 친구를 만난 적도 없고 그렇게 좋아해 마지않던 ‘혼자 여행’도 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해야 할지 생각해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50세가 돼도 좋으니 10년이란 세월이 확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지쳐 무기력에 빠진 지 오래다.

과거 주부 무기력 기사를 쓰고 상담을 통해 운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운동에는 원체 취미가 없었을뿐더러, 생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미봉책에 불과했다. 육아 스트레스는 진정 근본적인 해결법이 없는 걸까? 이것저것 찾아보니 ‘K-PSI’라고 하는 부모 양육 스트레스 검사라는 게 있었다. 내가 양육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상태를 진단해보고 싶었다. 허그맘 아동청소년 심리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먼저 검사지를 받고 나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에 표시를 해나갔다. 어떤 질문은 ‘이거 내가 만든 거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내 마음을 대변해준다. ‘매우 그렇다’ 란에 검고 진하게 꾹꾹 눌러 마음을 담아본다.

[기자들이 직접 체험했다] 워킹맘 기자의 육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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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한마디에 동요되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높게 나왔다. 평균 85점 이상이면 전문가의 상담을 요하는데 나는 무려 98점이다. 검사 결과를 보고 쓴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박지선 상담사는 수치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실제로 힘든 상황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것. 설문조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를 통해 우선 경향을 판단하고 자세한 것은 상담을 통해 이뤄진단다.

“일단 어머님은 육아나 아이에게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컸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어요. 또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로부터 힘든 부분에 대해 위로와 지지가 충족되지 않아서 힘들어하시네요. 또 아이로 인한 사생활의 제한으로 우울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요구하는 것들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몰라요.”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내 기분을 그대로 표시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이치인지도…. 처음 병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생각보다 기쁘지 않아서 스스로도 좀 놀랐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수록 ‘양육은 100% 책임감으로 이뤄지는 행위로구나’란 생각과 동시에 내 부족한 모성애와 인내심에 실망했었다.

“가끔 혼자 시간을 갖거나 친구들은 만나시나요?”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혼자였던 시간이 있었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저녁 약속 한 번을 잡아본 적이 없다. 저녁을 먹자는 사람들에게는 ‘어머? 저 사람은 아이도 키워본 적 없나?’ 하며 물색없는 사람 취급을 하곤 만나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괜찮으세요? 어떻게 견디셨어요? 임신 기간부터 무려 60개월 가까이 본인의 생활이 전혀 없었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요. 1, 2년 보고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닌데요.”

상담사의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내 생활을 갖고 싶긴 하지만 그게 아직 어린아이와 조율할 수 있는 문제였나? 그걸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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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활을 1년만 해도 답답한 건 당연한 거예요. 어떻게 견디셨는지 궁금할 따름이에요. 아이와 놀아줄 때 충분히 놀아주고 엄마의 시간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충전된 에너지를 다시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거예요. 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해주는구나’라고 엄마의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요. 감각으로 판단하니까요. 엄마의 속마음과 겉마음이 일치되지 않으니 아마 더 허기질 거예요.”

순간 누워서라도 놀아달라며 자동차를 건네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헛헛함을 느꼈을까. 생각해보니 아이와 놀이를 시작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끝낸 적이 대부분이다. 놀이 도중에 하품을 쩍쩍 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해요. 주말에 오전, 오후 20분씩만 열심히 놀아줘도 아이는 그걸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어요. 시간을 정해서 놀아주는 것도 효과적이에요. 아이도 재미있게 놀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그동안 내가 했던 육아는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희생하지 않은 것도 아닌, 한마디로 지지부진한 것이었다. 무기력한 기분이 계속되면서 이런 패턴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뒤통수를 한 방 크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새로운 문을 열 열쇠가 돼줄까?
상담을 받고 돌아온 날 저녁 마음속으로 기합을 넣었다. 오늘 밤은 10분을 놀더라도 아이가 ‘꺄르르르’ 웃을 때까지 놀아보자. 그래 신명 나게 놀아보자! 아이와 밑바닥부터 끌어낸 혼신의 연기력으로 역할놀이를 시작했다. 시도해보지 않았던 생애 첫 성대모사까지 더해지니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아이 또한 즐거워하니 뿌듯하다. 그렇게 놀고 나니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변화가 있었다. 밤에는 자기가 잠들 때까지 옆에 붙어 있으라던 아이가 엄마를 한 번도 찾아 부르지 않고 그냥 잠이 들었다. 이튿날에는 아침 7시 40분부터 놀이를 시작했는데, 아이와 시곗바늘이 정각에 오는 8시까지만 엄마랑 놀자는 약속을 미리 정했다. 막상 8시가 되자 더 놀겠다고 떼를 부리긴 했다. 내일도 모레도 같은 시간을 정해 놀아주면 바쁜 아침에 한숨 돌릴 수 있는 규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5년 동안 참아왔던 ‘혼자 여행’에 도전해보려 한다. 아이를 떼어놓고 가기 위해서는 큰 결의가 필요하겠지만, 무기력이 육아에 더 나쁘다고 하니 일단 시도해보자.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 투어가 올겨울에 시작되니 미리미리 팬클럽에 가입도 좀 하고 하얗게 불태울 준비를 하자.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안지영 ■도움말 / 박지선(아동청소년 심리센터 허그맘 목동점 놀이치료사, www.hugm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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