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입형 아이의 비밀
대상이 무엇이든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지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를 두고 유아기에 나타나는 한때의 특징이라고 다소 무심히 넘겨버리는 부모도 있지만, 교육학자들은 아이들의 몰입력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가지에 깊게 몰입하는 경험을 했던 아이들은 온몸으로 느낀 몰입의 즐거움을 오랫동안 기억해 아동기, 청소년기가 돼도 한 가지에 깊게 파고드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잠재력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Part 1 몰입 잘하는 아이가 똑똑한 이유
한 가지에 깊게 몰두하는 행위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인지 능력, 사고력 수준과 관련이 깊다. 아이의 두뇌 발달 과정에서 추상적 사고 능력은 가장 나중에 발달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인데, 몰입하는 행동이 추상적 사고력의 발달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한 가지 구체적인 대상을 놓고 계속 만지고 놀면서 조작을 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내 역할놀이도 하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 등 몰입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사실은 두뇌 발달에서 필수적인 것들이다. 이런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난 뒤에야 추상적, 사고력 발달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아이가 한 가지에 몰입을 잘한다면 두뇌 발달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또 몰입력은 아이의 재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다.
Part 2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연관된다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아이가 어떤 분야에 빠지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연관이 깊다. 사람은 자기가 타고난 능력과 관련된 것에 깊게 빠지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억지로 들이밀어도 자기 능력과 잘 안 맞으면 아무리 독려해도 한계가 뚜렷하다. 아이가 집중을 못한다는 것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피아노 앞에서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무의미하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줘 기억 능력을 떨어뜨리고 아이의 두뇌 발달에 해를 끼친다. 부모의 욕심 같아서는 A 분야를 시키고 싶어도 아이가 도통 집중하지 못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내 아이에게 A의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툭 털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Part 3 부모가 주의해야 할 3가지
몰입을 막아야 하는 경우
모든 몰입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너무 현란한 외부 자극에 노출되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몰두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이 게임, 컴퓨터, TV 등 미디어 노출이다. 이런 매체들은 자극성이 강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몰입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시청각적으로 자극해 흥분된 상태로 만든다. 특히 요즘에는 태블릿 PC 등으로 교육 콘텐츠를 많이 보여주는 추세인데,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오래 노출되는 것은 자극적일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교육 콘텐츠이니 우리 아이가 학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할 수 있지만 사실 집중력 발달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이런 종류의 몰입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수동적인 집중력이다. 외부 자극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누구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들어 발휘하는 집중력이라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이 스스로 몰두할 거리를 찾아내 자발적으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중력이다.

몰입형 아이의 비밀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빠지면 그 외의 것에는 소홀해지는 성향이 성인들보다 더 크다. 특히 초등학생 중에는 좋아하는 것에만 온 신경과 시간을 쓰는 탓에 학교생활도 소홀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모습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별스러운 아이로 낙인찍혀 왕따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한국집중력센터의 이명경 소장은 이런 경우 부모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미디어가 아닌 분야라면 몰입 자체는 좋은 행동이지만 교과 과정 전부를 놓치는 것은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억지로 학습에만 몰두하도록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교과 과정은 그 연령에 습득해야 할 기본 지식이기 때문에 공부는 평균 수준 정도는 맞추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생활 습관 훈련은 엄격하게
몰입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제때 밥 먹는 것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쉽게 어기게 된다. 보통 부모들이 아이와 갈등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예를 들어 아이가 책에 푹 빠져 있는 것은 흐뭇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으려 한다면 “그만해”라고 외치는 부모와 몰입을 멈추고 싶지 않은 아이가 팽팽하게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일관적인 기준 없이 어떤 때는 용인하고, 또 어떤 때는 억지로 멈추게 한다면 아이는 스트레스만 받는다. 유아기부터 아동기까지는 먹고, 자고, 배변하고, 씻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바르게 익히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교육이다. 이 부분은 반드시 규칙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몰입하는 행동이 아무리 두뇌 발달에 이롭다 한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잡혀 있지 않으면 더 커서 사회성, 책임감이 결여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 기본 생활 습관 지키기에 관해서는 일관성 있고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혹시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아이가 심리적으로 늘 결핍감을 느끼는 상태는 아닌지 부모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Part 4 몰입력 키워주는 방법
집중이 잘되는 환경 마련하기
어린아이일수록 환경은 단순하게 정돈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집을 미디어를 자주 접하는 환경으로 만든다면 아이는 그것에 금방 익숙해져버린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읽고 생각해야 하는 책을 좋아하기 어렵다. 당연히 사고력이 얕은 수준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더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매체가 눈앞에 있으니 필요성을 못 느끼고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수십 권의 전집 등 필요 이상의 책으로 집을 도배하는 것도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많은 책을 다 읽히려고 하면 아이가 책의 내용에 푹 빠질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다. 대충 보고 넘어가버리는 안 좋은 습관이 든다. 차라리 좋아하는 책을 수십 번 반복해 자세히 보면서 상상하는 편이 훨씬 좋다. 해당 시기에 필요한 것만 갖춰두고 아이의 요청이나 필요에 맞게 책을 바꿔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자꾸 질문하기
아이가 뭔가에 깊게 몰두하고 있을 때는 되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상황에 따라 부모의 적절한 개입은 아이의 두뇌를 열리게 만든다. 만일 아이가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는 상태라면, “여기는 왜 이 색으로 칠한 거야?”, “이건 어떤 부분을 그린 거야?”, “이 사람은 지금 어떤 기분이야?” 등등 아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행위로 옮긴 부분을 말로 짚어주며 접근해본다. 아이가 평소에 하는 행동을 말로 묘사해주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특히 유아기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에 아직 서툴다. 부모가 자꾸 질문을 해주고 묘사해주면 아이에게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훈련이 된다. 이런 훈련이 반복되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몰입에서 스스로 더 깊게 생각하는 몰입으로 그 단계가 업그레이드된다.
혼잣말하는 것 보여주기
아이들은 만 5세가량이 되면 혼잣말을 시작한다. 이를 ‘내재적인 사고’라고 하는데,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다. 발달 과정에서 혼잣말은 의외로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혼잣말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 일에도 집중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어릴 때는 부모가 모델링을 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할 때도 일부러 소리 내서 말로 표현하는 식이다. “냉장고를 열고 서랍에서 사과를 꺼내볼까?”, “지금부터 30분 동안 설거지를 한 다음 청소기를 돌려야지” 등 아이에게 일부러라도 혼잣말 소리를 들려줘라. 혼잣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꾸 조절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게 되면 추상력과 언어 표현력 발달에 큰 도움이 되고 집중력도 향상될 수 있다.
Education Tip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지켜야 하는 것 사이에서 처음에는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훈련이 필요하다. 미리 시간을 말해주는 방법을 권한다. 취침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면 30분 전, 10분 전, 5분 전 이런 식으로 잘 시간이 다 됐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간만 말해주고 불필요한 잔소리는 참는다. 약속한 시간에는 단호하게 행동한다. 지켜지지 않으면 아이와 실랑이를 하지 말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라. 대신 평소에 규칙에 대해 일관성 있게 단호한 모습을 보였어야 효과가 있다. 혹여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나 싶어 마음이 안 좋은가? 아이들은 한계가 없는 상황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버려뒀다가 부모가 갑자기 폭발해버리면 매사에 불안해진다. 부모가 약속을 지키고 일관성이 있다면 허용된 시간 안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적다.
Mini Interview
“유아기에는 공부보다 깊게 몰입하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바람직해요”
이명경(한국집중력센터 소장)

몰입형 아이의 비밀
유아기의 몰입력, 초등학교 공부 집중력으로 이어질 수 있나요? 어린 시절에 뭔가에 푹 빠져서 몰두했던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나중에 학교 공부도 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아요. 그런데 부모가 학교 공부와 연결시켜야지, 하고 유도하는 순간 반짝거리던 아이의 몰입도 사라져버릴 수 있어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여야 집중력도 발휘되는데, 교과과정에 자꾸 아이를 맞추려다 보면 호기심이 꺾여버리죠. 초등학교 때는 성적에 대한 욕심은 조금 내려놓는 것이 훗날을 생각하면 더 좋다고 확신해요. 교과과정은 평균 정도로만 학습하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깊게 몰두할 수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때 습득한 사고하는 방식과 경험이 중고교에 가서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고 자기 생각(추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 빛을 발해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천천히, 오래,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으니까요.
전문가로서 어떤 경우 몰입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하나요? 지나치게 산만한 아이들이 있어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진단받아 약물치료를 하는 아이들도 많아졌죠. 제가 판단하는 기준은 아이가 너무 자극적인 것을 많이 추구하는 경우, 기본 생활 습관이 잡히지 않은 채로 관심 있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예요.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몰입도가 높다고 해도 결코 건강한 몰입력이라고 하기 어렵죠. 능력을 발달시키기 이전에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이의 인생 전반을 봤을 때 훨씬 더 중요해요. 사교육도 가능한 한 줄여주세요. 지나친 사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산만해져요. 심하게 산만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요인이 환경, 유전, 부모와의 애착 관계 등 다양하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몰입을 억지로 막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건강하게 발달을 못 시킨 경우에는 보통 학교 생활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요. 집에서 부모는 못하게 막고 윽박지르거나, 학원 등 다른 일정이 많아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로 가져가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딴 짓을 하는 거예요.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그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만 빠져드는 아이들도 많고요. 아이의 학교생활이 엉망이 돼버릴 수 있으니 차라리 집에서 흠뻑 빠져서 할 수 있게 시간을 허락해주고 밖에서는 밖의 규칙을 따라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세요.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이소현 ■도움말 / 이명경(한국집중력센터 소장)